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용진 회장 체제에서 신세계그룹이 어떻게 바뀔까 주목된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총수로서 능력을 입증할 시험이 시작됐다.
지난해 그룹 핵심인 이마트가 사상 첫 적자를 내면서 신세계그룹이 창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정 회장이 본인만의 전략으로 그룹을 본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8일 신세계그룹은 정 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했다고 밝혔다. 2006년 부회장에 오른지 18년 만이다.
이번 승진과 관련해 재계에서는 정 회장이 총수로서 역량을 입증할 진정한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다.
정 회장의 어머니인
이명희가 '명예회장'이 아니라 '총괄회장'이라는 직책을 달았기 때문이다.
이 총괄회장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뒤에서 그룹 경영 전반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아들을 회장으로 올리면서도 언제든 등판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이에 정 회장이 앞으로 신세계그룹 총수를 맡을 만한 능력이 충분하다는 믿음을 그룹 안팎에 새기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세계그룹의 양 축은 신세계와 이마트다. 정 회장이 18년 동안 신세계그룹 부회장을 맡았지만 신세계는 정 회장의 동생인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이 이끌어왔다.
정 회장에게 이마트 뿐만 아니라 신세계까지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려보라는 이 총괄회장의 의도가 아니겠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지배구조가 바뀌지 않은 만큼 신세계 운영 방향에 대한 결정은
정유경 총괄사장이 온전히 맡을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재계 관계자는 “신세계그룹은 이마트와 신세계로 나뉘어 남매경영 구도가 굳어진지 오래됐고 정 총괄사장이 신세계를 잘 운영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며 “정 회장이 승진했다고 해서 신세계 운영에 크게 간섭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으로도 남매경영 구도가 바뀌지 않는다고 해도 신세계그룹 회장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무게감은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신세계그룹은 지난해 기준으로 총수가 있는 기업으로만 치면 재계 서열 9위다. 총수가 없는 기업까지 따져도 자산총액 11위에 올라있다.
이마트는 지난해 사상 첫 적자를 냈고 신세계도 지난해 실적이 후퇴했다. 그룹의 양 축이 모두 쉽지 않은 상황에서 신세계그룹의 위기 의식도 커진 것으로 보인다.
‘변해야한다’는 판단이 정 회장의 승진으로까지 이어졌을 것으로 분석된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그룹에서는 변화된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지난해부터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며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 만큼 정 회장을 중심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그룹 전체가 위기인 상황에서 정 회장 승진이 의외라는 의견도 나온다. 정 회장이 이끄는 이마트가 지난해 첫 적자를 기록할 만큼 좋지 않았는데도 오히려 회장으로 승진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그동안 다양한 사업 시도를 했다. 스타필드라는 성공 사례를 만들기도 했지만 실패하고 철수한 사업이 많다는 이미지를 가진 것도 사실이다.
위기 상황에서 그룹을 맡은 만큼 성공으로 이어지는 시도들이 절실하다. 정 회장이 그룹 회장으로서는 어떤 전략을 가져갈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
재계에서는 정 회장과 비슷한 또래들이 회장으로 대외 활동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 신세계그룹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정 회장은 부회장 시절부터 그룹을 대표해 대외 활동을 해왔지만 회장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은 부회장과 다르다는 것이다.
정 회장은 1968년생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나이가 같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정 회장보다 2살,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정 회장보다 10살이 어리다.
정 회장에 대한 ‘오너리스크’가 더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정 회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으로 여러 번 구설수에 휘말렸다.
정 회장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84만 명이 넘는다. 정 회장이 직접 관리하는 계정으로 평소에도 직접 댓글을 다는 등 활발하게 소통한다. 정 회장 스스로도 ‘인플루언서’로 불리는 것이 좋다고 할 정도다.
SNS로 소통하며 친근한 이미지를 얻었지만 ‘멸공’, ‘세월호 비하’ 등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욕설을 적은 게시글이 올라온 적도 여러 차례다.
이마트 실적이 안 좋을 때 일각에서 ‘이마트의 가장 큰 리스크는
정용진’이라는 의견이 나왔던 이유기도 하다.
정 회장은 약 3주 전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정리했다. 욕설 게시물, 비판 기사를 조롱하는 게시물, 사자성어 게시물 등을 모두 지웠다. 인스타그램 프로필 소개글도 변경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 총괄회장도 정 회장 SNS 활동에 대해 보고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신세계그룹으로서는 앞으로 정 회장이 직함에 맞는 모습을 보여주며 달라질 것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이 그룹의 기대에 부응하려면 첫 해부터 달라진 신세계그룹을 보여줘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의 그룹 쇄신 의지는 지난해부터 감지됐다.
신세계그룹은 지난해 11월 기존 전략실의 이름을 경영전략실로 바꾸고 기능 중심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강화했다. 정 회장은 직접 전략회의를 열어 과거 경영전략실이 일해 온 방식을 질책하고 강도 높은 쇄신을 당부했다.
올해 신년사를 통해서는 “2024년에는 우리가 1등이 맞느냐는 물음에 분명한 답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윤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