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이 재고 드릴십(심해용 원유 시추선) 5기를 매각할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국제유가가 높아지면서 해양자원 개발시장의 투자심리가 개선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삼성중공업이 재고 드릴십의 매각이나 임대 등 처분에 성공한다면 7년 만에 영업이익을 내는 데 큰 보탬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2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원유시장에서 공급이 늘면서 국제유가 상승세가 점차 진정국면으로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유가는 아직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기준으로 배럴당 60달러를 웃돌고 있다. 그러나 블룸버그 등 외신들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가 하루 100만 배럴의 자발적 감산을 4월에는 종료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국제유가가 크게 낮아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리스태드에너지(Rystaad Energy) 등 주요 에너지시장 분석기관들의 올해 국제유가 전망치는 50달러 중~후반대다.
삼성중공업은 국제유가 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유가가 높을수록 재고자산으로 보유한 드릴십 5기의 매각대상을 찾는 일이 수월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국제유가 60달러선을 해양자원 개발계획의 손익분기점으로 본다. 삼성중공업으로서는 유가가 이보다 낮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탐탁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조선업계에서는 국제유가 60달러가 드릴십 수요를 결정하는 절대적 지표는 아니라고 본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업스트림(해양자원개발)회사들의 프로젝트 개발능력은 꾸준히 개선되고 있어 최근에는 국제유가 40달러선에서 손익분기점이 형성되는 프로젝트들도 있다”며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만 넘어도 드릴십의 수요가 발생하기에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은 지금보다 낮은 수준에서 국제유가가 안정화해도 재고 드릴십의 매각 성사를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삼성중공업이 보유한 재고 드릴십 5기는 계약가격 기준으로 29억9천만 달러어치다. 그러나 삼성중공업이 수취한 선수금은 10억1천만 달러에 그친다.
삼성중공업으로서는 이 드릴십들의 매각을 통해 나머지 19억8천만 달러를 놓고 전부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회수하고 싶을 수밖에 없다.
삼성중공업은 재고 드릴십 5기의 합산 장부가치를 12억8천만 달러로 잡고 있다. 모두 매각할 수 있다면 1조4천억 원가량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단순히 보유현금이 늘어나는 것 이상의 의미도 있다.
조선업계 다른 관계자는 “재고 드릴십을 매각해 유입되는 현금에서 매출원가를 제외한 부분은 회계장부상 영업이익으로 반영된다”며 "다만 재고 드릴십을 충분히 높은 가격에 매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은 2015~2020년 6년 동안 해마다 영업손실을 내 왔다. 이 기간 합산 영업손실은 3조9655억 원에 이른다.
재고 드릴십을 매각할 수 있다면 삼성중공업이 7년 만에 흑자로 돌아설 가능성도 커지는 셈이다.
최근 해양자원 개발시장의 분위기는 삼성중공업에 긍정적이다.
해양자원 개발시장 분석기관 인필드리그(Infield Rigs)에 따르면 2일 기준으로 글로벌 드릴십 가동률은 69%로 집계됐다. 드릴십 가동률은 지난해 54%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70%를 바라보는 수준까지 높아졌다.
해양 전문매체 업스트림에 따르면 브라질 국영에너지회사 페트로브라스(Petrobras)는 시추선을 늘리기 위해 드릴십 5척의 용선 입찰을 15일 진행한다.
드릴십 가동률이 높아지는 만큼 시장에서 신규 수요도 발생하고 있다는 뜻이다.
삼성중공업도 드릴십과 관련한 불확실성들을 꾸준히 해소하면서 재고 드릴십을 매각할 때 뒤탈이 발생할 여지를 줄여가고 있다.
앞서 2월 삼성중공업은 과거 페트로브라스에서 수주한 드릴십 3기와 관련해 선박 중개인의 위법행위를 놓고 책임소재를 따지는 재판에서 페트로브라스에 1650억 원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합의했다.
미국 퍼시픽드릴링(Pacific Drilling)과 다툰 드릴십 1기의 계약해지 관련 책임소재 재판에서는 지난해 10월 승소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