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혁신은 누가 판단하나, 박재욱과 타다의 무죄 판결에 부쳐

▲ 타다 서비스가 불법이 아니었다는 판결이 나왔지만 이 서비스가 혁신이었는지 아니었는지를 놓고는 여전히 이견이 많다. 사진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타다: 대한민국 스타트업의 초상'의 한 장면.

[비즈니스포스트] 스타트업계에서 혁신은 늘 화두다. 혁신 여부를 놓고 스타트업 구성원들조차 왈가왈부할 때가 많다.

스타트업이 어떤 기술이나 서비스를 시장에 자신 있게 내놓는 이유는 그것이 세상을 바꿀 혁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시장에서 ‘이게 무슨 혁신이야’라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반면 별 생각 없이 내놨던 서비스가 ‘신세계’라는 평가를 받아 혁신의 아이콘으로 우뚝 선 경우도 차고 넘친다.

‘혁신은 없었다’라는 말은 혁신과 관련한 대표적 유행어이기도 하다.

애플이 아이폰을 새 버전으로 내놓을 때마다 국내 언론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제목은 바로 ‘혁신은 없었다’였다. 애플의 공동 창업주인 스티브 잡스가 입버릇처럼 강조해왔던 혁신이 새 버전의 아이폰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을 비꼰 문구다.

하지만 애플은 늘 소비자에게 선택받는 데 성공했다. 그것도 늘 더 많은 판매량을 올렸다. 애써 ‘혁신은 없었다’고 비판한 사람들을 민망하게 만들 정도로.

혁신을 둘러싼 논란은 혁신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쏘카의 자회사 VCNC가 2018년 10월 세상에 처음으로 선보였던 '타다'도 혁신 여부를 놓고 칭찬과 비판을 동시에 들었던 서비스다.

스타트업계 관계자는 타다가 세상에 없던 가치를 창출했다는 측면에서 혁신이 맞다고 봤다. 기존에 택시가 제공하지 못했던, 혹은 않았던 서비스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원했던 것은 엄청난 서비스가 아니었다.

VCNC가 타다 서비스를 내놓기 전에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부르면 왔으면 좋겠다’ ‘원하는 경로대로 갔으면 좋겠다’ ‘이동할 때 말 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등을 원했다고 한다. VCNC 직원들조차 독특한 답변이 없고 가장 기본적 답변만 있어서 놀랐을 정도다.

결국 VCNC는 이동의 기본만 제공하자는 데 집중해 타다 서비스를 론칭했고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서비스를 내놓은지 몇 달 만에 서비스 차량이 1만2천 대까지 늘었다.

택시보다 비싼 가격에도 오히려 돈을 더 주고라도 계속 타다를 사용하고 싶다는 고객들도 적지 않았다. 이 정도면 소비자에게 타다는 분명한 혁신이었다.(혁신을 일컫는 여러 정의 가운데 하나는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행동’이다.)

하지만 호사다마라 했던가. 좋은 일에는 탈도 많은 법이다.

스타트업계의 시각과 달리 타다를 모빌리티 혁신 서비스라고 보지 않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택시면허를 사지 않고 단순히 렌터카를 빌려 운전자를 알선해주고 고객을 목적지에 데려다주는 영업을 놓고 어떻게 혁신이라고 볼 수 있느냐는 것이 이들의 시각이었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서 예외 조항을 찾아 합법적으로 타다를 론칭했다는 것이 VCNC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규제의 덫을 피한 꼼수’ ‘혁신으로 보기엔 부족한 서비스’라는 평가들이 쏟아진 것도 사실이다.

박재욱 VCNC 대표가 타다 론칭과 관련한 기자간담회에서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가 나온다고 해서 왔는데 고작 이거냐”라는 날선 질문을 받기도 했을 정도다.

결국 타다는 생존권 사수를 내건 택시업계의 반발을 불러오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고 VCNC는 타다 서비스를 1년 반도 안돼 접어야만 했다.

타다 관련 건으로 기소된 박재욱 쏘카 대표와 이재웅 전 쏘카 대표 등이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불법 논란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여전히 타다가 혁신 서비스인지 꼼수 서비스였는지를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그저 법의 빈틈을 잘 파고들어 사업 모델을 잘 만든 서비스에 불과하다는 관점도 여전히 있다. 렌터카 제공과 운전자 알선을 놓고 어떻게 혁신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주장은 그대로 힘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다에 ‘혁신은 없었다’라는 딱지를 과감하게 붙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택시가 제공하지 못했던 서비스를 제공해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줬다는 사실에만 집중해 타다를 혁신 서비스로 볼 수는 없는걸까. 그렇게 봐주기에는 혁신이란 단어는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서비스에만 붙일 수 있는 단어일까.

분명한 것은 많은 소비자들은 타다 같은 서비스를 그리워한다는 점이다.

믿고 탈 수 있을 만한 안전한 서비스를 제공했다는 것만으로도, 운전자와 정치 문제로 언성을 높이지 않아도 됐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이들이 타다를 추억한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가면서 야외 활동이 활발해지자 심야에 택시를 잡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택시를 잡을 수 없자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린 서비스 역시 타다였다.

타다가 모빌리티업계의 어딘가에 이정표를 세웠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박재욱 대표는 29일 타다 관련 2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늦은 밤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박 대표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스타트업의 도전을 법과 제도가 일방적으로 가로막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온 부작용이 있다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사회적인 합의를 이루고 무엇보다 이용자들의 가치와 누려야 할 권리가 우선시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혁신인지 아닌지는 사실 중요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박재욱 VCNC 대표와 타다는 충분한 역할을 했던 것일 수도 있다.

물론 박재욱 대표와 타다가 돌이켜봐야 할 지점도 분명히 남아 있다.

법은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규범이다. 혁신이라고 하더라도 누군가의 생존권을 위협할 소지가 있는 서비스를 내놓을 때는 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특히 플랫폼이 기술 발전을 무기로 여태껏 인류가 쌓아온 무수한 사회적 틀을 무한대로 흡수하는 시대에는 더욱 이런 고민이 필요하다.

단순히 택시업계가 기득권을 사수하기 위해 국회를 움직여 타다를 악마화하고 타다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했다는 생각만으로는 온전한 혁신이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비록 소비자들이 혁신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