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정부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담당부처인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정부의 물가 관리 움직임이 숨가쁘다.
방기선 기재부 제1차관은 이날 긴급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정점론에 회의적 시각이 확대되면서 금리 인상의 폭과 속도에 불확실성이 커졌다”며 물가 상승의 지속가능성에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지난 10일 국내 증시의 마감 이후 미국에서 인플레이션 공포가 확산되면서 한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커진 데 따른 반응이다.
미국 노동부는 10일(현지시각)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8.6%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물가상승률은 1981년 12월 이후 41년여 만의 최대폭 상승이다. 발표 당일 미국 나스닥지수가 3.52% 하락하는 등 미국 증시에 큰 충격을 줬다.
인플레이션 공포가 확산하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6월이나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0.5% 올리는 ‘빅 스텝’을 결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 번에 0.75%까지 인상하는 ‘자이언트 스텝’을 결정하는 등 긴축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받고 있다.
이은형 KB증권 연구원은 “이번 미국 ‘CPI 쇼크’로 물가상승률이 조만간 정점을 지날 것이라는 기대가 옅어졌다”며 “3분기 중반까지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8% 중반을 유지할 것이라고 시장의 전망이 변한 데다 연준은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훨씬 매파적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예상보다 심각하고 이에 연준이 긴축 행보에 속도를 내는 등 정책적 대응의 강도를 높이기 시작하면 한국 정부의 금융 및 물가 관련 정책 대응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세계적으로 에너지, 식량 등 수급불안으로 경제 전반적으로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미국의 긴축 정책은 한국을 포함해 세계적 경기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코스피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 발표 이후 처음 장이 열린 13일 직전거래일보다 3.52% 하락한 2504.51로 장을 마쳐 겨우 2500선을 지키는 등 국내 증시 역시 미국 물가상승률 충격에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의 물가상승률 역시 5월 소비자물가지수가 13년 만의 최고치인 5.4% 상승을 기록하는 등 상승 압력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기도 하다. 특히 품목별로 보면 전기·가스·수도가 가장 큰 폭인 9.6% 올랐다.
한국의 물가상승률이 올해 6, 7월에 6%대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점점 힘을 받고 있다. 물가상승률이 6%대까지 오른다면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1월 6.8% 이후로 최고 기록이 된다.
물가 상승 압력이 당초 전망보다 높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기재부의 운신의 폭은 더욱 좁아졌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9일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모든 부처는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소관 분야 물가 안정은 직접 책임진다는 자세로 총력을 다해 주시길 바란다”며 강력한 물가 대응을 주문했다.
앞서 추 부총리는 지난 5월3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물가를 강제로 끌어내릴 방법이 없고 만약 그렇게 하면 경제에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1주일 만에 태도가 크게 바뀐 셈이다.
추 부총리는 5월 말 기자들에게 전기요금을 놓고도 인상을 용인할 것이라는 의사를 밝혔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의 이창양 장관 역시 국회 인사청문회 때부터 “연료비 원가를 반영하지 않고 눌러 놓으면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간다”며 전기요금 인상 쪽에 무게를 실어 왔었다.
그런데 이처럼 정부가 물가 잡기에 전방위로 나설 수밖에 없게 되면서 분위기가 급변할 가능성이 크다.
에너지 가격이 물가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정부의 물가 상승 부담은 그대로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정 사장으로서는 3분기 전기요금 산정을 앞두고 확산된 인플레이션 공포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지금이 시기적으로도 3분기 전기요금 산정을 앞둔 시점이라는 점이 공교롭다.
한전은 16일까지 3분기 전기요금 조정안을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는 전기요금 조정안을 놓고 20일쯤 올해 3분기 전기요금을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