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가 '박근혜 스캔들'로 변질되면 안되는 이유  
▲ 최순실씨가 1일 검찰조사를 계속 받기 위해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최순실 게이트.’

정치권력과 관련된 대형 비리의혹을 흔히 ‘-게이트’(gate)라고 부른다. 원래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유래한 것이다.

1972년 6월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민주당을 도청한 사건이다.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가 있던 워싱턴의 빌딩 이름이 바로 워터게이트였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저서 ‘시뮬라시옹와 시뮬라크르’에서 닉슨의 사임을 몰고온 워터게이트 사건을 아주 흥미롭게 분석했다.

그는 워터게이트가 정치적 스캔들이 아닌데도 모종의 것을 감추기 위한 하나의 스캔들로 사람들에게 주입된, 말하자면 ‘소비’됐다고 봤다. 

보드리야르가 말한 감추고 싶은 무엇은 닉슨의 도청행위와 마찬가지로 불법적이고 부도덕하며 부패한 미국의 정치인과 정치현실이다.

워터게이트라는 하나의 사건이 현실을 은폐하는 데 역설적으로 어떻게 기능하고 작동했는지를 통찰력 있게 보여준 것이다. 흔히 파생실재 혹은 과잉현실로 번역되는 보드리야르의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 개념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예 가운데 하나다.

보드리야르는 이런 개념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하나의 모사된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현실은 모사된 이미지의 세계, 즉 허구 혹은 환상일 뿐이며 가짜가 진짜를 대신하는 세계라는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워터게이트 사건이 닉슨이란 한 개인의 우연한 탈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정부와 실체가 미디어나 권력 등을 통해 시뮬라시옹(모사하기)를 통해 은폐되어 있었을 뿐이라고 봤다. 뒤집어 말하면 정치현실은 권력 혹은 권력자에 의해 부정부패, 부도덕, 비리 등으로 ‘이미’ 오염돼 있었다는 얘기다.

‘최순실 게이트’로 불리는 이번 사태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 국정농단에 가담한 이들을 옹호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언론들이 ‘단독’ 혹은 ‘특종’을 내걸고 경쟁적으로, 때론 선정적으로 쏟아내는 최씨 관련 의혹보도를 보면서 이번 사안이 하나의 스캔들로 끝나는 것이 아닐지 의문스러운 것이다.

일부 정치인들 중에는 ‘꼴뚜기가 뛰면 망둥이가 뛰는’ 모습도 눈에 띈다. 부정부패나 비리, 권력을 등에 업은 ‘호가호위’로부터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정말 자유로운지 묻고 싶다. 이는 정치인뿐 아니라 언론도 마찬가지인 듯 싶다.

최순실 게이트 이전에 지금까지 올해 하반기 우리사회 전반을 강타한 최대 이슈라면 ‘김영란법’일 것이다. 김영란법도 보드리야르의 눈으로 보면 어쩌면 하이퍼리얼리티에 불과할지 모르겠다.

김영란법이 시행되기만 하면 우리사회가 부정청탁이나 뇌물수수 등과 같은 기존의 관행을 일거에 끊고 청렴한 세상이 될 것이란 믿음 혹은 착각 말이다.

최순실 게이트나 김영란법이 하나의 자기위안으로 ‘소비’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최순실 관련 비리에 연루되지 않으면, 김영란법에 걸리지만 않으면 모든 혐의로부터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는 '착시현상'을 경계해야 할 때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