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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휴게음식업중앙회가 커피 적합업종 신청에 늑장을 부리는 사이 향후 출점제한을 우려한 대기업들은 ‘간판갈이’에 열을 올리고 있다. |
몇 주 전, 집 근처 ‘동네 커피집’이 문을 닫고 내부공사에 들어갔다. 그 앞을 오갈 때 보면 장사가 꽤 잘되는 편이라고 생각되는 커피집이었다. 갑작스런 공사에 새단장을 하는 것인지, 다른 업종의 가게가 들어오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공사를 마친 커피집은 대기업이 운영하는 커피전문점으로 변해있었다.
동네 커피집들이 '간판갈이'를 하고 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커피전문점 간판으로 속속 바꿔달고 있다.
지난해 5월 한국휴게음식업중앙회(이하 중앙회)는 커피전문점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신청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대기업으로부터 골목 상권을 지키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중앙회는 여전히 신청서를 내지 않고 있다. 중앙회가 이렇게 시간을 벌어주는 사이에, 대기업이 운영하는 커피전문점은 향후 출점제한을 우려해 골목 커피집을 하나둘씩 잡아먹고 갈판갈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기업들은 인테리어를 무상으로 제공하거나 현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중소기업 커피전문점의 가맹점주를 빼앗는다. 또한 점포 임대인에게 높은 임대료를 제안해 임차인을 내쫓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점포 주변 임대료까지 끌어올리는 부작용이 일어나기도 하다. 목이 좋은 곳이라면 웃돈을 줘서라도 점포 사재기를 하고 있는 대기업들에게 중소 커피전문점은 물론이고 동네 커피집들은 버틸 힘이 없을 것이다.
중앙회는 적합업종 신청의 지연에 대해 “신청이 늦어진 것은 적합업종이 지정되면 통상문제 때문에 규제를 안받는 외국계만 좋은 일 시키고, 국내업체만 죽이는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라며 “동반위도 이 문제에 대해 답변은 안 해주니 계속 심사숙고해 검토 중”이라고 했다. 그 책임을 동반성장위원회(이하 동반위)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동반위 관계자는 “외국기업 규제 문제는 지난번 외식업 적합업종 지정 때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같은 외국업체가 규제 대상으로 포함돼 더 이상 논란의 여지조차 없다”고 일축했다. 동반위 측의 말을 들어보면 중앙회의 변명은 못미더운 구석이 있다.
적합업종 지정은 중앙회가 동반위에 신청서를 내면 이후 동반위 측에서 실태조사,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구성된 조정협의체, 실무위원회를 거쳐 최종 심의과정을 거치게 된다. 중앙회에서는 신청서만 내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인 것이다.
중앙회가 적합업종 신청에 늑장을 부리는 까닭이 정말 궁금해진다. 골목 상권을 보호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때와는 사뭇 태도가 달라졌다. 스스로 권리를 찾지 못하면 아무도 보호해 주지 않는다. 이래저래 동네 커피점만 죽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