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이 지상파방송 SBS 지배력을 유지하는데 긍정적 신호가 감지된다. 정부가 방송 소유·겸영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태도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태영그룹은 자산 규모가 10조 원을 넘어감에 따라 SBS 지배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지분매각 유예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정부가 규제완화를 본격화하면 지분 처분을 피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고개를 든다.
▲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이 SBS 지배력을 지켜낼지 주목된다. |
11일 방송업계와 정치권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정부가 방송 소유·겸영 규제 완화를 통해 미디어콘텐츠산업 투자 활성화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은 지난 10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방통위는 혁신성장 디지털·미디어 동행사회란 비전을 두고 4대 핵심과제를 마련해 적극 추진하고 있다”며 “새로운 방송통신시장을 반영한 디지털·미디어 미래 발전전략을 수립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위원장은 “광고 규제를 ‘원칙 허용, 예외 금지’로 재정비해 미디어 콘텐츠 성장 재원을 확충하고 방송 편성규제, 소유·겸영 규제 개선과 미디어 정책 추진체계 마련을 통해 글로벌 선도 기반을 조성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를 두고 정부가 사실상 방송 소유·겸영 규제 완화를 공식화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태영그룹의 SBS 지배력이 유지될 수 있다는 시선이 나오는 대목이다.
현행 방송법에 따르면 자산총액 10조 원을 넘는 기업은 지상파방송 지분을 10% 이상 소유할 수 없다. 대기업이 방송을 사유화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다.
태영그룹은 공정거래위원회가 2022년 4월27일 발표한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현황에서 자산규모 11조2천억 원을 보유하며 처음으로 자산총액 10조 원을 넘겨 재계순위 41위에 올랐다.
태영그룹은 올해 지정현황에서는 자산 11조9359억 원을 보유해 재계순위 40위를 기록했다.
태영그룹 지주회사인 티와이홀딩스는 SBS 지분 36.92%를 쥐고 있다. 이대로라면 10%를 초과한 지분은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발의된 방송법 8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태영그룹은 SBS 지분을 계속 보유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개정안은 양정숙 무소속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의원 9명이 지난해 12월 발의했다. 방송사업자의 주식 또는 지분의 소유를 제한하는 기업의 자산총액을 현행 10조 원에서 국내 총생산액의 0.5% 이상 1.5%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2021년 국내 총생산액이 2162조 원임을 고려하면 자산총액 30조 이하 기업은 방송사 주식을 10% 초과해 보유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태영그룹의 SBS 지분 보유가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윤 회장은 법안 통과를 기대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법안은 여전히 계류 중이다. 2022년 3월30일 관련 상임위 법안심사소위에 상정된 뒤 진척이 나지 않고 있다.
2024년 4월 총선을 앞둔 상황에 개정안 통과가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윤 회장 입장에서는 정부의 방송 소유·겸영 규제 완화 기조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난 2022년 8월16일 ‘방송법 시행령’ 및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을 시행했다.
이는 유료방송사업자의 소유·겸영 규제를 대폭 완화해 인수·합병(M&A) 자율성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다만 지상파 방송사업자는 앞서 시행령의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이를 두고 지상파만 규제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상파와 유료방송 사이 겸영 등에 방통위 의결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동관 방통위원장이 방송 소유·겸영 규제를 개선하겠다는 발언을 한 데 윤 회장이 촉각을 세울 수밖에 없는 셈이다.
여당에서도 방송 규제 완화 움직임이 감지된다. 4일 국민의힘 미디어정책조정특위 위원장인 윤두현 의원이 한국방송학회와 공동으로 주최한 토론회에서 민영방송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토론회에 참석한 이영주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부분의 민영 지상파 방송 규제는 완화해도 된다"며 "민영 지상파 방송이 글로벌 콘텐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소유·진입 규제를 대폭 완화해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사진은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해 질의에 대답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
윤 회장은 SBS를 계속 지배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파악된다. 방통위가 2022년 9월7일 내린 시정명령에도 2023년 1월 취소 청구소송을 행정법원에 제기해 둔 상태다.
방통위는 미디어렙법 제13조 3항에 의거해 자산총액 10조 원 이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은 미디어렙사 주식·지분의 10%를 초과 보유할 수 없다며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는 6개월 이내에 이행해야 하는 사항으로 SBS는 자사 미디어렙 SBSM&C(미디어크리에이트) 지분 40%를 지니고 있다.
윤 회장은 아버지인
윤세영 창업회장이 SBS를 창업했고 애정도 깊어 지배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윤 창업회장은 1990년 국내 최초 민영방송사인 SBS를 설립하고 대표이사를 맡아 직접 경영을 했다.
윤 회장은 태영그룹의 SBS 지배력 유지를 위해 지주회사인 티와이홀딩스와 SBS미디어홀딩스를 2021년 4월에 합병하기도 했다. 지주회사는 증손회사 지분을 100% 보유해야 한다는 공정거래법 조항에 따른 행위였다.
이를 통해 기존 증손회사였던 SBS콘텐츠허브, SBSM&C가 손자회사가 됐고 SBS는 자회사가 됐다. 류수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