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의회에서 자국 내에서 생산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담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개정안이 발의되면서 통과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에서만 전기차를 생산하는 현대자동차그룹으로서는 미국 조지아주에 지을 전기차 전용 공장이 완공되기 전까지는 인플레이션 감축법 적용의 유예가 절실한 만큼 미국 정가 분위기와 우리 정부의 대미활동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미국 인플레법 개정 움직임, 현대차그룹 '전기차 보조금 제외' 해결 기대

▲ 미국 상원에서 발의된 인플레이션 감축법 수정법안이 과연 통과될까? 현대차그룹의 미국 친환경차 공략 전략의 방향이 결정된다. 


3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원에서 발의된 인플레이션 감축법 수정안 통과 여부에 따라 현대차그룹의 미국 친환경차 시장 공략을 위한 전략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라페엘 워녹 조지아주 연방상원의원은 9월29일(현지시각) 인플레이션 감축법 조항 가운데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 구매자에 한해 보조금(세제혜택)을 제공하는 규정과 관련해 2025년 12월31일 이후 판매되는 자동차의 경우로 수정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기존 인플레이션 감축법에는 해당 조항을 법이 발효된 시점 이후부터 즉시 적용하도록 해 현재 현대차와 기아가 미국에서 판매하고 있는 친환경차 모델 전부가 보조금 대상에서 빠졌다.

미국 정부는 8월16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하기 전까지 전기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등 친환경차 1대 당 7500달러(약 1천만 원) 규모의 보조금을 지급해왔다.

워녹 의원실은 법안 발의와 관련해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에 2025년 문을 열 현대차 전기차 공장을 포함해 계획된 미국 내 전기차 생산설비를 가동하는데 추가적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미국 연방하원의 앤디 김 의원(민주당·뉴저지)도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으로 한국산 전기차가 보조금 지급대상에서 제외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보태고 있어 현대차그룹으로서는 인플레이션 감축법 적용의 유예에 대한 기대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계인 김 의원은 이날 워싱턴DC 연방하원에서 특파원단과 가진 간담회에서 “의회에서도 한국의 우려를 해소할 방법이 있는지 파악하고 있다”며 “논의가 어떤 방향으로 갈지 어떤 장담도 할 수는 없지만 나도 관여해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미국 상원의장인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도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만나 인플레이션 감축법 집행 과정에서 한국의 우려를 해소할 방안이 마련되도록 챙겨보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언론에서도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주요 투자국인 한국이 뒤통수를 맞아 신뢰의 문제가 되고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한국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도 미국 무역대표부 등과 접촉하며 전기차 보조금 차별 문제의 해결 방안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 

미국 재무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포함된 전기차 세액공제 혜택과 관련한 세부지침을 연말까지 준비하고 있는데 이같은 미국 상하원의 움직임과 현지 여론이 세부지침 확정 과정에서 일정 부분 반영될 수 있다는 시선도 자동차업계에서 나온다.

한국은 일본이나 유럽 등과 달리 주요 교역국 가운데 유일하게 미국과 FTA(자유무역협정)를 맺은 나라인 만큼 세부지침에 한국을 배려하는 별도 조건이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으로서는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공장을 가동하기 이전까지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점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 유예를 뼈대로 하는 개정안 통과나 이를 반영하는 세부지침이 절실하다.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실이 한국자동차산업협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현대차와 기아는 원/달러 환율 1300원을 기준으로 올해 상반기에만 미국 친환경차 판매과정에서 보조금 3억1600만 달러(4114억 원)를 적용 받았다. 

이런 보조금을 바탕으로 현대차와 기아는 미국 전기차시장에서 상반기 테슬라 뒤를 이어 시장 점유율 2위에 오르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감축법 통과로 보조금 지급이 끊기면서 이런 시장 입지가 위협받을 처지에 놓이게 됐다.

미국 전기차시장은 이제 막 개화하고 있어 앞으로 1~2년 동안 시장 점유율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통과한 이후 2번이나 미국 출장길에 오를 정도로 대응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그룹으로서는 인플레이션 감축법 수정안이 통과되거나 한국을 배려하는 세부지침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전기차 전용 공장에서 전기차를 생산하기 이전까지는 출혈을 감수하고 자체적 할인프로모션 등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미국 정계가 11월8일로 예정된 중간선거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 개정안이 빠른 시일 안에 처리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관측된다. 

인플레이션 감축법 수정안을 발의한 워녹 의원도 중간선거에서 승리를 장담하기가 쉽지 않은 처지에 놓였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애초 조지아주가 공화당 강세였던 지역이었던 데다 워녹 의원은 민주당 출신의 초선의원이라는 점에서다.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인플레이션 감축법 개정안이 통과한다면 국내 완성차업계로서는 한 숨 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도 “다만 미국 중간선거 등이 남아있어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은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