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홀릭, 마흔에 은퇴하다] 긴 겨울 끝 짧은 여름에 진심인 캐나다, 한국 여름도 축제이길

▲ 야외 식당, 야외 카페에서 여름을 즐기는 캐나다 사람들. <캐나다홍작가>

[비즈니스포스트] 캐나다는 겨울이 아주 길다. 12월부터 4월까지 다섯 달은 눈 내리는 겨울이다. 5월 잠깐 봄이다가 6, 7, 8월 눈부신 여름이 되면 다들 들뜬다. 따듯한 햇빛을 즐기며 동네 들판, 공원 잔디밭, 바닷가 등지에 드러눕기 시작한다. 

한국보다 느리게 일해도 원래 세상이 그렇다는 듯 여유롭게 먹고사는 캐나다. 겨울에도 대부분 미소 넘치는 사람들이지만 여름이 되면 몇 달 안 되는 이 따듯한 기간이 너무 소중하고 행복하다는 듯한 얼굴들이다. ‘드디어 여름이다!’, ‘Finally!’

겨울에도 일주일 넘게 크리스마스 및 연말 휴가, 삼월에도 1~2주 정도 봄 휴가, 절기마다 여러 공휴일 등이 있지만 그래도 여름이야말로 여행과 휴가의 적기이다. 너도나도 짧은 주말여행이나 긴 휴가를 즐긴다. 

꼭 멀리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잠깐 짬을 내어 캠핑, 산책이나 소풍도 자주 간다. 모두가 바깥에 나와서 온기를 즐기는 데에 진심이 된다. 겨울이 길었던 만큼 이 온기가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순간인지를 아는 것이다.

여름 축제도 그만큼 많다. 매일 크고 작은 여러 행사들이 열린다. 페이스북이나 구글에 동네 이벤트를 검색하면 하루에도 수십 개의 행사들이 있는 걸 보게 된다. 겨울에도 행사들이 꽤 많은데 여름에는 이벤트가 정말이지 폭주한다. 하루에도 여러 곳을 들르며 소소하게 또는 화려하게 여름을 즐기는 이들로 넘쳐난다. 

공원이나 바닷가 등에서 춤추고 요가도 하고, 동네 공원에 있는 오븐으로 피자를 구워먹는 마을도 있고, 딸기, 블루베리, 자두 등 과일 수확 체험도 한창이다. 인도 문화 축제, 필리핀 문화 축제, 케이팝 댄스 축제, 다문화 축제 등등 이민자의 나라답게 다양한 문화권의 축제도 함께 열린다. 

어제는 내가 사는 동부 소도시에 무료 케이팝(K-POP) 댄스 공연이 열렸다. 올해로 2회 차인데 소도시인데도 케이팝 댄스를 잘 추는 사람들이 수십 명이나 모인다는 것에 놀랐다. 

수십 명의 춤추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한국 이민자 자녀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적의 젊은이들, 노인, 장애인 등이 함께여서 더 아름다웠다. 

노인이나 장애인도 자연스럽게 여러 공연에 참가하고 어울리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캐나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다. 각자의 개성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정신건강과 복지를 강조하는 캐나다다움이 묻어난다. 
[워커홀릭, 마흔에 은퇴하다] 긴 겨울 끝 짧은 여름에 진심인 캐나다, 한국 여름도 축제이길

▲ 캐나다 소도시, 거리에서 열린 랜덤 케이팝 댄스 챌린지에 수십 명이 도전하고 있다. <캐나다홍작가>

노는 사람을 비난하고 싶어하는 한국의 일중독 문화와는 판이하게 다른 곳이다. 정신 건강을 강조하고 여유 있게 사는 것이 익숙한 사회답게 아름다운 여름을 한껏 즐기는 것을 다들 당연하게 여기고 격려한다. ‘배가 불렀네’, ‘일은 누가 하나’ 같은 아니꼬움과 비난을 들이미는 풍조가 아니다. 

사람들은 2주 이상 긴 여름휴가를 다녀오기도 하고 학교는 여름 방학이 두 달 반 정도로 길어서 학생들은 다양한 캠프에 참여한다. 공부 캠프가 아니라 자연과 함께 맘껏 뛰어놀 수 있는 캠프다. 

캐나다는 꼭 휴가가 아니더라도 원래 세네 시면 학교든 직장이든 다 끝나기 때문에 여가를 즐길 시간이 원래 많다. 한국처럼 공부 끝나고 학원에서 밤을 보내거나 야근과 회식으로 가족 얼굴도 못 보고 사는 삶과는 크게 다르다. 겨울에는 오후 대여섯 시에 해가 지고 춥지만 여름이면 아홉시까지 밝기 때문에 이 여름의 오후와 저녁은 더 특별해진다. 

꼭 돈 들여 화려하게 놀지 않더라도 즐길 거리가 많다. 주변에 녹지가 많으니 도시락 싸서 소풍 다니고 커피 한잔 타서 산책 다니기도 쉽다. 무료 공연이나 축제도 다양하게 열리고, 문화센터 프로그램이나 이민자 센터 프로그램도 풍부해서 나도 이민 후 지금까지 오 년간 거의 무료로 쉬고, 놀고, 배우고, 즐기는 중이다. 

만일 내가 아주 고급스럽고 화려한 문화생활을 원했다면 캐나다 문화에 만족하기 힘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캐나다는 따뜻한 기후를 가진 나라처럼 자연풍광도 화려하진 않고 사람들의 여가 문화도, 차림새도 전반적으로 소박한 편이다. 

가끔 미국 유머에서는 이런 캐나다가 시골스럽고 순박한 이미지로 놀림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깨끗한 자연환경, 다양성을 존중하는 친절한 문화, 인구 밀도 낮은 선진국의 한가하고 여유로운 풍광 등이 잘 맞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이만한 곳이 없다. 

한국에서 마흔에 은퇴하고 캐나다로 이민 오기 전의 내 삶은 지금과 180도 달랐다. 한국에서 워커홀릭 학원 강사로 일하는 동안 초반 십수 년은 휴가는 고사하고 휴일도 만들지 않고 달렸다. 

정신이 지쳐가는 것도 성공의 징후라며 당연시하던 한국 풍조, 일중독을 격려하는 문화 속에서는 내 속이 혹사당한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주변의 다수가 항상 바빴고 비슷했다. 

과로사로 죽은 유명 강사의 얘기를 하면서도 약간의 충격 후엔 ‘그런 일도 생길 수 있긴 하지, 일이 많으니까’ 정도로 넘기는 분위기였다. 이런 게 비정상적이어야 한다는 걸 당시에는 몰랐다. 

미세먼지 때문에 계획에도 없던 조기은퇴를 하고 억울해하며 캐나다에 왔는데, 지금은 여유롭고 느리고 한가한데도 잘들 사는 캐나다 문화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고 있다. 어떤 계기에서든 이곳에 와 살기 시작했다는 데에 감사함을 느낀다. 

캐나다의 긴 겨울이 세 달 여름을 더 행복하게 만들 듯, 한국에서의 사십 년 살이는 캐나다에서 보내는 지금의 제2의 인생을 더 소중하고 감사하게 만들었다.

한국전쟁을 지나 경제개발에 전념해 먹고 살만해진 한국, 그 역동성은 멋있고 최근 화려해진 K문화의 세계화는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아직 느슨한 여유는 부족하다. 삶이 좀 느슨하고 여유가 있어야 미소가 나고 자신에게도 남들에게도 따듯해질 수 있다. 워라벨 붐이 있었듯 한국도 이제 그런 여유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으니 변화는 커질 것이다. 기대해 본다. 따듯해서 저절로 미소지어지는 여름이길, 축제이길 바란다. 캐나다홍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