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증권업계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국내 증권사들은 ESG와 관련한 국민연금의 요구에 대응하는 데 분주하다.
증권업계에서는 ESG투자가 사회적 현안이 된 만큼 사내에 의사결정기구와 전담조직을 마련하는 등 대응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가장 최근인 5월30일에는 삼성증권이 이사회 산하에 ESG위원회를 신설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대형증권사 가운데 KB증권,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에 이어 4번째다.
대형증권사들의 움직임은 다른 증권사의 움직임에도 큰 영향을 준다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안으로 국내 대부분 증권사에서 ESG 관련 조직이 마련될 가능성이 크다.
증권사의 ESG 관련 투자도 활발해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국내 주요 10개 증권사는 올해 4월까지 ESG 관련 채권 등에 건수로는 170건, 금액으로는 2조2701억 원을 투자했다.
증권사의 이런 움직임은 국민연금이 2022년까지 운용자산의 50% 이상을 ESG기업에 투자하겠다고 지난해 밝히는 등 투자시장에서의 ESG 요소를 적극적으로 고려하겠다는 의지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국민연금은 운용자산의 투자대상을 넘어 위탁운용사 선정에서도 ESG 요소를 고려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ESG와 관련된 국민연금의 요구는 증권사의 투자영역을 넘어 기업평가 등 리서치 영역에까지 이른다.
김 이사장은 5월29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 녹색금융 특별세션’에서 “증권사에도 기업분석보고서 등을 만들 때 ESG 등 비재무적 요소를 포함하도록 하겠다”며 “증권사를 평가할 때 적극적으로 반영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증권사에 ESG 관련 기업평가를 요구하는 김 이사장 발언의 취지는 국민연금이 5월21일 서울 영등포구 콘래드호텔에서 주최한 ‘2021 ESG플러스포럼’에서도 확인된다.
이날 포럼에서 이동섭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실장은 “현재는 증권사를 평가할 때 ESG 분석보고서 실적 등을 반영하고 있지 않으나 앞으로 ESG 관련 기업과 산업 분석 보고서 발간실적을 상·하반기 거래 증권사 평가에 반영하겠다”며 “자본시장 참여자들이 ESG 정보를 더욱 많이 참조해 기업들의 ESG정보 공시 확대, 자본시장의 책임투자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ESG를 중시하는 투자시장의 움직임은 대세로 인정되고 있는 만큼 김 이사장이 요구하는 방향 자체를 놓고는 증권사에서 명시적으로 반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ESG요소들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계량화해 평가할지를 놓고서는 현재까지 기준이나 방법, 체계 등이 없다는 점이 증권사에게는 큰 난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ESG의 평가와 관련해 주로 인용되는 말이 경영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의 ‘측정하지 않으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일 정도다.
김 이사장 역시 5월에 국민연금 실무진들과 직접 집필한 ‘국민연금이 함께하는 ESG의 새로운 길’이는 책을 내놓으면서 출간 이유로 “너도 나도 ESG, ESG 하길래 공부하려고 봤는데 체계적으로 정리된 책이 없어서 직접 썼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들 역시 활발하게 ESG 관련 포럼 및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점 역시 ESG 관련 기준 등을 정립하려는 움직임으로 읽힌다.
다양한 경제주체 사이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만큼 일관된 ESG평가기준이 마련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이인형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5월31일 내놓은 ‘ESG평가체계 현황과 특성 분석’ 보고서를 통해 “ESG 이슈가 기업 이해관계자 측면에서 매우 광범위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하나의 통합된 지표로 이를 평가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며 “부문별 중요도 선정 등 지난한 문제들이 놓여 있기 때문에 전문가그룹을 통한 심도 있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