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왼쪽)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오른쪽) |
KDB산업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금호석유화학의 지분을 매각한다. 산업은행은 금호석유화학의 최대주주다. 이에 따라 앞으로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경영권이 강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지만 박찬구 회장의 형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매수에 나설 가능성도 있어 관심을 끈다.
산업은행은 보유 중인 금호석유화학 지분 14.05%를 매각하기로 결정하고 주간사 선정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1일 확인됐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현재 KDB대우증권 도이치증권 등과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은 지분을 매각하기 전에 먼저 박찬구 회장에게 매수 의사가 있는지 물어야 한다. 박 회장 등 금호석유화학 대주주들은 산업은행 보유 지분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대금 규모가 크기 때문에 박 회장 등이 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박 회장이 이 지분을 매수하려면 3800억 원에 달하는 현금을 동원해야 한다.
박 회장 일가가 보유한 지분이 24%나 되는 만큼 굳이 매수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박 회장은 금호석유화학 지분 6.67%를 소유하고 있고 아들 박준경 금호석유화학 부장과 조카 박철완 금호석유화학 상무보가 각각 7.17%와 1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또 금호석유화학이 자사주로 보유한 지분도 18.36%나 된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지분 매수 나설 필요성이 적다는 얘기다.
금호석유화학은 이번 매각으로 산업은행이 최대주주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을 반기고 있다. 산업은행의 간섭 없이 박 회장의 독자 경영체제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은 지난 4월 금호석유화학이 보유하고 있는 아시아나항공 지분 전량(12.61%)을 매각하라고 요구하는 등 경영에 관여했다.
다만 산업은행이 박찬구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박삼구 회장이나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지분을 넘길 경우 이야기가 달라진다. 박찬구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지분으로 박삼구 회장을 견제하는 것처럼 박삼구 회장도 금호석화 지분을 통해 박찬구 회장의 경영권을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삼구 회장도 박찬구 회장과 마찬가지로 개인적으로 3800억 원이나 되는 현금을 마련하기 어렵기 때문에 매수에 나서더라도 계열사를 통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아시아나항공이 지분 100%를 보유한 금호터미널이 유력한 인수 후보자로 꼽힌다. 금호터미널은 지난해 4월 광주신세계로부터 5천억 원의 임대보증금을 받아 실탄이 넉넉한 편이다.
그러나 박삼구 회장이 지분 매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올해 안에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정상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삼구 회장이 매수를 강행할 경우 회사 경영보다 동생 박찬구 회장과 5년째 벌이고 있는 경영권 다툼에만 몰두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산업은행 등 금호아시아나그룹 채권단도 이러한 점을 고려해 박삼구 회장의 지분 매수에 반대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게다가 박삼구 회장은 최근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온 금호고속을 인수하겠다는 의지가 강해 금호석유화학 지분까지 사들일 여력은 없다. 금호고속 매각 가격은 현재 시장에서 최소 6천억 원에서 최대 8천억 원에 이른다.
산업은행이 지분매각을 결정한 것은 올해 예상되는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1조4473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경영난을 겪던 STX그룹에 대규모 지원을 한 탓이 크다. 산업은행은 이번에 동부그룹의 부실을 떠안게 됐다.
산업은행의 한 관계자는 “STX그룹과 동부그룹 부실로 올해 실적악화가 예상된다”며 “홍기택 KDB금융그룹 회장 등 경영진들은 손실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현금화가 가능한 지분매각에 나서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매각방식은 시간외 대량매매인 ‘블록세일’ 방식이 가장 유력하다고 점쳐진다. 블록세일은 미리 정해진 가격에 물량을 특정 주체에게 일괄매각하는 방식이다. 보통 대량의 지분을 매각할 경우 가격변동과 물량부담의 불확실성이 커 블록세일 방식이 선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