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전 의원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번 당대표는 멋지고 예쁜 스포츠카를 끌고 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 짐을 잔뜩 실은 화물트럭을 끌고 좁은 골목길을 가야 한다”며 “국민과 당원들이 보기 좋은 것과 일을 잘 하는 부분을 두고 판단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진 정치인들이 당대표 경선에서 선전하는 모습이 좋긴 하지만 다음 대통령선거를 준비하는 중책을 맡으려면 중진의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전 최고위원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그는 사회관계망(SNS)에 “내가 올해 초 주문한 차는 전기차라 매연도 안 나오고 내부공간도 넓어 많이 태울 수 있다”며 “짐이 아닌 사람을 많이 태울 수 있고 내 권력을 나눠 줄 수 있는 정치를 하겠다”고 적었다.
시대 변화에 걸맞은 감각으로 더욱 민주적 당대표가 되겠다는 뜻을 강조하며 나 전 의원이 경험을 내세운 것과 차별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당대표 경선이 두 사람의 양강구도로 굳어지고 있어 이런 신경전은 앞으로 더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여론 조사기관 한길리서치는 22일 하루 동안 성인 1천 명을 대상으로 국민의힘 다음 대표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이 전 최고위원의 지지율이 30.1%, 나 전 의원의 지지율이 17.4%로 나타났다고 23일 밝혔다.
직전 조사(8~11일)에서는 나 전 의원이 15.9%, 이 전 최고위원이 13.1%로 오차범위(표본 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안 접전 양상이었는데 이번 조사에서 완전히 역전된 셈이다.
이 밖에 주호영 의원(9.3%), 김웅 의원(5.0%), 김은혜 의원(4.9%), 홍문표 의원(3.7%), 조경태 의원(2.8%) 등으로 집계됐다. 여론조사와 관련해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등을 참고하면 된다.
이 전 최고위원과 나 전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후보들은 두 후보와 비교해 오차범위 밖에서 다소 뒤처지고 있는 만큼 점차 당대표 경쟁에서 양강구도가 더 굳어질 것이란 시선도 나온다. 시간이 흐를수록 당선 가능권에 표심이 쏠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전 최고위원의 돌풍 배경에는 당의 변화를 통한 정권 교체가 필요하다는 보수진영의 민심이 반영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정권 교체의 바람이 세대 교체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당내에서도 대선주자급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 전 최고위원 등 신진 정치인을 지지하는 분위기가 많아졌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24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젊은 후보들의 돌풍은 당의 변화를 상징한다”며 “전당대회를 통한 당의 변화와 혁신에 지지를 보낸다”고 적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전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제 우리 당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중도층과 2030세대 젊은이들은 누가 대표가 됐을 때 계속 마음을 줄까? 어떻게 하면 이들의 마음을 붙잡아 둘 수 있을까?”며 “유쾌한 반란의 주인공! 그런 대표가 선출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썼다.
반면 본경선의 당원투표 비중이 70%에 이르는 만큼 단순히 여론조사상의 선전만으로는 최종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많다.
투표에 참여하게 되는 책임당원 가운데 영남 비중이 절반을 넘는 데다 책임당원의 보수성향은 일반 국민의힘 지지층보다 더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책임당원 표심에는 조직력의 힘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당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나 전 의원 등 중진 정치인들이 뒷심을 더 발휘할 여지도 있다.
당의 정통 지지층에서 ‘탄핵찬성파’에 관한 앙금이 남아 있는 것도 이 전 최고위원으로서는 부담되는 부분이다.
친박계 김태흠 의원은 24일 기자들에게 보낸 메일에서 “이 전 최고위원은 박 전 대통령을 비난하기 바빴고 심지어 등을 돌린 채 당적까지 변경한 사람”이라며 “젊고 신선한 정치를 하겠다는 그의 언행이 무척 공허하고 씁쓸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앞서 이 전 최고위원이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감사한다’는 메시지를 공개한 데 따른 비판이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경선의 세부규칙이 이 전 최고위원 등 신진 그룹에 불리하게 결정될 가능성도 있다.
황우여 국민의힘 선거관리위원장은 이날 선관위 회의 직후 기자들을 만나 “완전히 우리 당이 아니고 특정 정당에 소속된 사람은 당대표 선출 여론조사에서 투표를 삼가달라고 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른바 ‘역선택 방지 조항’을 두겠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인지도가 높아 일반국민들에게 폭 넓은 지지를 받는 이 전 최고위원 등에게는 달갑지 않은 조항이다. 일부 선관위원들이 이 조항을 두고 반발하고 있어 추가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결국 당심이 변화를 요구하는 민심을 쫓아갈 것이란 시선도 나온다.
조해진 의원은 24일 ‘모닝 브리핑’ 보도자료를 통해 “이 전 최고위원이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는 것은 우리 당을 향한 국민적 불신의 표현”이라며 “정권교체의 열망이 그만큼 뜨거운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고 봤다.
조 의원은 “국민의힘은 변화의 요구에 어떻게 화답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며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조 의원은 애초 당대표 도전에 나섰다가 최고위원으로 목표를 바꿨다. 무대 밖에서 경쟁구도를 바라보는 시각이 당대표 경선에서 선수로 직접 뛰는 인물들보다 비교적 객관적이고 공정할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