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전기차 보조금 받는 가격대로 질주, 현대차그룹 국내 독보적 지위 위협

▲ 수입 완성차 브랜드들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가격대의 전기차 모델로 국내 시장에서 판매량을 크게 늘리고 있어 국내 전기차 시장에서 독보적 입지를 구축한 현대차그룹을 위협하고 있다. 사진은 BMW 전기차 iX3. < BMW코리아 >

[비즈니스포스트] 수입 완성차 브랜드들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가격대의 모델을 앞세워 국내 전기차 시장에서 판매량을 크게 늘리고 있다.

반면 대부분의 국산 전기차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 현대자동차그룹은 전기차 신차의 부진과 기존 전기차 판매 하락세에 판매량이 주춤하고 있다.

수입 전기차 브랜드들은 전기차에 대규모 할인까지 제공하며 판매 확대에 나서고 있어 이는 국내에서 독보적 입지를 다지고 있던 현대차그룹이 전기차 시장 입지를 지키는 데 큰 위협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6일 현대차 기아 판매실적 자료와 수입자동차협회(KAIDA) 수입 승용차 등록자료를 종합하면 8월 국내 승용 전기차 판매 시장에서 수입 전기차가 질주하고 있다.

수입 전기차는 8월 2926대가 팔려 지난해 8월보다 판매량을 72.2%나 늘렸다. KAIDA 회원사가 아닌 테슬라(696대)까지 합치면 8월 한 달 동안 국내 수입 전기차 판매량은 3622대에 이른다.

반면 국산 승용전기차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현대차그룹(현대차, 기아, 제네시스)은 8월 5339대를 판매해 지난해 8월보다 판매량이 55.4%나 줄었다.

국내에서 가장 판매량이 많은 전용전기차 아이오닉5와 EV6의 신차효과가 사그라들며 판매량이 반토막이 난 데다 6월부터 판매를 시작한 EV9마저 월간 판매량이 408대에 그치며 부진한 영향이 컸다.

이에 8월 국내 수입전기차 판매량이 현대차그룹 전기차 판매량의 70% 수준까지 치고올라왔다. 8월 월간 전체 승용 전기차에서 수입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40.2%로 지난해 연간 기준 비중인 26.6%를 크게 웃돌았다. 

수입 전기차가 국산 전기차 판매량을 무섭게 추격하고 있는 것은 최근 수입 브랜드 전기차와 국산 전기차의 가격 차이가 크게 줄어든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수입 내연기관차 판매는 BMW 5시리즈, 메르세데스-벤츠의 E클래스, S클래스 등 프리미엄 브랜드 중에서도 최상위 라인업이 가장 많이 팔리는 반면 전기차 시장에선 중형급 이하 가성비 모델 위주로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 

8월 수입 전기차 판매량 톱10을 살펴보면 중형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 BMW iX3가 374대로 1위, 폭스바겐 ID.4가 277대로 2위, GM 쉐보레 소형차 볼트 EUV(스포츠유틸리티 전기차)가 221대로 3위를 차지했다.

4위 중형 세단 BMW i4 e드라이브40(192대), 5위 소형차 미니 쿠퍼 SE(189대), 6위 중형 세단 폴스타2(185대), 7위 준중형 SUV 메르세데스-벤츠 EQB 300 4매틱(151대), 8위 준중형 SUV 아우디 Q4 e-트론(122대), 9위 준대형 세단 포르쉐 타이칸(109대), 10위 준중형 SUV 메르세데스-벤츠 EQA 250(99대) 순으로 뒤를 이었다.

수입차들은 가성비 측면에서도 경쟁력을 갖췄다.

대표 국산 전기차인 현대차 아이오닉5와 기아 EV6는 지난해 연식변경을 통해 각각 판매가격이 트림별로 최대 400만 원가량 올라 각각 5005만~6132만 원, 4870만~6245만 원의 가격표가 붙었다. 지난해 9월 본격 판매를 시작한 아이오닉6의 가격은 5200만~6382만 원으로 아이오닉5보다 200만 원가량 더 비싸다.

가장 최근 출시된 기아 EV9은 플래그십 모델인 만큼 프리미엄차 수준인 7337만~8826만 원에 판매되고 있다.

수입차 판매 상위에 오른 모델들의 가격을 살펴보면 국산 주요 전기차와 가격이 별 차이가 없다.

일례로 8월 수입 전기차 판매 2위에 오른 ID.4 상위트림의 판매가격은 5990만 원으로 동급인 아이오닉5 2륜구동 롱레인지 상위트림(5885만 원)과 같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8월 판매 6위를 차지한 폴스타2 가격도 5490만~5990만 원으로 가격대가 겹친다.

프리미엄 브랜드 벤츠 EQA 250 기본모델 가격 역시 6750만 원으로 아이오닉6 상위트림과 가격 차이가 638만 원에 그친다.

더욱이 8월 수입 전기차 10위권 모델 가운데 포르쉐 타이칸을 제외한 모든 차량은 6일 서울시 기준 국고 및 지자체를 합쳐 254만~809만 원의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수입 전기차 보조금 받는 가격대로 질주, 현대차그룹 국내 독보적 지위 위협

▲ ID.4. <폭스바겐코리아>

최근 들어 국내 전기차 판매 기세가 주춤하면서 '전기차를 살 사람은 이제 다 샀다'는 말이 나오지만 수입차 브랜드들은 대규모 할인을 제공하며 새로운 수요를 확보해 나가고 있다.

신차 구매 플랫폼 겟차에 따르면 BMW는 iX3를 출고가격에서 20.8%(1720만 원) 내린 6539만 원에 판매하고 있다. 전기차 보조금 370만 원을 제외해도 할인 금액이 1350만 원에 달한다.

폴스타2 싱글모터는 보조금 617만 원을 포함해 출고가격보다 21.2%(1166만 원) 낮은 4323만 원, 벤츠 EQB 300 4매틱은 보조금 347만 원 포함 14.8%(1천만 원) 낮은 6472만 원에 살 수 있다. 

현대차그룹이 올해 출시할 전기차 신차는 레이EV 만을 남겨뒀다.

이런 가운데 가장 앞서 전기차 가격경쟁의 불을 댕긴 테슬라가 저가 중국산 배티를 장착한 모델의 판매를 본격화하면 현대차그룹의 국내 전기차 입지는 더 크게 흔들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테슬라는 7월 중국 상하이 공장에서 생산된 모델Y 후륜구동(RWD) 모델을 국고 보조금 100%(680만 원) 지급 기준에 맞춘 가격(5699만 원)에 국내에 출시했다. 국내에 7874만 원에 판매돼 온 미국산 모델Y 4륜구동 롱레인지 모델은 판매를 중단했다. 

중국산 모델Y는 기존 고성능 삼원계 배터리를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로 바꿔달고 기존 모델과 비교해 가격을 2천만 원 넘게 내렸다. 중국산 모델Y는 서울시 기준 모두 328만 원의 구매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수입차 브랜드들이 전기차 위주로 할인을 제공하면서 8월 전기차 판매량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