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의 자진신고제(리니언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자진신고제 악용에 대한 비판이 높은데 두산중공업이 자진신고 사실을 누설했는데도 공정위가 눈감아 준 것으로 드러나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야권은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를 추진하고 있는데 자진신고제를 둘러싼 논란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 자진신고제 논란 부채질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1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올해 6월까지 기업들이 자진신고로 감면받은 과징금은 8709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공정위, 두산중공업에 자진신고제 편파적 적용해 뭇매  
▲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과 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도별 감면액은 2012년 1406억 원, 2013년 684억 원에서 2014년 3551억 원으로 크게 늘었다가 2015년 1204억 원, 올해 상반기 기준 864억 원으로 파악됐다. 담합 건수는 2012년 12건, 2013년 24건, 2014년 38건, 2015년 48건, 해 상반기 13건이었다.

자진신고제는 이른바 ‘죄수의 딜레마’ 이론을 활용한 제도다. 담합사실을 공정위에 자진신고하고 조사에 협조하는 경우 자진신고 1순위자는 과징금 전액이, 2순위자는 50%가 감경된다. 사업자 사이에 불신구조를 만들어 담합이 다시 이뤄지지 못하도록 하려는 취지에서 1997년 도입됐다.

공정위는 “담합조사는 은밀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증거 확보가 어려워 자진신고가 꼭 필요하다”며 자진신고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자진신고제가 불공정행위를 한 기업이 처벌을 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아 왔다. 악용 사례가 속출하는 데다 감면 혜택을 받은 기업들이 대체로 시장점유율이 높은 대기업이기 때문이다.

정재호 더민주 의원이 10일 입수한 ‘천연가스 저장탱크 리니언시 경위’ 문건에 따르면 공정위는 4월 두산중공업이 법을 위반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과징금을 면제해줬다.

두산중공업은 2005년에서 2012년 사이에 한국가스공사가 발주한 LNG 저장탱크 건설공사 입찰에서 담합을 주도했다.

두산중공업은 이 사실을 2014년 5월13일 자진신고했지만 공정위 사무처는 두산중공업의 자진신고 1순위자 지위를 취소했다. 신고 하루 뒤인 5월14일 ‘담합을 자진신고했으니 공정위 조사에 대비하라’며 다른 회사에 전화를 돌린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정위는 올해 4월20일 전원회의에서 “누설은 인정되지만 누설자 개인 차원의 일탈행위로 간주된다”며 두산중공업의 자진신고 1순위자 지위를 회복했다.

정재호 의원은 “자진신고제를 악용하는 대기업에 공정위가 개인 일탈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어 준 것”이라며 “자진신고 누설은 사건을 축소·은폐하기 위한 또 다른 형태의 담합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해야”

두산중공업에 대한 공정위의 결정은 공정위가 불과 2년 전에 만든 규정과도 모순된다.

2011년 금영과 TJ미디어는 노래방 반주기와 신곡 가격 등을 올리는 담합을 했다가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두 회사는 과징금을 줄일 목적으로 번갈아 자진신고를 해 한 회사는 과징금을 면제받고 다른 회사가 부과받은 과징금은 반씩 나눠서 낸 것으로 밝혀졌다. 자진신고 자체를 담합한 꼴이다.

  공정위, 두산중공업에 자진신고제 편파적 적용해 뭇매  
▲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
공정위는 이런 악용사례를 막겠다며 2014년 4월15일부터 ‘자진신고자 감면제도 운영고시’를 개정안을 시행했다. 자진신고한 기업이 담합 사실을 외부에 누설할 경우 감면 혜택에서 제외하도록 한 것이다.

최영근 공정위 카르텔 총괄과장은 당시 “이번 개정으로 일부 대기업에 면죄부로 악용된다는 리니언시의 약점을 보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산중공업 과징금 면제로 이런 장담이 무색해진 것이다.

자진신고제가 과징금을 면제받으려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정위 조사가 시작되면 그제서야 자진신고하는 사례가 속출하기 때문이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 동안 자진신고제 적용사건 70건 가운데 60건은 공정위 조사가 시작된 뒤에야 자진신고가 이뤄졌다.

롯데면세점·신라면세점·SK네트웍스 등 3월 공정위로부터 환율 담합 혐의로 조사를 받아온 면세점들도 당초 담합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공정위 조사가 좁혀지자 뒤늦게 8곳 가운데 4곳이 자진신고를 신청했다.

자진신고제를 둘러싼 논란은 최근 야권이 추진하고 있는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에도 힘을 실을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가 자진신고제에 지나치게 기대고 있어 악용을 막지 못한다는 점이 전속고발권 폐지를 주장하는 근거 가운데 하나로 제시된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담합사건에 부과된 과징금 가운데 자진신고제가 적용된 사건의 과징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90.9%에 이른다.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은 9월 “강제수사권이 없는 공정위가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워 자진신고제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며 공정위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더민주에서도 6월 최운열 의원이 33명의 의원과 함께 개정안을 발의해 전속고발권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