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탄 알 자베르 COP28 의장이 30일(현지시각)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COP28 개막 행사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
[비즈니스포스트] 기후변화에 따른 개발도상국의 피해를 지원하기 위한 ‘손실과 피해 기금(Loss and Damage Fund)’이 제28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의 시작과 함께 첫발을 뗐다.
다만 손실과 보상 기금이 실질적 역할을 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30일(현지시각)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개막한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손실과 피해 기금이 공식 출범했다.
술탄 알 자베르 COP28 의장은 이날 연설을 통해 “우리 모두는 기후변화 대응 전반에서 가장 핵심적 요소가 금융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며 “우리는 오늘 역사를 만들었고 이는 전 세계와 우리의 노력에 긍정적 추진력을 불어넣는 신호”라고 말했다.
손실과 보상 기금은 오랜 기간 논의가 이어져 오다가 지난해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린 제27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처음 합의됐다.
당시에도 합의 도출에 막판까지 진통을 겪다 결국 당사국총회 종료일을 넘긴 새벽에야 극적으로 협상이 타결됐다.
이후 올해 당사국총회가 열리기까지 기금의 운용 방식 등을 놓고 준비위원회의 다섯 차례 회의를 통한 후속 논의가 이어졌다.
준비위원회 논의를 통해서는 세계은행(WB)이 우선 4년 동안 임시적으로 수탁자, 유치자로서 역할을 맡아 기금을 운용한다는 권고안을 마련했다. 권고안은 이번 당사국총회 첫날에 결정문으로 채택됐다.
손실과 보상 기금은 오랜 기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첨예하게 의견 대립을 이어온 의제인 만큼 이번 당사국총회에서의 기금 출범 선언은 분명 의미가 크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이번 기금 출범을 놓고 “기후변화로 피해를 본 가난한 국가들이 보상을 위해 펼친 30년 싸움에서 드디어 승리했다”는 평가를 내놨다.
다만 기금이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에 따른 손실과 피해에 실제 도움이 되기까지는 여전히 논의돼야 할 내용이 많다.
이날 기금 출범을 놓고 당장 첫 시작인 점을 고려하더라도 현재까지 모인 기금의 규모가 너무 적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금 출범과 함께 공개된 기금 규모는 당사국총회의 의장국인 아랍에미리트 1억 달러를 비롯해 독일 1억 달러, 영국 5천만 달러, 미국 1750만 달러, 일본 1천만 달러 등이다.
유럽연합(EU)이 회원국을 대표해 1억4500만 달러를 추가로 공여하기로 한 것까지 포함하면 현재 모인 전체 기금 규모는 4억2천만 달러 정도다.
세계 각국 과학자들의 연구보고서 등에서 추정되는 기후재난에 따른 개발도상국의 손실 및 피해 규모가 4천억 달러 이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까지 모인 기금 규모는 피해 규모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미국 언론 워싱턴포스트는 기금 규모를 놓고 “개발도상국의 연간 기후재난 피해 규모보다 훨씬 적을 것”이라며 “추가로 공여 약속이 발표돼 기금 규모가 의미 있게 커질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평가했다.
기금의 규모 확대를 위해 어느 국가가, 어느 정도 공여할 것인지를 정하는 문제도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은 중국, 사우디아비아 등 자금력 있는 개발도상국도 기금에 공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봅커 훅스트라 유럽연합(EU) 기후행동 집행위원은 이번 당사국총회를 앞둔 20일 언론을 통해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에서 마련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분류는 당시에나 유효했고 손실과 보상 기금에서는 기준이 될 수 없다”며 “지불 능력 있는 국가는 기금에 기여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반면 개발도상국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놓고 선진국의 기금 공여 책임을 희석하려는 시도로 본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의견 차이로 기금 공여의 주체, 범위, 의무 여부 등을 놓고는 결국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관련 내용은 정해지지 않은 채로 기금이 출범하게 됐다.
이번에 채택된 결정문에는 ‘선진국에 기금 공여를 촉구하고 기타 당사국에는 가능하다면 자발적 공여를 독려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유럽의 기후정책 싱크탱크인 E3G의 알렉스 스콧 기후외교 및 지정학 프로그램 리드는 “이번 기금 합의는 기후위기 대응에 거대한 돌파구가 될 것”이라며 “이제 선진국의 정책입안자들은 기금에 얼마나 공여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