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TOP3는 어떻게 여러 브랜드를 관리하나  
▲ 왼쪽부터 토요타의 도요다 아키오, GM의 메리 바라, 폭스바겐그룹의 마르틴 빈터코른 CEO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 5위를 차지했다. 세계 1~4위는 일본 토요타, 미국 제너럴모터스(GM), 독일 폭스바겐그룹, 르노닛산이다.

도요타는 996만 대를 팔았다. 그 뒤를 GM이 971만 대로 바짝 쫓고 있다. 3위인 폭스바겐그룹 판매량은 970만 대로 GM과 차이가 1만 대에 불과하다. 현대기아차는 현대차 472만대와 기아차 283만대를 합쳐 총 755만대로 5위를 차지했다. 4위인 르노닛산의 예상 판매량은 849만 대다.


자동차업계 상위 세 기업은 그동안 브랜드 인수합병이나 제휴 및 신규설립을 통해 몸집을 불려왔다. 이 과정에서 세 기업은 서로 다른 길을 선택했다.

도요타는 인수합병을 극도로 자제했다. GM은 여러 번의 인수합병과 제휴를 반복했다. 수익성이 떨어지면 칼같이 잘랐다. 폭스바겐그룹은 공격적으로 인수합병하되 브랜드 이미지를 최대한 보존하는 쪽을 선택했다.

세 글로벌 자동차기업이 보여주는 서로 다른 전략은 기아차의 브랜드 차별화를 고민하는 정몽구 회장이나 정의선 부회장에게 ‘타산지석’이자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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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요다 아키오 토요타자동차 사장

◆ 토요타, 브랜드 늘어나는 인수합병에 신중 


토요타는 올해 목표 판매량을 1034만 대로 잡았다. 이런 목표에 도달하면 토요타는 자동차업계에서 처음으로 연간 1천만 대를 돌파한 최초의 기업이 된다. 지난해 ‘3초에 한대’ 꼴로 자동차를 판매한 만큼 생산량을 조금만 더 늘려도 달성할 수 있다. 창업가문 3세인 도요다 아키오 사장은 목표 판매량을 밝히며 “(도요타의) 경영체질이 확실히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토요타는 1년에 1천만 대의 차량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를 갖췄다. 그러나 회사 밑에 둔 브랜드는 GM이나 폭스바겐그룹보다 적다. 지금까지 일본 브랜드 2개를 제외하고 해외 브랜드를 단 한번도 인수하지 않았다. 대표 브랜드인 렉서스와 사이언은 토요타가 신규로 설립한 브랜드다.


토요타의 보수적인 인수합병 및 브랜드 관리 방침은 도요다 기이치로 창업주의 아버지 도요다 사키치의 유언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방직사업가로 성공한 사키치는 1930년 사망하면서 아들에게 100만 엔을 건네주며 “반드시 국산자동차를 만들어라”는 유언을 남겼다. 5년 후인 1935년 아들 기이치로가 설립한 토요타는 첫 승용차 모델 ‘A1’을 내놓고 영업을 시작했다.


토요타는 지난해 7월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4천만 대)로 기네스북에 기록된 ‘코롤라’로 명성을 쌓았다. 이외에도 토요타를 유명하게 만든 차량은 대부분 자체 브랜드도 출시됐다.

프리미엄 브랜드 ‘렉서스’는 준비 기간 6년을 거쳐 출시됐다. 2003년 출시한 ‘사이언’은 젊은 층을 겨냥한 저가형 브랜드다. 세계 최초 하이브리드 자동차 ‘프리우스’도 도요타가 자체적으로 만든 브랜드다.

이 과정에서 토요타는 부족한 라인업을 보강하기 위해 두 차례 인수합병했다. 1966년 자회사로 편입한 히노는 트럭 생산 전문회사다. 다이하쓰는 1998년 9월 공개매수를 통해 주식 과반을 사들이면서 자회사가 됐다. 상용차도 어느 정도 생산하나 기본적으로 경차를 만드는 기업이기 때문에 도요타와 큰 충돌 없이 판매를 계속하고 있다.


토요타가 1965년 10월 제휴를 발표한 히노는 당시 프랑스 르노와 기술협력을 하면서 소형차 ‘르노 4CV’ 및 코롤라의 경쟁차인 ‘컨테서’를 만든 기업이었다. 그러나 판매실적이 좋지 않아 자금난에 빠지자 인수에 나서게 됐다.

협상 당시 마쓰카타 미쓰노부 히노 사장과 도요타 에이지 도요타 부사장은 협상 끝에 히노가 컨테서 생산을 중단하고 도요타의 소형 트럭 위탁 생산을 맡는 것을 합의했다. 이후 도요타는 천천히 지분율을 높여 2001년 히노 주식 중 50.1%를 손에 넣었다.


토요타와 히노의 제휴로 일본 자동차시장이 재편되면서 다이하쓰도 도요타와의 제휴가 추진됐다. 에이지 부사장은 고이시 유지 다이하쓰 사장에게 도요타와 목표 고객층이 같은 차종 생산을 중단하라고 요청했다. 협의 끝에 다이하쓰가 경차생산을 주력으로 삼되 소형승용차의 생산과 판매도 지속하는 선에서 타협했다. 1990년대 말 토요타가 다이하쓰 지분을 대거 사들였으나 이 합의는 현재까지도 지켜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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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 바라 GM CEO

◆ GM, 치열한 내부경쟁으로 우량 브랜드만 끌고가


GM은 여러 브랜드를 인수합병하며 규모를 키웠다. 그러나 상황이 좋지 않으면 한 번 손에 쥐었던 브랜드도 과감하게 정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역사와 잠재적 가치보다 당장의 수익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현재 GM의 최고경영자(CEO)인 메리 바라도 판매량이 좋지 않은 유럽에서 쉐보레 브랜드를 철수하는 등 가차없이 구조조정한다.


2008년 금융위기 때 GM은 파산신청을 하면서 거느리고 있던 브랜드 12개 중 8개를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살생부에 올라가지 않은 브랜드는 쉐보레, 캐딜락, GMC, 뷰익뿐이었다. 수익을 내는 브랜드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매각하거나 없애는 식이었다.

그 와중에 매각되지 못한 폰티악과 올즈모빌 등 유서깊은 브랜드가 그대로 시장에서 사라졌다. 경기가 회복되면서 GM은 7개 브랜드를 지켰고 판매량도 다시 늘어났다. 그러나 여전히 인수합병된 브랜드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 쳐내질지 모른다.


GM을 만든 윌리엄 듀런트 창업주는 기업 초창기부터 활발하게 인수합병을 시도했다. 뷰익을 1904년 인수한 뒤 4년 후 올즈모빌을 인수해 GM을 창립했다. 이후 그는 1920년 경영에서 물러날 때까지 캐딜락과 쉐보레를 비롯한 자동차 관련 기업 39개를 인수해 거대기업을 만들었다. 이것이 현재 GM의 모태다.


GM은 가격에 따라 보유한 브랜드 이미지를 차별화하는 마케팅을 가장 먼저 구사했다. 1923년 취임한 알프레드 슬론 회장 시절부터 GM은 ‘모든 지갑과 목적에 맞는 차’를 보유한 회사였다. 가격에 따라 프리미엄 브랜드인 캐딜락을 시작으로 중저가인 뷰익과 올즈모빌 아래 폰티악과 쉐보레를 저가로 넣었다.
 
이런 전략이 통하면서 GM은 1933년부터 1985년까지 미국 시장점유율 40% 이상을 기록했다. 폭스바겐그룹 등 인수합병에 매진하는 자동차기업들이 모두 이 방식을 따르면서 슬론 전 회장은 ‘현대 관리이론의 아버지’로 불린다.


자동차업계 전문가들은 위기상황이 아닐 때라도 GM은 수익성에 따라 브랜드를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으로 처리한다고 평가한하다. 사들인 브랜드를 몇십 년간 유지하는 폭스바겐그룹과 달리 10년 정도 두고 보다 바로 정리하는 방식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가령 2000년 6억400만 달러에 인수했던 스웨덴 브랜드 사브를 들 수 있다. 사브는 터보엔진을 승용차에 처음 적용하는 등 기술력과 안전성이 높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1998년 ‘9-3’을 내놓아 유럽에서 인기를 끌기도 했다. 

GM은 인수 후 신차개발을 지원하지 않았다. 2010년 수익성이 떨어지자 네덜란드 회사 스파이커에 7400만 달러를 받고 매각했다.


GM은 국내 브랜드인 대우자동차(현 한국GM)도 2002년 헐값인 17억7400만 달러에 사들였다. 대우자동차는 경차 ‘마티즈’와 중형차 ‘매그너스’ 등 국내와 동남아 시장에서 인지도가 높은 차량 라인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GM은 점차 대우 고유의 브랜드를 접고 쉐보레와 스파크 등 GM 브랜드를 달아 차량을 생산하게 했다. 결국 대우자동차는 2011년 한국GM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브랜드 자체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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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틴 빈터코른 폭스바겐그룹 회장

◆ 폭스바겐, 인수한 브랜드 정체성 끝까지 유지


현재 자동차업계에서 가장 인수합병을 활발하게 하는 폭스바겐그룹의 철학은 ‘브랜드 정체성 보존’이다.

전문가들은 폭스바겐그룹이 특정 브랜드를 인수할 경우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브랜드와 차별화할 전략부터 찾는다고 평가한다. 당장 판매량이 나쁘더라도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뜻이다. 폭스바겐그룹은 인수했던 기업을 아직 단 한 번도 다시 매각하지 않았다.


폭스바겐그룹은 대중적 핵심 브랜드 폭스바겐을 비롯해 12개의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인 아우디와 벤틀리부터 스포츠카로 유명한 포르쉐와 람보르기니까지 다양한 특화 차종을 브랜드마다 생산한다. 모터사이클 제조사인 두카티도 폭스바겐그룹 아래 있다.
 
마르틴 빈터코른 폭스바겐그룹 회장은 브랜드 관리 전략에 대해 “아우디 등 폭스바겐그룹 산하 11개 브랜드가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시너지를 창출한다”고 설명했다.


1960년대 인수한 아우디는 폭스바겐그룹의 브랜드별 관리를 보여주는 핵심 사례다. 국내 시장에서도 판매와 홍보 및 마케팅은 두 브랜드가 독립적으로 운영한다. 내부 관계자는 “두 브랜드의 정기회동은 없다”며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 두 브랜드 대표들이 만나 논의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두 브랜드의 이미지도 전혀 다르다. 아우디는 파격적 디자인과 고성능을 내세웠다. 폭스바겐은 디젤엔진을 탑재해 연비가 좋다는 점을 강조한다. 수입차업계 관계자는 “아우디와 폭스바겐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도 상대의 고객을 빼앗는 간섭 효과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폭스바겐그룹은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상용차 브랜드를 인수할 때도 지역적 특성을 살리는 등 차별화될 부분을 찾아낸다. 1982년 취임한 카를 한 폭스바겐그룹 회장은 ‘미국 이외의 시장에서 생존해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워 유럽의 한 국가에 특화된 브랜드 두 개를 인수했다. 인수된 스코다와 세아트는 각각 체코와 스페인의 국민차 브랜드다.

스코다는 지역적 특성을 살려 현재 폭스바겐그룹에서 가장 잘 나가는 저가 브랜드가 됐다. 눈으로 알아보기 힘든 섀시와 엔진 등의 부품만 공유해 비용을 아끼면서 공산주의 시절 차량 디자인을 정체성으로 살렸다. 스코다는 주력 모델인 중형 세단 ‘옥타비아’를 1991년 연간 판매량 17만 대에서 지난해 92만 대로 늘린 상태다.


폭스바겐그룹은 1991년 편입 후에도 방만경영 논란에 시달리던 세아트를 회장 직속 재건팀까지 만들어가며 살려냈다. 도로망이 발달한 지역 특성을 살려 소형 해치백과 왜건으로 전략 차종을 지정했다.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인 발터 드 실바를 영입해 2000년 전후로 ‘레온’과 ‘이비자’ 등 높은 평가를 받은 디자인의 차량을 만들기도 했다. 이 차들은 현재도 세아트의 주력 모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