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윤석헌 전 금감원장 “금융사 내부통제 실패는 CEO가 책임져야 한다”

▲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이 12일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비즈니스포스트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최고경영자(CEO)가 책임져야 한다.”

올해도 금융권에서는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대규모 손실사태부터 은행 임직원의 횡령·배임까지 각종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주요 금융지주 전 회장이 연루된 부당대출 사태까지 터지면서 은행을 향한 국민의 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다.

제13대 금융감독원장을 맡아 소비자보호를 제1가치로 내걸고 금융사고에 강경한 태도를 보였던 윤석헌 전 원장은 최근의 반복되는 금융권 내부통제 실패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12일 서울 광화문의 한 사무실에서 ‘호랑이 금감원장’으로 불린 윤석헌 전 원장을 만나 내부통제와 관련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윤 전 원장은 금융사의 내부통제 부실을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을지 묻자 우선 내부통제라는 게 도대체 뭔지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며 펜과 종이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하얀 종이에 두 개의 기둥이 지붕을 받치고 있는 고인돌 모양을 그린 뒤 조직이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두 기둥이 바로 '내부통제'와 '위험관리'라고 설명했다.

결국 내부통제 시스템이 무너진 조직은 기둥이 내려앉은 집과 같다는 것이다.

◆ 금융은 공공성 지녀, 최고경영자 내부통제 책임 더 무거워야

윤 전 원장은 특히 금융사는 지급결제와 대출, 투자, 보험 등 국민 모두가 필요로 하는 경제생활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내부통제 관리 책임이 더 무겁다고 바라봤다.

은행 등 금융산업은 정부가 필수적 금융서비스를 민간에 이양하면서 상업성을 허용한 산업이라는 점을 짚었다.

은행이 10% 중반대의 자기자본비율을 지니고도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자기 돈이 아닌 고객의 예금, 돈을 받아 대출을 해주면서 돈을 번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국내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총자본비율은 15.76%로 나타났다. BIS 자본비율은 총자산 대비 자기자본 비율을 말한다. 제조업 기업들의 자기자본비율이 통상 50% 안팎을 보이는 것과 비교된다.

윤 전 원장은 이런 금융사의 공공성을 고려할 때 내부통제에서 금융지주, 은행 등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윤 전 원장은 “내부통제 부실의 결정적 책임은 최고경영자에 있다”며 “여전히 금융사 지배구조에서 최고경영자에 모든 권한이 집중돼 있는 만큼 금융지주 회장, 은행장 등 의사결정권자들의 역할이 내부통제 시스템 개선에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윤 전 원장은 “내부통제 부실을 막기 위한 규정, 절차를 아무리 잘 갖춰도 최고경영자가 고인돌의 머리에서 내려 누르는 지배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사고, 나아가 위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윤석헌 전 금감원장 “금융사 내부통제 실패는 CEO가 책임져야 한다”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왼쪽 3번째)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금융 공공성 확보를 위한 금융감독 강화방안’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내부통제 부실 원인은 결국 ‘비용절감’, 강력한 제재 필요해

윤 전 원장은 “불완전판매, 횡령 등 문제가 생기는 것은 결국 써야할 비용을 제대로 쓰지 않은 것, 투자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라며 “달리 말하면 금융사가 수익을 너무 강조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내부통제 실행을 위한 교육과 인력확충, 시스템 개선 이런 모든 것들은 결국 비용이 필요한데 이 비용을 아끼려다 보니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은행들이 새로운 사업모델 개발에 비용과 역량을 들이지 않고 손쉽게 펀드상품 판매 등으로 비이자이익을 늘리고 있는 행보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여기서 또 다시 최고경영자의 역할과 책임이 중요해진다. 내부 조직 운영과 수익 다각화 등 경영전략을 총괄하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윤 전 원장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내부통제 부실로 금융사고가 발생했을 때 최고경영자를 강력하게 제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봤다. 실제 윤 전 원장은 금감원장 시절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손실사태와 관련해 당시 시중은행장 등 최고경영자에 관리부실 책임을 물어 문책경고 등 중징계를 내렸다.

최고경영자에 관한 제재는 권한만큼 책임을 진다는 의미와 동시에 내부통제를 강화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 수단이라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하반기 시범운영을 앞두고 있는 금융사 책무구조도도 강력한 실행방안이 전제된다면 내부통제 부실을 개선하는 데 실질적 효과를 낼 것으로 바라봤다.

윤 전 원장은 이밖에 내부통제 시스템의 충실한 실행을 위한 요소로 '징벌적 손해배상'과 '편면적 구속력 제도 도입' 등을 꼽았다. 편면적 구속력은 금감원 분쟁해결기구 등이 내린 결정을 민원을 제기한 소비자가 수용하면 금융사는 이를 반드시 따라야 하는 구속력을 말한다.
 
[인터뷰] 윤석헌 전 금감원장 “금융사 내부통제 실패는 CEO가 책임져야 한다”

▲  윤석헌 당시 금융감독원장(왼쪽)이 2018년 7월23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시중은행장들과 첫 상견례를 갖고 있다. <연합뉴스>

◆ 내부통제 부실은 소비자 보호와 직결, 금융산업 선진화의 핵심 과제

윤 전 원장은 금융사의 내부통제 개선은 현재 시점에서 한국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바라봤다.

국민 경제생활의 근간이 되는 가장 신뢰할 수 있어야 하는 은행이 오히려 소비자에 위험을 전가하고 피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올해 홍콩 ELS 대규모 손실사태는 물론 과거 해외파생결합펀드(DLF), 라임펀드 사태 등은 모두 금융사 판매시스템 차원의 불완전판매, 소비자 보호 관리와 판매정책의 전반적 부실을 드러냈다. 

한 마디로 은행이 고객에게 상품의 손실위험 등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상품을 많이 파는 데 열중했다는 뜻이다.

윤 전 원장은 “내부 횡령과 불완전판매는 모두 있어서는 안 되지만 개인적으로는 불완전판매가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며 “횡령은 은행 자산을 갉아먹어도 고객에게 피해를 주진 않지만 불완전판매는 고객에게 직접적 피해를 주고 은행을 믿은 고객을 배신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의 공공성에 직접적으로 반하는 영업행위라는 것이다.

윤 전 원장은 이런 측면에서 은행 등의 펀드상품 수수료 체계, 핵심성과지표(KPI) 산정방식도 변해야 한다고 봤다.

윤 전 원장은 “고위험 펀드상품 등을 판매할 때는 은행도 최소한의 위험을 고객과 분담해야 한다”며 “지금처럼 손실과 관계없이 판매금액의 몇 프로가 아닌 손실이 나면 은행도 부담을 나눠질 수 있는 수수료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 전 원장은 “한국 금융산업 발전에서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지배구조, 내부통제, 위험관리 이 3가지다”며 “이 부분들이 잘 갖춰지면 금융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윤 전 원장은 한국은행에서 일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노스웨스턴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캐나다 맥길대 교수로 재직했고 귀국해 한국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으로 일했다. 그 뒤 한림대 경영대,  숭실대 금융학부, 서울대 경영대 등에서 오랫동안 강단에 선 교수 출신 금감원장이다.

2018년 문재인 정부에서 제13대 금감원 원장에 임명된 뒤로는 금감원의 감독기능을 강화하면서 ‘호랑이 금감원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21년 5월까지 금감원장으로 일해 역대 금감원장 가운데 3년 임기를 채운 3번째 원장이기도 하다.

윤 전 원장은 금감원장 시절 무엇보다 금융소비자 보호 중요성을 강조하고 내부통제 시스템 개선에 힘을 실은 것으로 평가된다.

윤 전 원장 시절 금융소비자보호법이 발의 10년 만에 국회를 통과했고 2015년 폐지됐던 종합검사도 4년 만에 부활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 파생결합상품 손실사태 라임펀드 환매중단사태 등에서도 강한 존재감을 보였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