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채널Who] 한국 방위산업에 잔치가 열렸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세계적 재무장 분위기가 때아닌 방산업계 호황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2022년 대한민국 방위산업 수주액은 역대 최고치인 17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23조 원에 이르렀다.

그러나 좋은 때일수록 나빠질 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 있듯 자칫 외형을 쫒다 내실을 잃을 위험성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예전부터 방위산업은 이익이 나지 않는 사업이라는 인식이 있어왔다. 일반적으로 방산기업 영업이익률은 제조기업 평균보다 낮은데 2020에는 3.8%로 제조기업 평균치인 5.1%보다 낮은 수준을 보였다.

이는 작은 국내 방산시장에 의존해 규모의 경제를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와 방산업계가 원팀을 구성해 방산 수출 계약을 이끌어내는 식으로 활로를 만들어가고 있다.

수출이 늘어나더라도 생산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남아있다. 방산 수요는 국내에서는 정권의 국방정책 변화에 따라, 해외에서는 국제정세 변화에 따라 수요가 널뛰는 특성을 지녀 기업들이 적정 생산량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코로나19 이전인 2017년과 2018년에는 세계적 군축 흐름에 속에서 활로를 찾지 못해 업계 전체가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2017년에는 방산기업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0%에 수렴했을 정도다.

이에 따라 호황기 과도한 생산시설 투자가 불황기 기업도산과 혈세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업계가 조금은 우려스럽게 바라보는 기업으로 현대로템이 있다. 현대로템은 철도와 플랜트, 방위산업을 하는 기업으로 방산부문이 K2흑표전차를 제조하고 있다.

최근 K2흑표전차 980대를 폴란드로부터 수주해 투자자들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그동안 내수를 위해 운영되온 방산부문이 그 정도 규모를 생산하려면 연간 10~20대 수준의 생산능력을 확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현재의 생산역량을 확대한다면 2017년처럼 다시 방산 가뭄이 닥쳤을 때도 생각해봐야 한다. 앞으로 유럽 정세에 따라 폴란드의 계약 이행 의지와 능력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폴란드는 2021년 기준 GDP가 약 6741억 달러로 한국의 3분의 1 수준이며 만성적인 재정적자국이기도 하다. 국방비의 상당부분을 EU 재정지원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는 EU를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독일의 입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 된다.

한국 방산기업들은 주로 훈련기와 경공격기, 자주포와 장갑차 등 어떻게 보면 글로벌 방산대국이 신경을 쓰지 못한 틈새시장에서 선전해왔는데 현대로템은 글로벌 방산대국, 특히 독일의 주력분야인 전차시장에서 직접경쟁을 한다는 점이 부담일 수 있다.

독일은 금속 정밀가공과 자동차 등 중공업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적 수준의 전차를 만드는 것으로 명성이 높다. 독일 라인메탈의 레오파르트1과 2 전차는 유럽의 주력전차 시장을 사실상 독점해오기도 했다.

그런데 그 시장에 한 수 아래로만 봤던 한국이 끼어든 상황인 것이다. 독일 정치권과 산업계, 언론은 바로 옆나라인 폴란드에서 이뤄진 21세기 최대 군 현대화 사업에 독일이 참여하지 못했다는 점을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독일의 주력분야에, 그것도 안마당인 유럽에 경쟁자가 나타났다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돈과 정치적 이해관계 등 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는 방산시장에서 계약불이행 수준의 사건은 그야말로 비일비재하며 이런 일이 한국에게 일어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2022년 호주 잠수함 사업의 사례를 봐도 호주는 프랑스로부터 잠수함 12대를 공급받기로 계약을 맺었지만 미국이 핵잠수함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하자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따라 최대 55억 호주달러, 우리 돈으로 5조 원 가량의 위약금을 물 뻔했으나 다른 사업분야에서 프랑스와 협력하기로 약속하면서 7500억 원에 합의를 봤다.

현대로템은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어려움에 빠져 한때는 방산부문 매각설까지 돌았지만 다행히 2021년부터 경영이 정상화됐고 2022년 올해부터는 첫 방산제품 수출까지 이뤄내면서 전화위복을 만들어가고 있다.

방산 매출 비중은 현재 20% 수준인데 2024년까지 50%로 확대한다는 미래도 그리고 있다. 현대로템이 K방산을 둘러싼 위험요인들을 잘 극복하고 내실 있는 성장을 이뤄갈 수 있을지 지켜봐야 겠다. 조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