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강희석 이마트 대표이사 사장, 강성현 롯데쇼핑 할인점사업부장(롯데마트 대표), 이제훈 홈플러스 대표이사 사장 |
[비즈니스포스트]
강희석 이마트 대표이사 사장,
강성현 롯데쇼핑 할인점사업부장(롯데마트 대표), 이제훈 홈플러스 대표이사 사장 등 대형마트 최고경영자(CEO)들이 최저가 경쟁을 본격화할 태세다.
명분도 좋다. 고물가 시대에 소비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형마트 3사 모두 실적이 부진한데 '출혈경쟁'이 뻔한 최저가 경쟁까지 벌이면 앞으로 실적이 더욱 악화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 시선도 나오고 있다.
5일 할인점업계에 따르면 이마트와 롯데마트가 4일 저마다 물가 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알린 것은 대형마트의 최저가 경쟁이 본격화하는 신호로 해석된다.
이마트는 4일 고객이 많이 구매하는 주요 상품의 가격을 내려 상시 최저가로 제공하는 프로젝트 ‘가격의 끝’을 실행한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알렸다.
이마트는 “지속적인 최저가 관리를 통해 고객들에게 ‘이마트에 가면 김치 계란 등 나에게 꼭 필요한 상품을 가장 싸게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할 것이다”라는
강희석 사장의 발언도 보도자료에 담았다.
최고경영자가 직접 나서 물가 관리에 방점을 찍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은 사실상 ‘이마트=최저가’라는 인식을 심기 위한 의도로 여겨진다.
롯데마트는 즉시 대응에 나섰다.
롯데마트는 4일 설명자료를 통해 “롯데마트는 지난 3월부터
강성현 대표의 지휘 아래 ‘물가안정TF’를 가동하고 ‘프라이싱(Pricing)팀’의 본격적 운용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프라이싱팀은 고객에 실질적인 가격 혜택을 주기 위한 관리에 집중하는 팀이다.
롯데마트는
강성현 대표가 이미 올해 초에 “롯데마트가 고물가 시대에 최후의 가격 방어선이 될 수 있어야 한다”며 ‘특명’을 내렸다는 내용도 소개했다. 이마트보다 훨씬 앞서 대표 주도로 이미 물가를 관리하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카테고리별 매출 상위 30%를 차지하는 생필품 500여 품목을 집중적으로 관리해 사실상 최저가 정책을 일찌감치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이마트와 롯데마트의 신경전에 홈플러스는 상대적으로 조용한 모습을 보였다.
다만 홈플러스도 최근 ‘긴급 물가안정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김치와 된장, 고추장 등 단순가공식품을 부가세 면제세액 이상으로 할인 판매하며 최저가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제훈 사장은 올해 초 ‘2022년 경영전략 보고’를 통해 “올해 홈플러스의 전략적 기조는 객수 회복을 통한 성장이다”며 1월부터 ‘물가안정 프로젝트’를 전개하고 있다.
과거에도 수시로 반복된 유통업계의 최저가 경쟁이 또다시 시작되는 모양새다.
대형마트 3사는 최저가 경쟁에 나서는 이유로 모두 ‘고물가 시대의 물가 안정’을 들고 있다. 인플레이션으로 소비자 물가가 급등하는 데다 금리 인상으로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어 소비심리가 위축될 것으로 예상되자 ‘안심하고 마트에 장을 보러 오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쿠팡과 마켓컬리 등 신선식품 분야에서 영향력을 넓히는 이커머스기업에게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과거만 해도 신선식품 영역은 이커머스기업이 손쉽게 넘볼 수 없는 영역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수 년 사이에 마켓컬리를 비롯해 쿠팡의 쿠팡프레시 등이 영향력을 급속도로 확대하자 위협감을 느끼고 공격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대형마트의 본질이 ‘좋은 물건을 싸게 파는’데 있는 만큼 가격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의미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대형마트 3사의 움직임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이들의 행보가 불안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무엇보다 대형마트 3사의 실적이 부진하기 때문이다.
상장기업 분석업체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이마트는 올해 2분기 별도기준으로 매출 3조6219억 원, 영업손실 37억 원을 내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NH투자증권은 5일 롯데쇼핑이 2분기에 할인점사업부에서 영업손실 225억 원을 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홈플러스는 비상장기업이라 실적 전망이 나오지 않지만 이미 2021년 회계연도(2021년 3월~2022년 2월)에 영업손실 1335억 원을 내 적자로 돌아선 상황이다.
과거에도 대형마트의 최저가 경쟁은 제살 깎아먹기식 출혈경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이번 대형마트 3사의 움직임도 비슷한 길을 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대형마트 3사 모두 온라인 전환에도 투자를 지속하고 있는 만큼 오프라인 점포 중심의 가격 경쟁까지 나선다면 실적 악화의 여지가 더욱 커질 수 있다.
유통업계가 최저가를 내세워 경쟁했던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마트는 2021년 4월 최저가격 보상 적립제를 실시했다. 이마트 상품의 가격을 다른 유통업체의 동일 상품과 동일 용량으로 비교해 더 저렴한 상품이 있으면 차액을 이마트에서 쓸 수 있는 포인트 e머니로 적립해주는 제도다.
이마트가 최저가격 보상 적립제를 들고 나온 것은 1997년 이후 14년 만이었다. 이 제도를 들고 나온지 한 달 만에 대상 상품을 기존 500개에서 2천 개로 확대하기도 했다.
이마트가 옛 무기를 다시 꺼내든 이유는 쿠팡 때문이었다. 쿠팡은 2021년 4월부터 유료멤버십 로켓와우 회원이 아니더라도 일반 고객에게 로켓배송(익일배송) 상품을 무료로 제공하는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롯데마트도 이러한 이마트의 움직임에 대응하며 이마트에서 팔리는 가격과 똑같이 상품 가격을 책정하기도 했다.
과거로 더 거슬러 올라가도 이마트와 롯데마트, 홈플러스가 고객을 모으기 위해 서로 최저가에 상품을 판다고 열을 올렸던 사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물론 10원, 100원 단위의 가격파괴로 출혈경쟁을 벌이다가 발을 뺀 사례도 적지 않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이마트와 롯데마트가 최저가 경쟁에 나서자 “10원 차이로 유통 채널까지 바꾸는 ‘옛날 고객’이 아니라 가치소비를 하는 ‘현대 고객’에 집중하겠다”며 가격 경쟁에 뛰어들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롯데마트도 2015년 3월에 대형마트의 가격파괴 경쟁에 뛰어들었다가 수익성만 악화했다고 판단한 뒤 임원회의를 통해 “이마트와 홈플러스의 가격 전쟁에 끼지 말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