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이 즉시연금 미지급금 소송과 관련한 판결을 놓고 안심할 수 없게 됐다.
삼성생명과 유사한 약관을 지닌 동양생명이 관련 소송에서 잇따라 패소했기 때문이다.
전영묵 삼성생명 대표이사 사장은 고객과 법적 분쟁을 여러 건 벌이고 있는 데 따른 기업 이미지 하락을 피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1일 생명보험업계에 따르면 즉시연금 가입자들이 보험금 수령액이 적다며 보험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잇따라 승소하면서 삼성생명도 불리한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즉시연금은 목돈을 한 번에 납부하고 달마다 연금을 받다가 만기가 되면 원금을 전부 돌려받는 상품이다.
삼성생명은 4건의 즉시연금 관련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첫 판결이 3월10일 나온다.
삼성생명이 패소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핵심쟁점 사항인 즉시연금의 약관과 관련해 삼성생명의 약관과 유사한 동양생명이 즉시연금 소송에서 패소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24단독 재판부는 19일 동양생명의 즉시연금 가입자들이 보험사를 상대로 낸 미지급 반환청구 소송 1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지난해 11월 미래에셋생명 즉시연금 가입자들의 원고 승소 뒤 두 번째 원고 승소 판결이다.
즉시연금 소송의 쟁점사항은 ‘만기보험금 지급 재원 공제’와 관련한 보험사의 사전 설명 및 소비자의 인지 여부다.
만기보험금 지급 재원 공제는 만기 때 원금을 돌려주기 위해 사업비로 쓴 금액을 달마다 지급하는 연금에서 떼어내는 것을 말한다.
지난해 11월 미래에셋생명이 관련 소송에서 처음으로 패소했을 때에는 분쟁의 핵심이 되는 약관 내용을 두고 보험사마다 차이가 있어 지켜봐야 한다는 시선이 있었다.
미래에셋생명의 즉시연금 약관은 ‘달마다 연금을 지급함에 있어 만기환급금을 고려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법원은 약관의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동양생명의 약관은 만기보험금 지급 재원을 공제한다는 내용이 없다.
삼성생명의 즉시연금상품 약관에도 만기환급금이 명시되지 않았다. 다만 산출방법서에 ‘만기보험금 지급을 위한 재원을 제외하고 연금월액을 달마다 지급한다’고 나와있다. 산출방법서는 약관처럼 고객에게 일일이 지급되지 않고 고객이 요청할 때 제공된다.
약관내용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동양생명 재판 결과가 삼성생명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삼성생명이 1심에서 패소하더라도 당장의 재무적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종적으로 대법원의 판단을 받기까지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미래에셋생명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동양생명도 항소할 가능성이 있다.
전영묵 사장은 법적 분쟁에 따른 삼성생명의 이미지 하락 가능성에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소송결과에 상관없이 보험금 지급을 놓고 계속 소비자와 갈등을 벌이는 상황 자체가 브랜드 이미지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송에 지게 되면 거액의 보험금을 추가로 지급해야 할 뿐만 아니라 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고객과 분쟁에 이겼다는 상처뿐인 영광이 될 수 있다.
더욱이 즉시연금 분쟁과 별도로 삼성생명이 지난해 요양병원 암보험금 미지급과 관련해 금감원 종합검사 결과 기관경고 중징계를 받았다는 점에서 고객과 연이은 분쟁이 부각되는 것은 전 사장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전 사장은 요양병원 암 입원비를 지급하라며 암환자모임 대표가 제기한 소송 문제로 언론을 비롯해 정치권에서도 관심이 집중되면서 곤욕을 치렀다.
즉시연금 관련 분쟁은 2017년 삼성생명 즉시연금 가입자가 달마다 받는 연금수령액이 예상했던 지급액보다 적다며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금융소비자연맹이 2018년 보험사가 약관 명시나 가입자에게 알리지 않고 만기보험금 지급 재원을 공제해 연금 월액을 산정했다고 주장하며 가입자들을 모아 △미래에셋생명 △동양생명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KB생명 등을 대상으로 공동소송을 진행했다.
당시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도 만기보험금 지급 재원 공제와 관련해 구체적 설명이 약관에 없다며 보험사들에게 보험금을 더 지급하라고 권고했다.
금융감독원이 2018년 파악한 삼성생명의 즉시연금 미지급금 규모는 4300억 원가량으로 전체 보험사의 미지급금 가운데 가장 많다. 삼성생명에 이어 한화생명 850억 원, 교보생명이 700억 원 수준이다.
생명보험업계 관계자는 “삼성생명의 재판결과에 보험업계의 시선이 모이고 있다”며 “생명보험사들이 금융당국의 보험금 지급 권유를 거부하고 소송전으로 간 데는 삼성생명의 태도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미지급금 규모가 가장 컸던 삼성생명은 2018년 8월부터 민원을 제기한 가입자를 상대로 채무 부존재 확인 소송을 진행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남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