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건설 수렁에서 못빠져나온 박삼구  
▲ 2007년 3월20일(현지시각) 대우건설 카타르 정유공장 건설 현장을 방문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그룹 회장이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에게 대우건설은 최고의 영광과 날개없는 추락을 함께 안겨준 기업이다.
 
박 회장은 2006년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재계 8위까지 오르는 영광의 순간을 맞이했다.

그러나 대우건설 때문에 워크아웃에 들어가 경영권을 담보로 그룹을 회생해야 하는 고통의 길을 걸어야 했다. 지난해 말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재계 순위는 17위로 떨어졌다.

박 회장은 대우건설을 2010년 포기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우건설은 박 회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대우건설 소액주주들이 최근 박 회장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금호아시아나 계열사로 있던 시절 저지른 담합행위로 물게 된 과징금을 책임지라는 것이다.

◆ 대우건설 소액주주 “담합 과징금 물어내라”


경제개혁연대 등 대우건설 소액주주들은 지난 23일 박 회장을 비롯한 대우건설 전직 이사 10명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주주 대표소송을 제기했다. 소액주주들이 청구한 배상금은 466억 원에 이른다.


경제개혁연대는 대우건설이 금호아시아나 계열사였던 시절 저지른 담합으로 회사가 입은 손실을 회복하기 위해 박 회장 등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라고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우건설이 2008년 12월부터 다음해 10월에 걸쳐 저지른 담합행위를 적발해 466억6천만 원의 과징금을 물렸다. 당시 대우건설은 정부와 공기업이 발주한 건설공사 입찰 4건에 참여했다. 사업 수주 과정에서 다른 건설사와 미리 낙찰받을 공구를 합의한 혐의가 드러나 제재를 받았다.


경제개혁연대는 2009년 동안 담합행위가 여러 번 진행된 것은 박 회장 등 대우건설 임원진의 관리부실에 해당한다고 봤다. 경제개혁연대는 “1년 이내 짧은 기간 동안 다수의 대규모 건설 공사에서 담합행위가 연달아 일어났다”며 “박 회장 등 대우건설 이사들이 내부통제장치 구축에 태만했다”고 비판했다.


소액주주들은 지난달 14일 대우건설 감사위원회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박 회장에게 낼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1개월이 지나도 회신이 오지 않자 직접 원고 자격으로 소송을 벌이기 위해 소장을 제출했다.


◆ 박삼구의 스러진 '건설회사 2개' 꿈


박 회장은 대우건설 인수 직후 재계에서 제일가는 ‘스타’가 됐다. 건설업계 1위 기업을 손에 넣으면서 재계 10위 내 그룹으로 도약할 것이라는 꿈을 품었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결정된 2006년 6월22일 박 회장은 한중우호협회 모임을 추죄하고 회원들에게 ‘폭탄주’를 돌리며 승리를 자축했을 정도다.


박 회장은 당시 “건설회사 2개를 갖는 게 꿈이었다”며 “대우건설과 금호산업 간 경쟁을 시켜 시너지를 얻겠다”고 장담했다. 평소에 탐냈던 대우건설 인사들을 얻었다는 기쁨도 컸다. 그는 주변에 술잔을 권하며 “(대우건설 직원들을) 우리 임직원과 똑같이 사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건설을 위해 세 번째 사옥을 짓겠다는 말도 했다.


박 회장은 인수가 거의 마무리된 그해 12월 장밋빛 청사진을 그렸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대우건설 경영진이 우수하다고 생각해 인수했다”며 “그 경영진을 유지하면서 금호아시아나의 장점을 접목할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우와 금호가 가진 장점과 문화를 따로 살린다”며 “금호는 호남지역에 장점이 있고 대우는 영남에서 강하니 지역적 시너지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박 회장이 짝사랑했던 대우건설 출신 인사들은 박 회장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박 회장이 인수 직후 박인천 창업주에 대한 묵념을 요구한 데 대해 대우건설 직원들이 거부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인수 후 6개월 만에 대우의 상징이었던 대우빌딩을 모건스탠리에 넘긴 것도 박 회장에 대한 거부감을 키우는 데 한몫했다는 지적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건설경기 불황이 이어지면서 대우건설의 실적은 계속 떨어졌다. 6조4천억 원에 이르는 인수자금 회수를 위해 박 회장은 계속 자산을 매각하고 유상감자와 고배당을 단행해야 했다. 이것이 금호아시아나그룹을 덮친 유동성 위기의 원인이 됐다. 결국 박 회장은 2010년 대우건설 경영권을 포기했다.


◆ 대우건설의 현재, ‘흐림 후 맑음’


박 회장이 경영권을 내놓은 후 대우건설은 한동안 주인없는 회사였다. 그러다 2010년 말 산업은행 밑으로 들어갔다. 당시 민유성 산업은행장은 “(대우건설은) 산업은행이 단독 인수할 것“이라며 ”원자력발전소 수주 등 해외 프로젝트파이낸싱 분야에서 건설과 금융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산업은행은 대우건설 지분 50.75%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대우건설은 높은 브랜드 가치를 유지했다. 아파트 브랜드 ‘푸르지오’를 앞세워 2011년 이후 2만여 가구를 공급했다. 분양 규모로 2010년 이후 업계 1위를 지키고 있다. 지난해 종합건설업 시공능력평가 순위에서도 3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매출은 점점 떨어졌다. 산업은행이 관리를 시작한 2010년 말 2조4천억 원에 이르렀던 총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1조6천억 원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영업손실 1199억 원을 낸 데 이어 지난 12일 재무구조개선 약정 체결 대상으로 지목됐다.


다만 건설경기가 조금씩 살아나면서 대우건설의 실적도 조금씩 호전되고 있다. 대우건설은 올해 1분기 영업이익 1195억 원을 올리며 흑자전환했다. 당기순이익은 639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분기보다 120.3% 늘어났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주택부문 매출과 수익률이 대폭 증가했다”며 “중동과 아프리카지역 대형 프로젝트 수주도 마무리 단계라 향후 전망이 밝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