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형 전 감사원장(가운데)이 1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입당식에서 이준석 대표(오른쪽), 김기현 원내대표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국민의힘으로 직행하며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다른 길을 선택했다.
보수야권 대통령선거주자의 입지를 선점함으로써 ‘플랜B’가 아닌 ‘플랜A’가 되는 첫걸음을 뗐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 전 원장이 15일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했다.
그는 이날 오전 국민의힘 중앙당사를 찾아
이준석 대표 등 지도부를 면담한 뒤 온라인으로 당원 가입절차를 마쳤다.
최 전 원장은 기자들에게 “지금 국민이 고통받는 현실 아래 가장 중요한 명제인 정권교체를 이루는 중심은 제1야당 국민의힘이 돼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입당 이유를 밝혔다.
그의 입당은 감사원장에서 물러난 지 불과 17일 만에 이뤄졌다. 유력 대선주자로 떠올랐던 많은 사람들이 뜸을 들이며 여러 가능성을 가늠하느라 시간을 끌었던 모습을 떠올리면 이례적으로 빠른 발걸음이다.
특히 이는
윤석열 전 총장과 뚜렷하게 구분된다.
윤 전 총장은 3월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난 뒤 잠행을 하다 6월9일 첫 공개발언을 했다. 같은 달 29일 정치참여 의사를 처음으로 공식화한 뒤에도 정치적 거취에 관한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런 탓에 ‘자기 메시지가 없다’, ‘대변인을 통한 전언정치를 한다’, ‘간을 본다’는 등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반면 최 전 원장은 지체하지 않고 국민의힘에 입당하는 결단력을 보여줬다.
물론 윤 전 총장과 비교해 지지도가 낮은 최 전 원장으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시각도 있다. 윤 전 총장보다 약한 후발주자로서 경쟁력을 얻으려면 당을 지지기반으로 삼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을 수 있다.
두 사람의 상반된 행보는 각각의 정치적 운명을 결정적으로 바꿔 놓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로서는 누구의 판단이 옳은 것인지 섣불리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다.
일단 최 전 원장의 신속한 입당 결정이 당장 낮은 지지도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관측이 정치권에서 나온다. 일정 수준의 지지도를 얻는다면 보수야권 대선후보를 놓고 윤 전 총장과 본격적인 경쟁이 가능해진다.
이렇게 되면 최 전 원장은 이른바 플랜A로 올라설 길이 새로 열린다.
최 전 원장은 지난 12일 현충원을 방문한 뒤 기자들을 만나 “나를 윤 전 총장의 대안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나는 나 자체로 평가받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최 전 원장은 처음 플랜B로 정치권에서 호명받으면서 정치 이력을 시작했다. 보수야권에서는 윤 전 총장이 낙마할 때를 대비해 대안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이어졌고 그 결과 최 전 원장이 급부상했다.
무엇보다 윤 전 총장이 이른바 ‘X파일’로 불리는 도덕성 리스크를 안고 있는 반면 최 전 원장은 도덕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윤 전 총장의 지지도는 일부 떨어지고 있지만 하락폭은 크지 않다. 아직 보수층 유권자들이 윤 전 총장 주변에 모여있기 때문인데 일부가 최 전 원장으로 옮겨간다면 분위기는 달라질 수 있다.
만약 최 전 원장의 지지도가 윤 전 총장을 뛰어넘는 변곡점이 찾아온다면 최 전 원장이 보수야권의 플랜B에서 플랜A로 탈바꿈하는 게 불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니다. 여기에 최 전 원장의 입당은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최 전 원장이 국민의힘 지붕 아래 들어온 만큼 당내 인사들이 그를 중심으로 세력을 이룰 수 있다. 이미 최 전 원장은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새누리당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낸 김영우 전 의원을 대선캠프 상황실장으로 발탁했다.
현역 3선 조해진 의원과 당내 원로 정의화 전 국회의장 등 당내 인사들이 최 전 원장을 돕는 데 힘을 합칠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들 뿐 아니라 당원과 지지층 일부도 최 전 원장에게 결집할 공산이 있다.
입당을 통해 일종의 ‘컨벤션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시선도 나온다. 그의 입당이 여론의 조명을 받으며 윤 전 총장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약했던 인지도 문제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여러 선거 경험을 지닌 국민의힘 조직을 활용할 수도 있게 됐다. 윤 전 총장이 당 밖에서 따로 캠프를 꾸려 움직이는 것보다 유리할 수 있다.
다만 정치신인으로서 여전히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아 보인다. 그 앞에도 정치 검증대가 기다리고 있다.
윤 전 총장의 X파일 의혹으로 도덕 검증이 중요하게 부각되긴 했지만 정치 검증에는 도덕성 항목만 있는 게 아니다.
앞서 정치권 밖 대선주자로 떠올랐던 고건 전 국무총리나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 등이 도덕성 흠결 탓에 대선에 완주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정치 무대 밖과 안의 사정이 전혀 다른 만큼 밖에서 인망을 얻었던 사람도 안에서 힘을 못 쓰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최 전 원장의 정치행로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 비슷하다는 시선도 나온다. 판사 출신으로 감사원장을 거쳐 대선주자가 됐다는 점이 닮아 있다.
다만 이 전 총재는 감사원장 이후 국무총리로서 국정을 일부 경험했다.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여당인 신한국당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고 해당 선거에서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이듬해 1997년 대선에 출마하기 전까지 정치경험과 인지도를 쌓으며 준비운동을 할 시간이 비교적 넉넉했다.
반면 최 전 원장은 이제 국민의힘에 입당해 바로 당내 경선을 치러야 한다는 점에서 이 전 총재만큼 정치경험을 쌓을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 [비즈니스포스트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