[비즈니스포스트] 건설업의 겨울이 길고도 혹독하다. 

2022년 초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나타난 자잿값 상승에다 고금리 기조 장기화에 따른 업황 부진이 올해까지 4년째 이어질 공산이 크다. 
 
[데스크리포트 2월] 길고 긴 '혹한기' 건설업에 잠재한 더 큰 위험

▲ 건설업계 겨울이 혹독하다. 사진은 아파트 건설현장의 모습.


기획재정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건설투자는 1.5% 줄었는데 올해도 1.3% 후퇴할 것으로 추정된다. 건설 경기 선행지표인 주택 인허가와 착공 실적도 줄어드는 양상이다. 

반면 건설사를 힘들게 하는 악성 재고인 준공 후 미분양은 늘어나고 있다. 민간 공사 수주가 감소 추세인 가운데 공공 수주의 바탕이 되는 정부의 올해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1조 원 줄었다.

건설업에 봄이 올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에 스스로 문을 닫는 건설사도 잇따른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들어 1월에만 300곳이 넘는 건설사가 폐업했다. 매일 10곳 이상이 문을 닫는 셈이다. 이 가운데 종합건설사 폐업은 57곳으로 1년 전보다 42.5% 증가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집계를 보면 지난해 종합건설기업 폐업 건수는 641건으로 조사가 시작된 2005년 뒤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이라고 나을 건 없다. '건설 종가' 현대건설이 일회성 비용을 대거 털어내며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손실 1조2209억 원을 본 사실은 현재 건설업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공시된 가장 최근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면 주요 건설사 가운데 부채비율이 200%를 넘고 유동비율이 100% 이하인 업체가 여러 곳 있다. 

갚아야 할 빚은 많은데 미분양이 커지거나 미수금이 회수되지 않으면 바로 유동성 위기에 놓일 가능성이 큰 곳이 많다는 얘기다. 

자금력이 약한 지방 건설사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올해 폐업 건설사 가운데 60%가량이 비수도권업체이며 지난해 부도를 낸 건설사 가운데 80% 이상이 지방기업이다.

우리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에서도 건설업 대출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분위기가 나타난다. 전문가와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건설사들은 올해 살아남기 위해 보수적 사업 전략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비용을 줄이는 과정에서 노동자 안전 문제에는 이전보다 신경을 덜 쓰게 될 공산이 크다. 이런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주요 건설사 공사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이 2023년보다 크게 늘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박용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시공능력평가 상위 20개 건설사 공사 현장에서 모두 35명이 사고로 사망했다. 전년보다 25% 증가한 수치다.

건설업은 산재가 많은 대표적 업종이다. 더구나 업황까지 악화하다 보니 산재 피해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해 국회 국토교통위의 소관기관 국정감사에서도 최근 5년간 한국토지주택공사와 상위 20개 건설사의 산재 건수가 매해 늘어나는 점이 질타를 받았다. 거대 공기업과 대형건설사도 이럴진대 중소 건설사 노동자 안전 상황은 불문가지(不問可知),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얼어붙은 경기는 거시경제 상황이 바뀌면 언젠간 다시 풀릴 수 있다. 사업이 좋아지면 빚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생명은 절대 되돌리지 못한다. 
 
[데스크리포트 2월] 길고 긴 '혹한기' 건설업에 잠재한 더 큰 위험

▲ 김훈 작가가 산업 안전을 강화해야 한다는 호소문을 낭독하고 있다. <생명안전 시민넷 홈페이지>


김훈 작가가 생명안전 시민넷 홈페이지에 올린 호소문에 나오는 표현처럼 노동자들의 몸이 으깨지고 간과 뇌가 땅 위에 흩어지는 한 건설업의 미래는 없다. 

산재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글로벌 시장에서 건설업의 재도약은 기대하기 힘들다.

자신들의 재산과 생명이 걸린 건물과 시설을 지을 사람들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건설사에게 수주를 맡길 발주처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줄어들지 않는 산재는 업황이 얼어붙은 것 이상으로 건설업에 잠재한 더 큰 위험이라 할 수 있다.

국토부와 고용노동부같은 정부 당국뿐 아니라 기업들도 각별한 주의와 대책이 필요하다. 업황이 어려울수록 안전에 더 신경 써야 한다. 그래야 겨울도 견디고 따스한 봄을 맞을 수 있다. 박창욱 건설&에너지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