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필의 CEO 책쓰기] 책을 쓰고 싶은가, 단순하게 일단 쓰기부터

▲ 이강필 커리어케어 출판사업본부장 전무.

리처드 파인만은 20세기를 대표하는 물리학자 중 한 명인데 그의 이름이 들어간 문제 해결법이 있다. 파인만이 말한 게 아니라 그의 동료였던 머레이 겔만이 “파인만이라면 이렇게 했을 것”이라 해서 붙여졌다는 ‘파인만 알고리즘’이다.

이것은 딱 세줄이다.

문제를 쓴다.

골똘히 생각한다.

답을 쓴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도 이와 비슷한 문제 해결법이다. 코끼리 냉장고 넣기의 정답은 ‘냉장고를 열고 코끼리를 넣고 냉장고 문을 닫는다’다. 코끼리의 크기와 냉장고의 용량을 고려치 않고 어쨌든 넣어버리는 이 단순함! 와우!

단순명료한 해결법이 알려주는 덕목은 문제를 풀려면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공자도 ‘아는 것을 알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앎이다’(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이라 했고 노자는 심지어 ‘모르는 것을 모르는 것이 병이다’(不知不知 病矣)이라 했으니 문제의 단순화 내지 문제에 대한 정확한 특정에서 시작지점을 찾는 해결법은 고래(古來)로 ‘참’이다.

단순화 방식의 문제 해결법은 글쓰기에도 적용할 수 있다.

'제목을 잡는다 – 쓴다 – 쓴 글을 다시 본다(퇴고)' 식으로 말이다. 다만 파인만 알고리즘의 마지막 단계인 ‘답을 쓴다’가 글쓰기에서는 시작이자 끝일 수 있다는 점에서 완전히 동일하다고 주장하지는 않겠다.

파인만 알고리즘의 첫 단계인 ‘문제를 쓴다’는 글쓰기에서 제목 잡기, 경우에 따라서 첫 문장이나 단락 쓰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글쓰기가 업인 이들의 가장 큰 고민은 ‘첫 문장’이다. 실제로 첫 문장 내지 도입부가 괜찮으면 절반 이상은 집필이 끝난 걸로 여긴다고 한다.

‘시작이 반’이란 상투어를 꺼내지 않더라도 ‘첫’ 자가 들어가는 행위가 가진 엄중함이란 우리가 살면서 차고 넘치게 경험한 바이니 충분히 수긍할만하다.

썼다 고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을 투여하는 이 단계는 그만한 시간을 들일 충분한 가치가 있다.

글은 대개 제목 장사이고 제목이 글값의 절반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얻은 몰두의 흔적들은 어떻게든 본문에 투여될 자양분이 되곤 하니 아까워할 이유도 없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라는 나태주 시인의 운문을 빌린다면, 내가 보아야 할 대상을 ‘풀꽃’으로 특정(=제목 잡기)한 뒤에 할 일은 자세하고도 오래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단계 역시 첫 문장 잡기만큼이나 쉽지 않다. 아마도 대개의 사람들은 문제를 앞에 놓은 순간부터 수만 가지 갈래길이 펼쳐지면서 이 가운데 어느 것부터 골몰을 해야 할지 헤매기 일쑤다.

몰두가 쉽지 않은 것은 문제해결에 필요한 지식, 혹은 정보의 양이 모자라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너무 많기 때문인 경우가 다반사다.

특히나 물리와 같은 자연과학 방면의 숙제가 아닌, 인간사와 관련된 일이라면 더 심할 것이다. 문제발생의 원인, 그 원인의 또다른 원인, 연관된 사람들과 관계, 한 쪽을 택했을 때 다른 쪽에서 발생할 문제, 궁극적으로는 이 문제로 인해 나 자신에게 돌아올 손익 등등.

글을 쓴다는 건 스스로가 지닌 콘텐츠, 이를 테면 경험 지식 감정 등을 정리한다는 의미다. 전문작가나 연구자 만이 아니라 경영자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막상 마음을 먹고나면 내 안의 무엇을 이야기 해야 할지 잡는 게 녹록하지 않다. 모든 인간에겐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이왕 쓰는 것, 시대의 역작까지는 몰라도 나의 모든 것을 담아내겠다’는 과잉의욕이 꿈틀댄다. 평소 생각을 정리하는 것에 익숙지 않은 이들이라면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할 수밖에 없다.

결국 문제를 정의하고 해답을 찾아 골몰한 다음 답을 정리하는일련의 행위가 하나같이 녹록하지 않은 것은 생각이 많기 때문이란 얘기인데 이럴 때는 일단 그 생각들을 그저 끄적여볼 것을 권한다. 밑져야 본전.

문장이 어색하다고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전하고자 하는 뜻을 얼추 담고 있다면 표현을 바꾸는 것은 나중이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머릿속에 남아 있던 생각이 문자로 표시되면 두뇌는 시각정보와 함께 움직인다.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徹)’하는 이 과정은 내가 적은 문자를 소리를 내서 읽는 것과 함께 해도 나쁘지 않다. 생각의 줄기와 가지가 구분되고, 어떤 생각이 가장 상위에 올라와야 하는지도 잡힌다. 파인만 알고리즘의 시작과 끝이 모두 ‘쓴다’에 할애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CEO들이여, 책을 쓰고 싶다면 일단 끄적여 보시라. 로또에 당첨되기 위해 제일 먼저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지 않은가. 로또부터 사는 거다. 그런데 나는 이 글을 왜 쓰고 있지?

실은 기획 중인 책의 제목을 잡지 못해 해본 푸념이다. [이강필 커리어케어 출판사업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