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희 농협중앙회 회장이 지지부진했던 유통자회사 통합을 다시 추진한다.
이 회장은 농협 판매채널 통합을 발판삼아 농축산물 유통혁신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13일 농협중앙회에 따르면 이르면 상반기 안에 독립법인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농협경제지주 유통자회사 5곳이 하나로유통을 중심으로 통합된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유통자회사 통합을 위한 내부 협의 과정이 진행되고 있으며 차차 구체적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며 “농업인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방향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농협경제지주가 각 계열사에 관련 내용을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계열사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농협은 농협경제지주 아래 농협하나로유통, 농협유통, 농협충북유통, 농협대전유통, 농협부산경남유통 5곳을 독립법인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유통자회사 가운데 농축산물 구매권을 지닌 곳은 농협하나로유통뿐이다. 나머지 4곳은 농협하나로유통을 통해 농축산물을 들여와야 한다. 유통단계가 늘어나면서 농산물 가격이 오르고 신선한 농산물을 시장에 공급하는 데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다.
체계적 지휘체계를 갖춘 것이 아니라 5개 유통자회사가 개별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다보니 △원가 경쟁력 △구매 △물류 △마케팅 △조직 △업무 프로세스 등에서 중복과 비효율도 발생한다.
이 때문에 농축산물의 유통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현지 농가를 비롯해 농협유통업계를 중심으로 계속 나왔다.
재무, 인사, 마케팅 등의 기능을 한 곳으로 모으고 각 자회사는 본연의 업무인 유통에 집중한다면 비용 절감효과와 더불어 시너지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회장은 핵심공약인 농축산물 유통혁신을 위해 유통자회사 통합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농축산물 유통혁신 과제 가운데 하나로 하나로마트의 전국 당일배송 체계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을 시작으로 올해 인천·대전·대구·울산·부산·광주 등으로 당일배송 가능지역을 늘리고 2023년에는 전국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판매채널을 정비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이 회장은 판매채널 통합에 앞서 지난해 11월 농협의 농산물 구매역량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농협경제지주와 하나로유통으로 이원화돼있던 도매유통조직을 통합하기도 했다.
농협의 유통자회사 통합은 2016년부터 추진된 사업이다.
김병원 전 회장은 2016년 3월 취임한 이후 유통자회사 통합 방안을 모색했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와 보스턴컨설팅그(BCG) 등 대형 컨설팅회사에 연구용역을 맡기며 사전작업에 착수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2018년 컨설팅 결과보고서를 통해 “본사 상품 기획 기능을 매장 안에서 자체 수행하는 탓에 인력 비효율이 발생했다”며 “보조 IT시스템도 부족해 매장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도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유통자회사 통합 추진전략 수립 용역을 맡은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는 2016년 보고서를 내며 단순 통합으로도 유통 대형업체와 유사한 양적 경쟁력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통합 유통회사 매출규모는 5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2019년 기준 농협하나로유통은 매출 3조1195억 원을 거뒀다. 농협유통은 1조1907억 원, 농협대전유통과 농협충북유통, 농협부산경남유통은 각각 1684억 원, 1523억 원, 1372억 원 등이다.
2019년 기준 홈플러스는 매출 7조3002억 원 롯데마트는 매출 6조3306억 원을 올렸다.
하지만 조직 통합에 따른 중복인력 재배치 문제와 각 유통자회사마다 다른 근로조건과 급여 등의 조정 문제로 통합작업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
더욱이 유통자회사 통합을 추진하던
김병원 전 회장이 사퇴하고
이성희 회장이 당선되기 전까지 농협중앙회장 자리가 잠시 비게 되면서 조직개편에 힘이 실리지 못했다.
이 회장도 지난해 취임과 동시에 코로나19 사태 대응에 신경을 쓰느라 유통자회사 통합을 들여다 볼 여유가 부족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남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