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이야기 하나,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에서 나온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
극 중에서 박연진과 하도영은 부부이고, 전재준은 박연진과 불륜 관계다. 박연진과 하도영 사이에는 하예솔이라는 아이가 있는데, 이 아이는 사실 박연진이 전재준과 바람을 피워서 낳은 아이다. 즉 생물학적으로 아버지가 하도영이 아니라 전재준이다.
▲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하예솔의 생부인 전재준은 친생추정조항 때문에 친부 하도영으로부터 아이를 찾아오지 못한다. 사진은 하예솔을 끌어안는 전재준. <넷플릭스>
전재준이 자신의 딸을 찾아오기 위해서 친구인 변호사에게 상담을 받는다. 변호사는 전재준에게 “너는 생부(生父)는 맞지만, 친부(親父)는 아니야. 아이를 찾아올 방법이 없어”라고 말한다.
전재준은 “유전자 검사도 다 했다니까? 그거 과학 아니야? 내가 친부가 왜 아니야? 왜 소송을 못 해?”라고 반문한다. 변호사는 “교도소든 장기간 외국 체류든 이런 사정이 있어야 그나마 소송 제기가 가능하고, 그렇지 않다면 소송을 할 수 없어”라고 못을 박는다.
이야기 둘, 불륜을 저지른 아내와의 이혼 판결이 선고됐다. 그런데 아내가 아이를 낳았는데, 유전자 검사를 해보니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 상간남의 아이였다.
남편은 태어난 아이에 대한 출생신고를 거부하고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데려가지 않았다. 그러자 아이가 출생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남편을 아동학대로 고소했다. 그리고 관할 관청에서는 남편에게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라고 종용하고 있다.
남편은 정말 억울하다. 다행히 언론에서 이 사건을 다뤄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그리고 수사기관은 남편에게 혐의가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관청에서는 여전히 남편에게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법적인 제재를 가하겠다고 하고 있다.
두 사건 모두 일반인의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유전적으로 내 아이가 아닌데, 법적으로는 내가 아버지라고 한다. 왜 그럴까?
우리 민법은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고 하며(민법 제844조 제1항), ‘혼인이 성립한 날로부터 200일 후 또는 혼인 관계가 종료된 날로부터 300일 이내에 출생한 자녀는 혼인 중에 임신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한다.
이것을 친생추정 규정이라고 한다. 즉 결혼해서 낳은 자식은 기본적으로 남편의 친자로 추정되며, 이 친생추정을 뒤집기 위해서는 이 추정을 깰 수 있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 남편은 일단 아이를 자신의 아이로 출생신고를 하고, 소송을 통해서 친자관계를 소멸시켜야 한다. 남편은 어차피 내 자식이 아니고, 최종적으로는 자신의 가족관계등록부에서 말소시켜야 하는 아이인데, 자신의 아이로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당연하다.
위 법률 규정은 유전자 검사라는 기법 자체가 생겨나기 전에 생긴 아주 오래된 조항이기 때문이다. 이런 절차는 누가 봐도 불합리하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전재준이 자신의 아이를 하도영에게서 데리고 오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이 친생추정조항 때문이다.
친생추정을 깨는 것은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만약 남편이 교도소나 해외에 있는 사정으로 인해서, 혼인 중에 부부가 성관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있다면 친생자존부확인 소송이라는 것이 가능하다. 이 소송은 제삼자인 전재준이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이런 예외적인 상황이 없다. 이 경우 법적인 아빠 하도영이나 엄마 박연진이 친생부인의 소송이라는 것을 통해 부모-자식 관계를 부인하지 않으면, 제삼자가 소송을 제기하거나 자신의 아이로 인지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전재준은 유전적인 아빠, 즉 생부이지만 딸 하예솔에 대해서는 어떤 법적 조치도 할 수 없다.
이것이 불합리한가?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아이의 친자 여부는 이혼 과정에서도 문제가 되지만, 최종적으로는 상속의 문제이다. 상속을 해주는 사람(피상속인)의 입장에서는 내 유전자를 가지지 않은 아이에게 내 재산을 남겨주기 싫어서 문제가 되고, 상속을 받는 사람(상속인)에게는 나와 같은 유전자를 가진 부모로부터 상속을 받고 싶어서 문제가 된다.
위의 두 가지 이야기에서는 법적인 아버지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있으면, 자신의 친생으로 추정되는 아이가 상속인이 된다. 번거롭더라도 소송을 제기해서 아이가 자신의 친생자가 아니라는 판결을 받아, 가족관계등록부를 정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 소송은 ‘아이가 자신의 친생자 아님’을 안 날로부터 2년 내에 제기해야 한다. 유전자 검사의 결과를 받아보고서도, 머뭇거리다 2년이 지나고 나면, 그때는 진짜 돌이킬 수 없다.
최근에 친생자와 관련된 문제가 많이 보이는 이유는 간편해진 유전자 검사 때문이다. 누구나 머리카락 몇 개만 있으면 쉽게 유전자 검사를 의뢰할 수 있고, 가격도 예전보다 오히려 저렴해졌다.
이미 유전자 검사는 상속 관련 분쟁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무엇보다 유전자 검사의 결과는 간명하다. 결과가 친자 여부 일치 또는 불일치로 나오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각종 서류나 증거를 통해서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할 필요가 없이 유전자 검사 한 번이면 끝난다.
친자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유전자 검사는 당사자 일방이 사망했어도, 가족들을 통해서 검사할 수 있다.
만약 관련 소송에서 가족들이 유전자 검사를 거부하는 경우, 법원은 관련자에게 유전자 검사를 하라는 명령(수검명령)을 하고, 이를 거부하면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고 소송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어쨌든 가족 간의 문제인데 이렇게 유전자 검사를 하고 소송까지 해서 해결해야 할까? 그렇다. 우리 법상 친자관계의 정리는 당사자들끼리 합의로 변경할 수 없고, 소송 절차 등을 통해 법원의 판단을 받아서 공적 장부를 정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피상속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법에서 정해진 상속인에게 상속이 강제된다. 게다가 유언장을 쓰는 문화 자체가 없고, 설령 유언장을 썼다고 하더라도 유류분이라는 제한 사항이 있다. 결국, 물려주기 싫은 자식, 진짜 자식이 아닌 아이도 내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라가 있는 한 어느 정도는 재산을 상속해줘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부분까지 감수할 것인지, 아니면 과감하게 정리할 것인지 결국은 선택의 문제이다. 고윤기 상속전문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의 전문변호사 등록심사를 통과하고 상속전문변호사로 등록되어 있다.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이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상속과 재산 분할에 관한 많은 사건을 수행했다. 저서로는 '한정승인과 상속포기의 모든 것'(2022, 아템포),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상속 한정승인 편'(2017, 롤링다이스), '중소기업 CEO가 꼭 알아야 할 법률 이야기(2016, 양문출판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