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회장이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대글로비스 지분율에 변화를 줄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현대자동차그룹 전체 지배구조 개편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16일 현대글로비스 대규모기업집단현황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매출에서 국내 계열사와 내부거래를 통해 올린 매출비중은 23.3%에 이른다. 2019년보다 1.7%포인트 높아졌다.
현대글로비스 전체 매출에서 국내계열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6년 20.6%로 저점을 찍은 뒤 2017년 20.7%, 2018년 21.2%, 2019년 21.6% 등 완만하지만 매년 높아졌다.
현대글로비스는 해외계열사와 진행하는 사업의 매출까지 합치면 지난해 전체 매출의 70%를 내부거래를 통해 올렸다.
일반계열사라면 내부거래가 크게 문제될 것이 없지만 현대글로비스는 정의선 회장이 지분 23.29%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지속해서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받았다.
정 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최대주주로 배당도 꾸준히 받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해 현대글로비스에서 배당 305억6천만 원을 받았다.
일감 몰아주기 의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2015년 지분율을 31.88%에서 23.29%로 낮췄지만 현대글로비스가 1주당 배당금을 2014년 2천 원에서 2020년 3500원까지 순차적으로 늘리면서 정 회장이 받는 배당금은 오히려 늘었다.
공정거래법은 총수일가가 30%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국내 계열사와 내부거래를 통해 올린 매출 비중이 12% 이상이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으로 바라본다.
현대글로비스는 현재 정 회장 지분 23.29%, 정몽구 명예회장 지분 6.71% 등 총수일가 지분이 29.99%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올해 말 기준이 바뀌면 내년부터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에 들어간다.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은 대기업집단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을 ‘총수일가가 지분 30% 이상 보유한 계열사’에서 ‘20% 이상 보유한 계열사’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은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해 올해 12월30일 시행된다.
내부거래 자체가 위법은 아닌 만큼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 시행에 맞춰 정 회장이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반드시 줄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부거래를 진행할 때 일감 몰아주기를 판단하는 주요 근거인 효율성, 보안성, 긴급성 등을 꾸준히 따져야 하고 언제든 일감 몰아주기 관련 공정위 조사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정 회장이 현재 지분을 유지하는 일은 부담일 수 있다.
정 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은 2015년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시작할 때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기존 43.39%에서 29.99%로 낮춰 규제대상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 김정훈 현대글로비스 대표이사 사장.
정 회장의 현대글로비스 지분 변화는 현대차그룹 전체 지배구조 개편과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되는 계열사다.
정 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가치는 15일 종가(19만4500원) 기준 1조7천억 원에 이른다. 정 회장이 보유한 현대차그룹 계열사 지분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그만큼 핵심 자금줄 역할을 할 수 있다.
시장에서 바라보는 유력한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로 현대차그룹 지배구조에서 핵심에 있는 현대모비스를 향한 정 회장의 지배력을 높이는 방식이 있다. 현재 정 회장이 쥔 현대모비스 지분은 0.32%에 머문다.
현대차그룹은 2018년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할 때도 현대모비스를 존속법인과 AS부품·모듈사업을 하는 신설법인으로 분할한 뒤 신설법인을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현대모비스 존속법인은 현대차그룹 최상단 지배회사로서 아래에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제철 등 주요 계열사를 두게 된다. 정 회장은 현대글로비스 합병법인 지분 등을 매각해 현대모비스 존속법인 지분을 사들이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됐다.
당시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 신설법인의 합병비율 등을 놓고 잡음이 일며 현대차그룹 자발적으로 추진안을 철회했지만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현대글로비스의 활용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왔다.
현대차그룹은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여전히 원론적 태도를 보였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급변하는 대내외 경영환경과 그룹의 미래 방향성을 고려하고 시장의 의견을 청취해 지배구조 개편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아직 구체적 내용은 확정되지 않았다”며 “지배구조 개편안이 마련되는 대로 시장과 적극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