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이 제일모직과 합병하고 1년 가까이 되도록 후폭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합병 이후 실적개선의 조짐이 보이지 않으면서 주가가 부진한데 합병 당시 삼성물산 주식매수 청구가액이 지나치게 낮게 책정됐다는 판결이 나와 시장의 신뢰를 얻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
|
|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삼성물산 주가는 31일 전일보다 0.41%(500원) 내린 12만 원으로 장을 마쳤다.
코스피지수는 이날 16.27포인트 올라 1980선을 회복했다.
삼성물산 주가가 내림세로 돌아선 것은 삼성물산 옛 주주들이 낸 주식매수청구가격 조정소송에서 패배한 점이 악재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5월26일 합병 추진을 전격적으로 발표했고 진통 끝에 9월1일 합병법인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주가는 꾸준히 내리막길을 걸어 합병 발표 당시와 비교하면 40% 이상 빠졌다. 통합법인이 출범한 지난해 9월1일 17만 원대를 유지했던 주가는 현재 겨우 12만 원선에 턱걸이하는 정도다.
31일 서울고등법원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일성신약과 소액주주 등 옛 삼성물산 주주들이 낸 주식매수가격 조정소송 2심에서 패소했다.
재판부는 삼성물산 보통주 기준 주식매수청구가 5만7234원을 9368원 많은 6만6602원으로 재조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판결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일성신약에 310억 원 등 소송참여자들에게 모두 347억 원을 추가로 지급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삼성물산은 이번 결정에 대해 “1심 및 관련 사건에서의 결정들과 다른 것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며 “결정문을 면밀히 검토해 재항고심에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주식매수청구가격을 둘러싼 다툼은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만약 대법원에서도 2심과 같은 결과가 나오면 일성신약 등 이번 소송 참가자 외에 나머지 주주들도 추가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삼성물산 합병 당시 주식매수청구권이 행사된 보통주는 1171만6천 주였다. 이번 조정된 청구가액을 기준으로 단순계산 시 삼성물산은 최대 1098억 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할 것으로 추산된다.
물론 이번 판결이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합병을 둘러싼 소송이 장기화하고 있는 점은 소송결과와 별개로 삼성물산에 악재로 작용할 간능성이 높아 보인다.
특히 재판부가 1심 판결을 뒤집은 이유도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법원은 삼성물산이 그룹 오너 일가를 위해 '의도적 실적 부진' 과정을 진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당시 삼성물산 주가는 낮게, 제일모직 주가가 높게 형성돼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일가가 합병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었던 특수한 사정이 고려돼야 한다"며 "(당시) 삼성물산의 실적부진이 주가를 하락하게 하는 원인이 됐지만 이것이 삼성가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에 의해 의도됐을 수 있다는 의심에는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제일모직과 합병 추진 당시 이재용 부회장 등 대주주의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주가를 억눌러왔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이 부회장이 제일모직의 지분만 보유하고 있어 삼성물산 가치가 낮게 책정될수록 유리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은 통합법인 출범 이후에도 주가가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이자 고평가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삼성물산 주식게시판 등에는 통합 삼성물산의 장밋빛 비전에 속아 합병 찬성에 손을 들어준 데 대해 분통을 터뜨리는 투자자들의 하소연도 적지 않다.
삼성물산이 통합 법인 출범 이후 올해 1분기까지 3분기 연속 부진한 실적을 내면서 주가가 급락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은 올해 1분기에도 건설부문 잠재부실이 반영되면서 영업손실 4450억 원을 봤다. 그 결과 최근 석달 사이에만 주식가치가 25%가량 증발했다.
삼성물산은 2분기 이후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삼성물산이 시장의 불신을 제거하지 않는 한 실적이 개선되도 주가반등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