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왼쪽)과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총리 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협의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전관예우 근절 방안을 마련한 뒤에도 퇴직자가 원하는 곳에 취업하지 못한 사례가 단 한 건으로 드러났다.
7일 LH가 박정하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직원 땅투기 사건’으로 LH가 혁신안을 발표한 2021년 6월 이후 최근까지 LH 퇴직자 21명이 공직자윤리위원회의 퇴직 공직자 취업 심사를 받았다.
이 중 취업 불가 판정을 받은 LH 퇴직자는 2021년 12월 퇴직한 뒤 바로 아파트 유지보수·관리업체에 취업하려던 2급(부장급) A씨 한 명뿐이었다. 나머지 20명은 모두 취업이 승인됐다.
LH 2급 전문위원이었던 B씨는 지난해 9월 퇴직한 지 한 달 반 만에 한 종합건축설계사무소에 취직했다. 이 회사는 이번에 철근 누락이 드러난 파주 운정 A34 아파트 단지의 감리를 맡았다.
2급 전문위원이었던 C씨도 퇴직 1년 만에 종합건축사사무소에 재취업했다. 이 회사도 철근 누락 LH 단지인 인천가정2 A-1BL의 감리에 참여했다.
공직자윤리법상 공직자는 퇴직 후 3년 동안 공직자윤리위원회 심사 없이 일정 규모 이상 사기업이나 기존 업무와 관련된 기관으로 취업할 수 없다. 공직자가 퇴직 후 재취업하려면 재직했던 업무와 무관하다는 점을 확인받거나 공직자윤리위원회로부터 취업 승인을 받아야 한다
취업을 염두에 두고 공직자가 재직 중 업무 처리를 불공정하게 하거나 퇴직 후 업무 처리에 부당하게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다.
LH는 2021년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불거지자 “해체 수준의 혁신을 추진하겠다”며 혁신 방안을 내놨다. 여기에는 고질적 병폐로 꼽히는 전관예우 근절 방안도 담겼다.
유관 기업 취업 심사를 받아야 하는 LH 퇴직자 대상을 ‘상임이사 이상’ 7명에서 ‘2급 이상’ 500여 명으로 확대했다.
심사 대상이 확대됐음에도 취업 길이 막힌 2급 이상 퇴직자는 거의 없었다. 지난 2년여 동안 2급 이상 퇴직자 7명이 이해충돌 가능성이 있는 설계·감리 등 건설 관련 업체에 취업했다.
취업 제한을 2급 이상으로 확대하자 실무에 밝은 3급(차장급) 출신이 사기업으로 이직하는 사례도 잇따랐다.
공직자윤리법상 취업 심사 대상 기업은 자본금 10억 원 이상, 연간 거래액 100억 원 이상의 업체이기 때문에 자본금 10억 원 미만 업체에는 자유롭게 취업이 가능하다.
국토교통부는 취업 심사 대상이 되는 LH 퇴직자를 3급 이하로 확대하거나 자본금 기준 등을 낮춰 취업 심사 대상 기업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같은 전관예우 방지 방안을 10월에 발표하는 ‘건설 이권 카르텔 혁파 방안’에 포함할 것으로 보인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전날 LH 철근 누락 아파트를 찾아 “전관 출신 고액 연봉 임원이 기술이 아니라 영업과 로비력으로 일감을 따내는 구조가 번번이 문제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껍데기만 바꿔왔다”며 “이번에는 절대로 일회성으로 넘어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