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SMC가 7나노 이하 파운드리 시장에서 고객사 수주를 독점하며 ASML과 EUV 장비 가격 협상에도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ASML의 하이NA EUV 반도체 장비 내부 사진. |
[비즈니스포스트] 대만 TSMC가 첨단 파운드리 시장에서 지배력을 더욱 높이면서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기업 ASML과 공급물량 및 가격 협상에 우위를 확보한 것으로 파악된다.
ASML의 극자외선(EUV) 장비는 미세공정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만큼 TSMC의 파운드리 독점 체제가 더욱 강화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만 디지타임스는 19일 “웨이저자 TSMC 회장의 유럽 순방은 훌륭한 성과를 거뒀다”며 ASML의 하이NA EUV 장비에 관련한 협상력을 증명했다고 보도했다.
웨이저자 회장은 최근 유럽에서 ASML을 비롯한 주요 장비 협력사 및 파운드리 고객사들과 사업 논의를 진행했다.
ASML과 논의된 사안은 주로 신형 하이NA EUV 장비 공급과 관련한 내용으로 추정된다.
올해 초 상용화된 하이NA EUV는 2나노 미만 미세공정 반도체 생산에 특화한 고사양 반도체 장비다. 현재 인텔에 공급이 시작됐으며 TSMC에는 연내 도입이 예정되어 있다.
TSMC는 당초 하이NA 장비 도입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지만 웨이 회장의 유럽 순방 전후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디지타임스는 TSMC가 ASML과 반도체 장비 공급 및 단가 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으로 논의를 진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관측을 제시했다.
하이NA 장비 가격은 1대당 3억8천만 달러(약 5240억 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TSMC가 도입 시기를 늦추려 한 이유도 비용 부담 때문으로 분석된다.
디지타임스는 ASML이 TSMC에 장비 공급가격을 낮추기로 하며 적극적인 영업에 나섰을 공산이 크다고 보도했다. 단가를 10% 이상 인하하는 방안이 논의됐을 가능성도 거론됐다.
TSMC가 첨단 파운드리 시장에서 유일하게 하이NA 장비를 지속적으로 구매할 만한 고객사인 만큼 ASML이 하이NA 기술 도입을 설득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디지타임스는 “인텔과 삼성전자도 충분한 구매력과 자금 여력을 갖추고 있지만 장기 관점에서 보면 TSMC와 비교해 반도체 생산 능력과 고객사 기반이 크게 뒤떨어진다”고 전했다.
결국 TSMC가 ASML과 협상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TSMC가 세계 첨단 파운드리 시장에서 점유율을 더욱 높이면서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한 배경으로 제시됐다.
현재 TSMC는 엔비디아와 AMD의 인공지능(AI) 반도체, 애플과 퀄컴의 최신 프로세서 위탁생산 등을 독점하고 있다. 따라서 추가 시설 투자에 나설 필요성도 높아졌다.
다만 디지타임스는 TSMC가 최근 해외 반도체공장 투자를 확대하고 있어 수익성을 유지하려면 비용을 절감하는 일도 중요한 과제로 자리잡고 있다고 바라봤다.
시설 투자 비용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 장비 공급업체에 단가 인하를 요구하는 것은 수익성을 높이는 데 효과적 방안이 될 수 있다.
▲ 대만 신주과학단지에 위치한 TSMC 반도체공장 건물 전경. |
TSMC가 첨단 파운드리 시장에서 사실상의 독점체제를 강화하며 장비 협력사들의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지고 있어 이런 전략을 추진하기 유리해지고 있다.
디지타임스는 TSMC가 ASML뿐 아니라 도쿄일렉트론과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등 글로벌 주요 반도체 장비기업에 점차 협상 주도권을 갖춰가고 있다고 전했다.
ASML은 7나노 이하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EUV 장비를 공급하는 세계 유일한 기업으로 한동안 ‘슈퍼 을(乙)’ 기업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러나 TSMC와 장비 공급 협상에서는 ASML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이며 입지가 다시 바뀌고 있는 상황이다. TSMC가 ‘슈퍼 갑(甲)’으로 지위를 강화하고 있는 셈이다.
디지타임스는 미국과 중국 사이 갈등이 격화되며 TSMC의 해외 투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이러한 추세에 더욱 힘을 싣고 있다고 바라봤다.
TSMC가 하이NA 장비 물량 확보와 가격을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해 반도체 생산라인에 도입하기 시작한다면 2나노 미만 파운드리 공정에서도 자연히 우위를 차지할 공산이 크다.
결국 삼성전자와 인텔이 첨단 파운드리 사업에서 TSMC를 추격하기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디지타임스는 “삼성전자와 인텔이 7나노 이하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에 고전해 TSMC의 독점체제는 더 강화되고 있다”며 “장비 공급사들의 협상에 선택지가 좁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