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미국공장에 패키징 공정 설비 빠졌다, 보조금 확대  '협상카드' 가능성

▲ TSMC가 미국 애리조나에 건설하는 반도체 파운드리공장이 패키징 설비 부재로 대만에 공급망을 의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TSMC 애리조나 반도체공장 건설 현장 사진. < TSMC >

[비즈니스포스트] 대만 TSMC가 애리조나에 신설하는 반도체공장으로 지정학적 리스크를 낮추고 미국 반도체 자급체제 구축에 기여하겠다는 계획은 ‘허상’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반도체 생산에 핵심이 되는 최종 조립 공정은 여전히 대만에서 이뤄져야만 하는 만큼 생산 거점을 다변화한 효과가 온전히 나타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12일 IT전문지 디인포메이션에 따르면 TSMC 미국 파운드리공장에서 생산되는 반도체는 곧바로 고객사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반도체를 완제품 형태로 만드는 패키징 공정을 진행하는 생산설비가 모두 대만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인포메이션은 TSMC 및 주요 고객사인 애플 전현직 임직원의 말을 통해 이렇게 보도하며 현재 미국에는 TSMC의 패키징 공장을 설립하는 계획이 추진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에서 이러한 설비를 운영하는 일은 비용과 생산 능력 등 측면에서 불리하다는 점이 이유로 꼽힌다.

결국 TSMC가 애리조나 공장 가동을 시작한 뒤 반도체를 생산해도 이를 고객사들에 전달하려면 대만의 패키징 공장에서 조립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TSMC가 첨단 미세공정 반도체 생산 거점을 미국으로 다변화한 뒤 오히려 비용과 시간 측면에서 단점을 안게 되는 셈이다.

최근 TSMC는 엔비디아 등 고객사의 수요 급증에 대응해 대만에 29억 달러(약 3조8천억 원)를 들이는 대규모 패키징 설비 증설 계획을 발표했다. 대만에 대한 의존을 더 높이고 있는 셈이다.

대만 디지타임스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TSMC가 미국에도 패키징 공장을 설립하도록 적극 유도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가 반도체기업들에 막대한 보조금을 제공하는 반도체 지원법을 꺼내들며 미국 내 완전한 첨단 반도체 공급망 자급화를 핵심 목표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패키징 설비가 미국에서 운영되지 않는다면 TSMC는 애리조나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대만으로 보내야만 해 공급망에 중요한 허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중국의 대만 침공과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에도 여전히 취약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시장 조사기관 세미애널리시스는 이를 두고 “TSMC 애리조나 공장은 중국과 대만 사이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에 거의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인공지능 반도체나 모바일 프로세서와 같은 고사양 반도체를 제외한 제품은 패키징 공정을 거치지 않아도 돼 미국에서 생산한 뒤 곧바로 고객사에 전달될 수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기술 안보에 핵심인 고사양 반도체 자급체제 구축을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어 TSMC의 패키징 설비 투자 유치가 절실한 상황이다.

디인포메이션에 따르면 바이든 정부 역시 이러한 점을 인식하고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반도체 지원법에 포함된 예산 가운데 최소 25억 달러(약 3조3천억 원)이 ‘고성능 패키징 제조 프로그램’에 할당되어 있다는 점이 근거로 꼽힌다.
 
TSMC 미국공장에 패키징 공정 설비 빠졌다, 보조금 확대  '협상카드' 가능성

▲ TSMC의 반도체 패키징 기술 홍보용 이미지. < TSMC >

다만 미국 내 공장을 투자하고 운영하는 비용을 고려한다면 TSMC의 패키징 설비 투자를 유도하기에는 지원 규모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TSMC 입장에서도 미국에 4나노 및 3나노 미세공정을 적용하는 첨단 반도체 생산설비를 도입하고 패키징 공장을 설립하지 않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인 결정이다.

이러한 최신 공정 기반의 반도체는 대부분 고사양 패키징 설비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결국 TSMC가 미국 정부와 반도체 지원법 보조금 규모를 두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패키징 공장 설립 여부를 협상카드로 쓰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TSMC는 애리조나에 400억 달러(약 53조 원) 투자를 약속했는데 이 가운데 최대 170억 달러(약 22조6천억 원)를 정부 보조금으로 메우겠다는 방침을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정부는 한정된 예산으로 TSMC뿐 아니라 삼성전자와 인텔, 마이크론 등을 지원해야 하는 만큼 TSMC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TSMC가 지금과 같이 패키징 설비를 모두 대만에서 운영하는 기조를 유지한다면 미국은 반도체 지원법을 통해 이뤄내려 했던 공급망 자급체제 구축 노력에 성과를 보기 어렵다.

인텔 등 다른 기업도 파운드리와 고사양 패키징 분야에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아직 TSMC와 비교해 충분한 검증을 받지 못 한 상황이다.

결국 TSMC의 미국 내 패키징 설비 투자 여부는 앞으로 반도체 지원법과 관련한 바이든 정부의 태도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

IT전문지 나인투파이브맥은 “TSMC 미국 공장은 최근 가동 지연과 예산 초과 등 문제를 겪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패키징 공장 부재로 ‘쓸모가 없을 것’이라는 지적까지 나오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