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에너지 안보와 관련한 위기의식이 높아지면서 소형모듈원전 시장 확대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두산중공업은 소형모듈원전 사업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미국 뉴스케일파워와 협력을 바탕으로 유럽을 비롯한 해외 원전시장에서 성장동력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18일 네덜란드 TTF거래소에 따르면 유럽지역 천연가스 가격은 2021년 1월 메가와트시(MWh)당 20유로 수준에서 거래되다가 2021년 12월 180유로를 넘어서며 정점을 찍은 뒤 2022년 1월에는 80유로를 넘나들며 거래되고 있다.
이처럼 천연가스 가격이 요동치는 배경에는 러시아와 유럽연합의 갈등이 주요한 원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저지를 위해 유럽연합과 대립하고 있다.
이에 유럽연합을 향한 압박강도를 높이기 위해 벨라루스·폴란드를 거쳐 유럽으로 연결되는 ‘야말-유럽’ 가스관을 통한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하기도 했다.
유럽은 천연가스의 90%를 수입하는데 이 가운데 절반을 러시아에서 들여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와 대립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여기에 코로나19 뒤 경제회복 과정에서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면서 신재생에너지의 공급불안이 나타난 점도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한 또다른 요인으로 꼽힌다.
게다가 유럽 국가들이 풍력 발전을 위해 의존하는 북해의 바람이 최근 유독 잠잠해 지면서 풍력발전 전력공급도 원활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처럼 지정학적 역학구도에 환경적 요인까지 더해지면서 유럽에서 안전성이 높은 소형모듈원전에 힘이 실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에너지 자립도를 더욱 높여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럽연합은 신재생에너지의 공급 불안을 잠재우고 러시아 등 에너지 수출국 의존도를 낮춰 EU의 에너지 분야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원전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바라봤다.
이런 경향은 유럽연합이 최근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을 승인하지 않은 취지에서도 잘 드러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LNG(액화천연가스)선 건조시장에서 지배적 기업이 나타나면 천연가스 단가상승 가능성이 높아져 에너지 공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이번 기업결합심사를 승인하지 않았다.
결국 에너지 안보를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유럽연합의 내부 분위기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앞으로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조달할 수 있는 소형모듈원전 산업이 유럽에서 커질 것으로 분석된다.
소형모듈원전은 발전용량 300MW(메가와트) 이하로 원전 핵심기기인 원자로, 증기발생기, 가압기 등을 하나의 원자로 용기에 담은 일체형 원전을 말한다.
모든 장비가 원자로 안에 다 들어가는 일체형이어서 공장에서 사전제작이 가능하며 원자로 자체는 수조 안에서 작동한다.
이런 특징 때문에 소형모듈원전은 전력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세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대사고 발생 확률이 기존 원전과 비교해 1천분의 1 수준으로 낮다.
유럽연합 핵심국가인 프랑스는 소형모듈원전사업을 비롯한 발전사업에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폴란드 루마니아 등 여러 유럽국가들도 소형모듈원전을 향한 관심이 높다.
유럽연합에서 탈퇴했지만 이 지역 주요국가인 영국도 소형모듈원전 개발 사업에 힘을 준다는 방침을 세웠다.
두산중공업은 미국의 전문기업 뉴스케일파워에 지분투자를 하며 소형모듈원전 사업 확장을 놓고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뉴스케일파워는 소형모듈원전 구축기술을 개발해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에서 처음으로 설계인증을 받아 이 분야 선두주자로 꼽힌다.
뉴스케일파워는 소형모듈원자로 판매 및 운영관리를, 두산중공업은 설계 및 엔지니어링과 기기 조립·생산을 담당하는 형식으로 사업협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뉴스케일파워는 미국뿐 아니라 루마니아에서 소형모듈원전 모듈 주기기 등 핵심자재를 공급하기로 하는 등 유럽 진출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어 두산중공업의 사업기회가 확대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영국 국립원자력연구소에 따르면 2035년까지 세계에서 소형모듈원전 650~850기 건설이 추진돼 시장규모가 2400억~4천억 파운드(약 379조~632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경제성, 안전성 등 확보해야 할 이슈는 많지만 소형모듈원전을 중심으로 두산중공업의 연평균 원전 기기 수주잔고는 앞으로 1조~1조3천억 원 씩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여기에 미국정부가 주도 하는 이른바 '깨끗한 원자력 에너지 세계적 확대정책‘도 이런 추세에 힘을 실을 것으로 예상된다.
원자력 전문지 월드뉴클리어뉴스에 따르면 미국은 폴란드, 케냐, 우크라이나, 브라질, 루마니아, 인도네시아 등과 소형모듈원전 활용에서 협력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유럽에서 안보위기가 고조되면서 에너지 독립주의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며 “소형모듈원전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높아지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짚었다.
이 관계자는 “두산중공업은 소형모듈원전의 선두기업들에 대한 투자와 협력을 진행해 왔는데 최근 미국의 원자력 에너지 확장정책과 유럽 시장 확대에 따라 성장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