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농심, 오뚜기, 삼양식품 등 국내 라면기업 3사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한 차례씩 가격 인상을 단행했던 라면기업들은 올해 1분기 10%대 이상 영업이익 신장률을 기록하는 등 호실적을 거뒀지만 최근 라면의 주원료인 소맥분(밀)과 팜유 가격 상승세가 가팔라 2분기부터는 실적을 장담하기 어려워졌다.
19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사태 여파로 국제 원재료 가격이 치솟고 있어 농심, 오뚜기, 삼양식품 등 라면기업 3사를 향한 가격 인상 압박이 높아진 상태다.
하지만 기업들은 지난해 이미 국내에서 한 차례 라면 가격을 올려 또 다시 인상을 검토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오뚜기는 지난해 8월 13년만에 라면 가격을 평균 11.9% 올렸고 9월에는 삼양식품이 4년 4개월만에 제품 가격을 평균 6.9% 인상했다.
농심은 지난해 8월 국내 주요 라면의 출고가격을 평균 6.8% 인상한데 이어 올해 4월 미국에서, 5월 호주에서 라면 가격을 각각 올렸다.
기업들은 일단 소맥분과 팜유 등 원재료 국제 가격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 식량 가격이 치솟자 세계 최대 팜유 생산국인 인도네시아가 팜유 수출을 전격 중단하고, 세계 2위 밀 생산국인 인도는 밀 수출을 통제하는 등 '식량보호주의'가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생산국들이 '내수시장 공급 최우선' 원칙을 내세우면서 국제시장에서 원재료 가격이 크게 뛰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로 수입되는 밀의 경우 제분용은 미국과 호주, 캐나다에서 들어오고 사료용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등에서 주로 수입하고 있어 라면 가격에 당장 직접적인 영향은 적지만 국제 소맥(밀가루)가격의 인상에 따른 여파로 수입 밀의 가격도 오를 수 있다.
이런 상황이라 증권업계에서는 국내 라면기업의 2분기 실적 전망을 어둡게 바라보고 있다.
심은주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유의미한 라면 매출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주요 원재료 가격 급등으로 실적과 주가 모멘텀은 제한적일 전망이다”며 “작년 판매가격 인상에도 불구하고 최근 급등한 원재료가 투입되기 시작하면 2분기까지는 실적 감소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식품업계 일각에서는 농심에 이어 오뚜기와 삼양식품도 수익성 방어를 위해 올해 하반기쯤 해외 라면 가격 인상에 나설 수도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이에 대해 오뚜기와 삼양식품은 일단 가격 인상 계획이 아직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뚜기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원재료 가격 동향을 주목하고 있지만 현재 해외 라면 가격 인상을 논의하고 있지는 않다”며 “지난해 진행한 라면 가격 인상이 13년 만의 인상이었다”고 말했다.
삼양 관계자도 “지난해 한 차례 라면 가격을 높여 또 다시 높이는 것은 아직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다만 원재료 동향은 계속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오뚜기와 삼양식품이 해외 라면 가격 인상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수출량이 크지 않은 점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가격 인상에 따른 효과가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해외에서 아직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데 가격 인상을 진행했다가 그나마 확보한 점유율 마저 잃어버릴까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2021년 기준 라면 등 국내 가공식품의 주요 수출국은 중국(20%)과 미국(17%)인데 현지 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의 점유율은 비교적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코트라에 따르면 중국의 인스턴트 라면시장은 캉스푸(점유율 43.2%), 퉁이(14.4%), 진마이랑(12.2%) 등 중국 기업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농심은 3.3%, 일본 기업인 닛신이 3.2%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미국시장은 일본 기업인 도쿄수산이 3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뒤를 닛신(22%)과 농심(20%)이 쫓고 있다. 조윤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