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이 별세했다. 김 전 회장은 쌍용그룹을 재계 6위 규모로 키워냈으나 쌍용 자동차 사태 등으로 결국 그룹의 해체라는 결과를 맞이했던 인물이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이 26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8세다.
▲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이 별세했다. 사진은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에 마련된 빈소의 모습. <연합뉴스>
김 전 회장은 1945년 경상북도 대구에서 김성곤 쌍용그룹 창업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서울고등학교를 나왔으며 미국 브랜다이스 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해병대에 자원 입대해 월남전에도 참전했던 김 전 회장은 1975년 김성곤 창업주가 별세하면서 29세의 젊은 나이에 쌍용그룹을 물려받았다. 김 전 회장과 똑같이 29세에 그룹을 물려받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김현철 전 삼미그룹 회장과 함께 ‘재계의 3김’으로 불리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은 쌍용그룹을 물려받은 뒤 공격적 인수합병을 통해 효성증권을 인수하고 쌍용종합건설과 쌍용중공업을 설립하는 등 쌍용그룹의 덩치를 키워 나갔다. 김 전 회장의 공격적 경영으로 인해 쌍용건설은 1980년대에 재계 순위 6위까지 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1986년 인수한 동아자동차가 몰락의 단초가 됐다. ‘자동차 덕후’로도 유명했던 김 전 회장은 동아자동차를 인수한 뒤 쌍용자동차로 이름을 바꿔 ‘코란도’를 출시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이후 쌍용자동차의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그룹 전체가 위기에 처했다.
1997년 시작된 외환위기로 쌍용그룹의 몰락은 더욱 가속화됐다. 쌍용그룹은 1997년 대우그룹에 쌍용자동차를 매각했지만 이미 쌍용자동차의 부채는 그룹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고, 1996년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던 김 전 대표가 의원직을 사퇴하면서 그룹으로 돌아와 그룹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쌍용그룹은 2000년에 해체됐다.
김 회장은 대한민국 동계스포츠와 레저산업의 초석을 닦은 인물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룹 회장직에 오르기 전부터 스키장의 발전 가능성에 주목해 용평스키장을 만들었으며, 1982년에는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로 선출되기도 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지며 빈소는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특1호실이다. 발인은 29일 오전 7시20분이며 장지는 강원도 용평면이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