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Who] 이수만에게 '까였던' 하이브 방시혁, SM 품고 세계로 더 빨리

방시혁 하이브 의장(사진)이 자신의 인수 제안을 거절했었던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창업자 및 전 총괄프로듀서의 손을 잡았다. 하이브의 SM엔터테인먼트 인수로 노릴 것이 많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비즈니스포스트] 시끌시끌한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 분쟁에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깜짝 등장했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창업자 및 전 총괄프로듀서가 보유한 지분 일부를 인수하면서 하이브는 SM엔터테인먼트 최대주주로 올라서게 됐다.

방 의장의 등장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특히 방 의장은 2년 전까지만 해도 SM엔터테인먼트 지분을 사들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수만 창업자에게 거절당한 전력도 있다.

방 의장이 뜻밖의 기회를 잡게 된 배경은 회사에서 쫓겨날 처지에 몰린 이 창업자의 급박한 사정 탓이 커 보인다.

방 의장으로서는 우연하게 얻은 이번 기회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K팝이라는 영역에서 SM엔터테인먼트가 쌓아온 노하우를 하이브의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 도약을 위한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10일 방시혁 의장은 이수만 창업자와 공동성명을 내고 "SM엔터테인먼트와 하이브는 K팝의 세계화라는 대업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각자 축적한 역량을 종합해 레이블과 플랫폼을 필두로 한 다양한 사업에서 강력한 전략적 시너지를 만들 것이다"고 밝혔다.

방 의장과 이 창업자의 지분 매각 협상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9일 하이브의 SM엔터테인먼트 지분 인수 추진과 관련한 소식이 처음 알려졌고 곧 두 사람이 지분 양도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계약대로라면 하이브는 3월6일 이 창업자가 보유한 SM엔터테인먼트 지분 14.8%를 확보해 최대주주에 오른다. 하이브는 이 밖에도 소액주주들이 보유한 SM엔터테인먼트 지분을 공개매수해 지분율을 40%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방 의장에게 하이브를 통한 SM엔터테인먼트 인수는 매우 의미가 크다.

사실 방 의장은 과거 이 창업자에게 시쳇말로 '까인' 적이 있다. 이 창업자는 2021년 SM엔터테인먼트 지분을 매각하기 위해 CJENM과 네이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과 접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방 의장도 이 창업자에게 SM엔터테인먼트의 인수 의사를 전달했지만 거절당했다. 시장에서 인수 후보군으로 거명되던 기업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협상 테이블에조차 앉아보지 못했다는 얘기다.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창업자가 K팝 시장에서 주도권 다툼을 하고 있던 하이브에 SM엔터테인먼트의 지분을 넘기면 하이브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질 수가 있어 이런 구도를 탐탁치 않아했다는 것이 엔터테인먼트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하지만 약 2년 만에 방 의장에게도 기회가 왔다.

SM엔터테인먼트 경영진이 이 창업자를 총괄프로듀서에서 사임하도록 하는 등 사실상 경영에서 손을 떼게 만드는 모양새가 되자 이 창업자가 방 의장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방 의장은 이 창업자에게 한 차례 거절당하긴 했지만 이 창업자가 급하게 내민 손을 최대한의 예우를 갖춰 잡았다.

방 의장과 이 창업자가 함께 작성한 공동성명서를 보면 "SM엔터테인먼트가 이룩한 모든 업적의 중심에는 이수만 전 총괄프로듀서가 존재했다"며 "현재 K팝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이 이 전 총괄프로듀서의 영향을 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돼 있다.

공동성명서에는 또 “이 전 총괄프로듀서가 척박했던 대한민국 대중음악을 산업화하고 세계의 으뜸으로 우뚝 서게 한 우리 음악인들의 유산이다”고 돼 설명한다.

방 의장이 자신을 외면했던 이 창업자와 손을 맞잡은 이유는 명확해 보인다. 하이브가 SM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해 얻을 것이 많기 때문이다.

방 의장이 예전부터 SM엔터테인먼트에 눈독을 들인 것은 이 회사의 노하우 때문으로 여겨진다. 1세대 아이돌부터 3~4세대 아이돌을 육성하면서 이 산업을 이끌어온 SM엔터테인먼트의 업력을 무시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하이브의 주요 아티스트인 방탄소년단(BTS)의 군 입대 공백을 가리기 위해 SM엔터테인먼트에 주목한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현재 뉴진스가 방탄소년단의 빈자리를 성공적으로 메우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단순히 실적 공백을 대체하기 위한 목적으로만은 보이지 않는다.

SM엔터테인먼트는 대한민국 여러 기획사 가운데서도 가장 상징성이 큰 기업이다. 최초로 기업형 기획사업을 시작해 성공시키며 2010년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원톱' 기획사로 여겨졌다.

물론 시대적 흐름에 더디게 대응한 탓에 2010년대 후반부터는 전성기와 비교해 영향력이 상당히 떨어졌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중소기획사들이 서로 합병하거나 몸집을 불리며 세를 키운 것도 SM엔터테인먼트의 입지를 흔든 원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SM 소속'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무게감은 상당하다.

SM엔터테인먼트에 녹아져 있는 아티스트 발굴·육성·관리 노하우를 조금만 가다듬는다면 하이브가 갖추고 있는 글로벌 사업 플랫폼과 시너지를 내는 것도 가능하다.

방 의장은 수년 전부터 하이브를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공을 들여왔다. 현재는 미국과 일본에 거점을 두고 있는데 9일에도 미국 힙합 레이블을 3140억 원을 주고 사들이는 등 계속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하이브가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 플랫폼에서 SM엔터테인먼트의 유명 아티스트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무대만 마련해준다면 방 의장이 꿈꾸는 청사진이 보다 쉽게 구현될 수 있다.

SM엔터테인먼트에는 소녀시대와 동방신기, 샤이니, 슈퍼주니어 등 데뷔 1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물론 동남아시아와 유럽, 미국 등에서 여전히 인기가 굳건한 아티스트가 많다.

방 의장은 이 과정에서 이수만 총괄프로듀서의 역할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방 의장은 지분 양도 논의를 진행하면서 향후 SM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이 창업자의 경영권을 인정하는 쪽으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SM엔터테인먼트 내부에서는 이 창업자의 감각이 예전만 못해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오히려 방 의장은 이 창업자의 역량을 인정하는 모양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