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정승일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한전의 경영난 대응에 고전하고 있다.
전력원가 상승으로 전기를 판매할수록 손해를 보고 있는 상황에서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 수급 역시 한계에 몰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4일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전력거래소는 최근 규칙개정실무협의회를 통해 ‘전력거래대금 결제일에 관한 규칙’을 개정하기로 결정했다.
개정안에는 한전이 발전공기업으로부터 전력을 구매할 때 전력거래대금 지급을 다음 차수로 미룰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나눈 통화에서 “개정안은 18일 열리는 전력거래소 규칙개정위원회에서 처리될 것”이라며 “이후 전기위원회 승인을 받는 절차를 거쳐 5월 중에 개정안이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번 조치는 한전이 차수에 맞춰 전력구매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해 전력거래가 중단될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추진된 것이다.
한전은 현재 전력구매 대금을 매달 네 차례 나눠 지급하고 있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각 차수에 맞춰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면 채무불이행으로 간주되고 다음날부터 전력거래가 중단된다.
요컨대 한전에 일정 기간 전력을 외상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그만큼 한전의 경영난이 심각하다는 데 전력업계 관계기관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의 내용이 논의된 전력거래소 규칙개정실무협의회에는 전력거래소와 한전은 물론 산업통상자원부, 발전공기업, 외부전문가 등이 참여한다.
2001년 한전에서 발전공기업 6곳이 분리된 이후 한전이 전력구매 대금의 결제를 미룬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 상황은 달라질 수 있어 이에 대비하고자 외상 거래의 길을 터놓은 것이다.
실제 한전의 경영난은 제자리 걸음인 전기료와 전력원가의 상승이 맞물려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국제유가, LNG는 물론 유연탄 가격까지 상승하면서 한전이 전력을 사들이는 가격인 전력도매가격은 올해 1분기에 평균 가격이 kWh당 181.4원까지 올랐다
지난해 1분기 평균 가격 kWh당 76.7원과 비교하면 두 배가 넘게 올랐다.
반면 전기료는 지난해 4분기에 8년 만에 인상됐지만 kWh당 3원 오르는 데 그쳤다. 올해 3월을 기준으로 전기요금은 kWh당 108.1원 정도로 추정된다.
올해 2분기부터는 kWh당 6.9원이 더 오르지만 이번 전기료 인상에는 연료비 상승분이 반영되지 않았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한전의 경영난과 관련해 “현재의 에너지가격과 요금이 유지되면 3년 뒤에는 자본잠식으로 국제소송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문제는 정 사장이 한전의 재정악화에 대응할 여력이 점점 바닥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한전은 회사채 발행으로 영업손실을 메꾸며 버티고 있다. 한전의 회사채 발행 한도는 자본금과 적립금의 두 배인 91조8천억 원 정도지만 지난해 말 기준으로 회사채를 포함한 전체 차입금 규모는 75조 원 수준에 이른다.
게다가 한전은 올해 들어서만 이미 11조9400억 원 규모로 회사채를 발행한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해 전체 발행 규모인 10조4300억 원을 이미 넘어선 것이다.
정치권에서 법령 개정 등을 통해 한전의 회사채 발행 한도를 늘려 주는 등 조치가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이후 자금 수급 역시 녹록치 않아 보인다.
채권금리 자체가 상승 흐름을 보이고 있는 데다 한전이 막대한 회사채를 발행하면서 한전채 3년물의 금리는 11일 3.641%까지 올랐다. 지난해 3월 1.318%와 비교하면 2%포인트 넘게 오른 것이다.
한전채 금리의 상승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반응이 냉랭한 점도 부정적이다.
한전은 3월에 4년 만에 한전채 30년물을 발행했지만 목표치인 2천억 원을 채우지 못하고 700억 원을 발행하는 데 그쳤다.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