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길라임' 가명과 대한민국의 불행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0월21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복패션쇼'에서 탤런트 하지원씨와 함께 감상을 하고 있다.

“그게 최순입니까? 확siri해요?” 길라임씨는 언제부터 혼이 비정상이었나” “최순실한테 문자왔숑” 등등.

16일 인터넷이 SBS에서 5년 전 방영됐던 ‘시크릿가든’에 나온 대사의 패러디로 넘쳐났다.

JTBC가 박근혜 대통령이 차움병원을 이용할 때마다 ‘길라임’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보도했기 때문이다.

길라임은 2010년 11월 SBS를 통해 방영된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여주인공 이름이다. 김은숙 작가가 대본을 쓰고 탤런트 현빈씨와 하지원씨가 남녀주인공을 맡아 인기를 끌었다.

차움병원은 박 대통령이 대통령 취임한 이후 이 가명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는데 JTBC는 보건복지부에서 확보한 최순실씨 최순득씨 자매의 진료기록부를 통해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길라임’이란 이름으로 처방받은 정황이 있다고 보도했다.

가뜩이나 최순실 게이트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으로 떨어진 마당에 길라임을 가명으로 쓰며 병원진료를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박 대통령이 그 나이대의 ‘아줌마’들처럼 드라마에 빠져들었다고 나무랄 일은 아니다. 이혜훈 새누리당 의원은 “박 대통령은 밤 8시 이후 일정 안 잡고 TV만 본다”고 말한 적도 있다.

어찌 보면 박 대통령이 길라임이라는 여주인공에 동질감을 느꼈을 수 있는데 그 이유도 이제 알 것 같다.

길라임은 젊은 시절에 아버지를 잃고 어렵게 자랐다. 직업 또한 스턴트 배우, 즉 대역이었다.

박 대통령도 부모가 모두 피살되는 아픔을 겪어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낸 점을 돌아보면 길라임과 정서적 교류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대역’으로 살아가는 삶을 놓고도 동질감을 느껴 길라임이라는 가명을 썼다면 이는 최순실 게이트를 잉태한 씨앗으로 대한민국의 불행이라는 점에서 절망감이 들게 한다.

돌이켜 보면 박 대통령은 대역의 삶을 살며 대통령이 됐는지도 모른다.

정치에 입문한 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향수를 앞세워 보수정치인들의 ‘대역’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힘들다.

특히 이번 최순실 게이트로 박 대통령이 비선실세의 ‘대역’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정치권에서 박 대통령이 최순실씨로 대표되는 비선실세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인물로 대표되는 ‘8인회’의 대역에 불과하다는 말도 나온다.

정치적 신념이나 철학이 없는 대통령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결국 이권을 탐하게 됐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변호인을 맡게 된 유영하 변호사는 “박 대통령은 대통령이기 전에 여성으로서 사생활이 있다는 점도 고려해 달라”며 말했다. 세월호 7시간 의혹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성형시술을 받느라 7시간 동안 국정을 나몰라라 했다는 말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있다.

물론 박 대통령은 여성이다. 또 드라마를 좋아하고 여주인공에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이 드라마에 빠진 평범한 여성으로 살고자 했다면 ‘대역’인생을 벗어던지고 대통령을 향한 도전을 진작에 그만뒀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래서 오늘 대한민국은 불행하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승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