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수소연료전지 기업 두산퓨얼셀이 지난해보다 좋은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실적 개선 속도는 다소 더딘 상황에 놓여 있다.
비우호적으로 돌아선 경제·금융 환경 탓에 실적 성장이 제한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형락 두산퓨얼셀 대표이사 사장은 제품 다변화에 힘을 실으며 다가올 수소시대에 성장기반을 강화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 정형락 두산퓨얼셀 대표이사 사장이 제품 다변화에 주력하고 있다.
23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경제·금융 환경 악화에 따른 수소연료전지 관련 프로젝트의 지연 가능성이 두산퓨얼셀의 실적에 불확실성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두산퓨얼셀이 이미 수주했던 프로젝트들에 관한 자금조달 사정이 여의치 않게 되자 일정이 뒤로 밀리며 프로젝트 수행에 따른 실적 반영이 늦춰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때문에 두산퓨얼셀의 실적 개선도 당초 기대치보다는 더딘 흐름을 보이고 있다.
두산퓨얼셀은 2023년 3분기 연결기준으로 매출 456억 원, 영업이익 7억 원을 거둔 것으로 집계됐다. 2022년 3분기와 비교하면 매출은 54.0% 늘고 영업 흑자로 돌아섰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실적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증권사들의 추산치 평균(컨센서스)을 밑돌았다.
당초 두산퓨얼셀의 실적에 대한 시장의 눈높이가 높았던 배경에는 올해부터 수소발전입찰시장 제도가 본격화해 실적 개선세가 가시화될 것이란 전망이 깔려 있었다.
수소발전입찰시장은 수소 또는 수소화합물을 연료로 생산한 전기를 구매·공급하는 제도로 수소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구매자인 한국전력과 구역전기사업자는 전력수급기본계획 등을 고려해 산업통상자원부가 고시한 바에 따라 수소발전량을 구매해야 한다.
올해에는 개질수소와 부생수소 등을 모두 포함한 일반수소의 발전입찰시장이 첫 발을 디뎠지만 내년부터는 탄소배출량이 더 적은 그린수소와 블루수소 등의 청정수소 발전입찰시장이 추가로 개설돼 점차 입찰물량을 늘려나갈 예정이다.
두산퓨얼셀은 첫 입찰에서 전체 물량의 80%에 가까운 70MW를 따냈다. 내년 청정수소 발전입찰시장이 열리면 수주 여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제도적 환경이 우호적으로 조성되고 있음에도 실제 영업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친 만큼 정형락 사장으로서는 올해 경영성과에 다소 아쉬움이 남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궁극의 친환경 연료로 꼽히는 수소 시대의 도래는 필연적이란 전망이 많은 만큼 정 사장은 속도가 더딜지라도 성장동력을 강화하며 향후 이익기반을 확대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 사장은 기존 주력분야인 발전용 수소연료전지 외에도 모빌리티용 수소연료전지로 제품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기 위해 기술개발과 사업화 로드맵을 마련하고 신시장 개척을 추진하고 있다.
수소버스와 선박에 적용할 수 있는 수소연료전지를 개발해 수익원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통계청과 버스업계 등에 따르면 매년 약 6천 대의 노후 버스 교체 수요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노후 버스의 교체 수요 가운데 90% 이상을 친환경 버스로 대체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수소버스 구매 보조금과 수소 연료 보조금이 도입되면 수소 버스의 수요가 늘어날 공산이 크다.
두산퓨얼셀은 캐나다 수소연료전지 기업 발라드와 협업해 버스에 탑재될 수소연료전지를 개발하는 한편 운수회사와 협력기반을 구축해 노후 버스의 교체 수요를 확보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선박 분야에 적용할 수소연료전지 시장에도 진출을 꾀하고 있다.
해운사들을 향한 환경 규제가 강화되며 친환경 선박 도입이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친환경 연료 가격은 당분간 화석연료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준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따라 내연기관보다 높은 효율을 지닌 동력원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선박용 수소연료전지 시장도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위해 정 사장은 기술 포트폴리오 다변화도 꾀하고 있다.
주력 사업인 발전용에는 주로 인산형수소연료전지(PAFC) 기술이 적용된다. 인산형수소연료전지에는 전해질로 액체 인산을 쓰고 있는데 인산은 다른 연료전지 기술과 비교하면 가격은 저렴하지만 크고 무겁다는 단점을 지닌다. 때문에 발전용으로는 적합해도 모빌리티용으로는 부적합한 측면이 있다.
이와 달리 고분자전해질수소연료전지(PEMFC)는 빠른 시동이 가능하고 껐다 켰다를 자주 반복하더라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 장점이다. 반면 값비싼 백금을 촉매로 써야 하고 전해질의 수분과 작동 온도를 잘 제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특성을 반영해 대개 육상용 수소연료전지에 적용된다.
▲ 고분자전해질을 적용한 두산에너빌리티의 수전해 장치 모형. <비즈니스포스트>
두산퓨얼셀도 이런 점을 고려해 수소버스 사업에 고분자전해질수소연료전지 기술을 적용한다는 계획을 마련해 뒀다.
고체산화물수소연료전지(SOFC)는 높은 작동 온도와 깨지기 쉬운 재료 특성 때문에 지상 수송용으로는 부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다른 종류의 기술과 비교해 높은 효율 덕분에 발전용이나 선박 등 대형 모빌리티에서 강점을 보인다.
두산퓨얼셀은 내년 고체산화물수소연료전지 기술을 적용한 발전용 수소연료전지 상업화와 선박용 선급인증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2025년에는 선박용 실증운항도 실행할 예정이다.
앞서 정형락 사장은 ‘2023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하며 “앞으로도 친환경, 고효율 수소연료전지 개발, 육상 수소모빌리티 사업 전개, 이산화탄소 포집·활용(CCU) 기술 연계 청정수소연료전지 개발 등 탄소중립에 기여할 수 있는 제품과 기술 확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최규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두산퓨얼셀이 육상 및 선박용 모빌리티 신사업을 구체화하고 있는데 특히 수소 버스 사업은 2024년 저상 버스 출시를 시작으로 본격적 시장 공략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며 “먹거리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대응을 위한 새로운 무기들도 실속있게 챙기고 있다”고 바라봤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