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채널Who] 임원인사를 보면 그 기업이 나아갈 길이 보인다. 이 문장은 거의 모든 기업, 특히 그룹 단위로 커진 대기업집단에게는 거의 들어맞는 이야기다. 회사가 인력을 어떻게 배치하는지는 그 회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려는지 확실하게 보여주곤 한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노태문 사장을 MX사업부장으로 계속 유임한다면 삼성전자는 노태문 사장의 장점인 ‘갤럭시 생태계의 육성’에 계속 방점을 찍겠다는 의지, 혹은 원가 절감 기조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고 바라볼 수 있다.

SK그룹이 인수합병과 구조조정 전문가인 박정호 부회장을 SK텔레콤 대표로 앉혔을 때 많은 사람들은 SK텔레콤의 중간지주사 전환을 예상했고, 결국 그 예상은 들어맞았다. 기업의 인사가 보여주는 ‘이정표’로서의 역할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예시라고 볼 수 있다.

카카오는 기업의 문을 연지 10년이 조금 넘는 신생 기업이고 IT벤처기업으로 시작한 기업이지만 이미 그 규모는 어지간한 대기업집단에 맞먹게 성장했다. 이제 카카오가 아니라 카카오그룹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계열사도 많다.

그렇다면 카카오의 인재 활용방식은 그에 맞게 진화하고 있는 것일까?

아쉽지만 카카오는 아직까지 인사를 통해 카카오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는 데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카카오 본사의 인사를 살펴보면 여전히 카카오는 상황에 따라서 유능하면서 김범수 창업주의 신임이 두터운 사람을 리더에 앉히는, 소위 ‘벤쳐’식 인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카카오의 CEO를 맡았던 사람들을 쭉 훑어보면 모두 김범수 창업주와 개인적 친분이 두터운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민수 전 대표와 조수용 전 대표, 그리고 현재 대표인 홍은택 대표는 NHN에서부터 김범수 창업주와 매우 가까운 사이었던 인물들이고 남궁훈 전 대표는 김범수 창업주와 한게임을 함께 만든 사람이다.

실제로 카카오 노동조합은 올해 8월에 노조 설립 이후 첫 공동행동에 나섰는데, 카카오 위기의 책임을 김범수 창업주에게 “김범수 창업주가 초래한 인맥 경영의 한계”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물론 사기업이 오너와 개인적 친분이 있는 사람을 중용하는 것이 잘못된 일도 아니고, 지금까지 언급된 사람들 모두 이미 능력을 검증받은 사람들이기도 하다.

문제는 카카오가 인사를 통해서 명확한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삼성전자와 SK그룹의 예를 들었지만, 같은 ‘벤처’ 출신인 네이버를 보더라도 카카오의 인사와는 결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성숙 전 네이버 대표이사는 IT기업의 대표로서는 매우 드물게 무려 영어영문학과를 나왔다. 기자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기업 홍보팀, 엠파스 등을 거친, 말 그대로 ‘경험 퀸’이다. 김상현 전 네이버 대표이사는 한 전 대표를 두고 “네이버 서비스의 구석구석 모르는 것이 없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런 한 전 대표를 네이버의 대표이사에 앉혔다는 것은, 네이버가 검색엔진 기업에서 벗어나 커머스, 콘텐츠 등을 아우르는 종합 IT기업으로 발전하겠다는 비전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현 대표인 최수연 네이버 대표이사를 선임한 것 역시 네이버가 나아갈 길을 보여주고 있다. 최 대표는 기업 인수합병 전문 변호사 출신이며 네이버에서는 해외 전략파트를 맡았던 인물이다.

네이버는 이제 내수 기업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겠다, 그리고 그 진출 방법 가운데 가장 유력한 방법은 인수합병이 될 것이라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최 대표는 네이버 대표이사 자리에 앉은지 얼마 되지도 않아 포쉬마크 인수를 단행했다. 그 인수가 적절했는지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갑론을박이 있지만, 최소한 명확한 방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40대 초반이라는 최 대표의 젊은 나이를 살피면 앞으로 MZ세대를 적극적으로 공략해보겠다는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의 생각을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카카오는 느낌이 다르다. 홍은택 대표는 ESG 전문가, 여민수 전 대표는 광고와 ESG 측면에서 강점이 있고 조수용 대표는 기업브랜딩 전문가다. 남궁훈 대표는 게임회사 출신이다.

하지만 남궁훈 전 대표가 카카오 대표 자리에 올랐을 때, 앞으로 카카오가 게임 사업에 집중하겠다고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남궁훈 전 대표는 ‘게임 전문가’로서가 아니라, 김범수 창업주와 가까우면서 일도 잘하는 능력자였기 때문에 카카오의 대표에 선임된 것이기 때문이다.

카카오의 인사는 카카오의 사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보여주는 이정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저번 영상에서 카카오의 넥스트(NEXT)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인사에서도 이런 점들이 드러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카카오톡은 국내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사용하고 있는 말 그대로 ‘국민 앱’이다. 그리고 이 카카오톡의 점유율에 힘입어 카카오T,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등의 서비스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다. 

카카오, 카카오페이, 카카오뱅크, 카카오게임즈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의 수도 매우 많다. 카카오가 ‘국민 기업’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는 뜻이다.

‘국민 기업’ 카카오가 어서 빨리 자신들만의 비전을 만들고, 적절한 인사를 통해 그 비전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해본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