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Who Is ?] 박서원 두산 전무
박서원 두산 전무.


박서원은 1979년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상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가 중퇴한 뒤 미국 미시간대 경영학과로 유학을 떠났다.

군복무를 마치고 뉴욕 비주얼아트스쿨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디자인 공부를 했다.

반전 포스터 ‘뿌린 대로 거두리라’로 세계적 광고제에서 상을 휩쓸면서 광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박서원은 광고 뿐 아니라 브랜드컨설팅과 패키지 디자인, 공연 연출 등 다양한 크리에이티브 작업을 진행해 왔다.

아버지가 회장으로 있는 두산그룹과 거리를 둔 채 활동하던 박서원은 결국 두산그룹 광고계열사인 오리콤의 크리에이티브총괄(CCO) 부사장으로 입사했다.

현재 두산그룹 지주사 격인 두산의 전무도 겸임해 유통전략을 담당하면서 두산이 새로 진출한 면세점 사업과 두산타워 쇼핑몰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박서원은 그룹 오너 일가 가운데 이질적 존재로 꼽힌다. 일반적인 오너 후계자들과 같은 경영수업 과정을 거치지 않았고 ‘박용만의 아들’이 아닌 ‘광고인 박서원’으로서 독자행보를 걸었다.

자타공인 ‘광고통’으로 두산그룹과 거리를 두고 광고인으로 주로 활동해 왔으나 두산그룹이 사업구조를 개편하며 입지가 강화됐다. 2015년말 두산그룹이 면세점사업에 진출하면서 ‘박용만의 후계자’ 반열에 들어서고 있다는 평가다.

박서원이 면세점사업을 넘어 두산그룹 경영전면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사람들과의 소통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 박용만 회장처럼 트위터와 같은 SNS활동을 활발히 한다. 페이스북에 박 회장의 아이스버킷 챌린지 참여 영상을 올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2006년 뉴욕 비주얼아트스쿨에서 함께 공부하던 친구 4명과 빅앤트인터내셔널을 세웠다.

2008년 반전 포스터 ‘뿌린 대로 거두리라’로 세계적인 광고제에서 상을 휩쓸면서 광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국제 광고제에서 여러 차례 수상하며 입지를 다졌다.

2011년 ‘생각하는 미친 놈’이란 제목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2014년 10월 두산그룹 광고계열사 오리콤의 크리에이티브총괄(CCO) 부사장으로 영입됐다.

2015년 11월 정기 임원인사에서 전무로 선임돼 두산 사업부문의 유통전략담당을 겸직하고 있다.

◆ 학력

상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단국대학교에 입학했다가 중퇴했다.

2005년 뉴욕 비주얼아트스쿨에 입학해 그래픽디자인학을 전공하고 2010년 졸업했다.

◆ 가족관계

증조부인 박승직은 1920년대 공산품으로서 제작된 한국 최초의 화장품 '박가분'을 만들고 주식회사 박승직 상점을 설립한 두산 창업주다.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이 할아버지고, 박용만 두산그룹회장이 아버지다.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첫째 큰아버지,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이 둘째 큰아버지, 박용성 전 두산중공업 회장이 셋째 큰아버지, 박용현 연강재단 이사장이 넷째 큰아버지다.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이 작은아버지다.

박재원 두산인프라코어 부장이 동생이다.

◆ 상훈

2009년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옥외 반전(反戰) 포스터로 5대 광고제(원쇼, 클리오, 칸, D&AD, 뉴욕페스티벌)에서 모두 수상했다.

2010년 원쇼 옥외부문 금상을 받았고 2011년에는 원쇼 옥외부문 메리트상을 받았다.

◆ 상훈

2009년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옥외 반전(反戰) 포스터로 5대 광고제(원쇼, 클리오, 칸, D&AD, 뉴욕페스티벌)에서 모두 수상했다.

2010년 원쇼 옥외부문 금상을 받았고 2011년에는 원쇼 옥외부문 메리트상을 받았다.

어록


“좋아하는 일을 찾는 순간 사람이 달라졌다. 옛날에 논 것처럼 공부하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과제물이 포스터 1장이면 100장을 만들고 100쪽짜리 책 1권이면 200쪽 책 3권을 제출했다. 교수들이 이렇게 독한 학생은 처음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그때 별명이 ‘미친 놈’이었다. 시행착오 없이 한 번에 원하는 길을 만나지 못했어도 방황했던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고 믿는다.” (2014/11/03, 동아닷컴과 인터뷰에서)

“콘돔 사업이니 오해받을 수 있지만 아버지는 제가 하는 일은 모두 믿어주신다. 국내 낙태여성은 35만 명이나 된다. 콘돔 보편화 사업으로 낙태여성을 1만 명만 줄여도 뜻 깊은 일이다. 콘돔사업 수익금은 청소년용 성교육 콘텐츠를 제작하는데 쓸 것이다. 나머지는 기부하겠다. 기부 대상과 방식은 고민하고 있다.” (2014/06/05,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 평가

박서원은 그룹 오너 일가 가운데 이질적 존재로 꼽힌다. 일반적인 오너 후계자들과 같은 경영수업 과정을 거치지 않았고 ‘박용만의 아들’이 아닌 ‘광고인 박서원’으로서 독자행보를 걸었다.

자타공인 ‘광고통’으로 두산그룹과 거리를 두고 광고인으로 주로 활동해 왔으나 두산그룹이 사업구조를 개편하며 입지가 강화됐다. 2015년말 두산그룹이 면세점사업에 진출하면서 ‘박용만의 후계자’ 반열에 들어서고 있다는 평가다.

박서원이 면세점사업을 넘어 두산그룹 경영전면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사람들과의 소통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 박용만 회장처럼 트위터와 같은 SNS활동을 활발히 한다. 페이스북에 박 회장의 아이스버킷 챌린지 참여 영상을 올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 기타

미국 유학 시절 경영학이 적성에 맞지 않아 사회학, 심리학 등으로 매년 전공을 바꾸며 적성을 찾기 위해 방황하기도 했으나 뉴욕 비주얼아트스쿨에 입학하며 디자인과 광고 분야에 눈을 떴다.

시원하게 빡빡 밀어버린 민머리와 팔뚝에 새긴 다양한 문신 등 튀는 외모로 주목을 받는다.

재벌가 4세답지 않은 파격적이면서도 소탈한 행보로 많은 이야깃거리도 몰고 다니기도 한다. 직원들과 허물없이 이야기 나누며 일반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도 거리낌 없이 참석한다.

‘지스타2015’가 한창이던 2015년 11월12일 10여 명의 일행과 함께 행사장인 벡스코에 ‘재미삼아' 구경을 나가기도 했다. 튀는 외모에 카키색 롱야상을 입어 쉽게 눈길을 끌었지만 많은 관람객들은 그가 누군지 알아채지 못했다고 한다.

2015년 두산베어스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자리에 아버지 박용만 회장과 함께 했다. 빗줄기가 굵어져 관객들이 자리를 떠나던 3차전에서 박 회장과 박 부사장이 한 개의 우산을 나란히 쓰고 앉아있는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