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삼현 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사장이 유럽에서 진행되는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심사에서 조건이 달리지 않는 승인 결정을 받아낼 수 있을까?
만약 가 사장이 생산능력 축소를 전제로 하는 조건부 승인 결정을 받아내는 방향으로 선회한다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에 구조조정이 불가피하게 된다.
8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유럽연합 경쟁당국인 집행위원회가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을 두고 진행하는 심사결과를 올해 안에 내놓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집행위원회는 앞서 두 차례 연기 끝에 9월3일을 심사 결론을 내는 예정일로 한국조선해양에 통보했지만 일정을 뒤로 거듭 미뤘다.
집행위원회는 지난 6월 기업결합과 관련해 액체화물운반선, 컨테이너선, 해양플랜트 건조시장의 경쟁 제한 우려는 해소됐다는 중간심사결과를 한국조선해양에 전했다. 하지만 가스선 건조시장의 경쟁 제한 우려와 관련한 검토를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LNG(액화천연가스)운반선을 예로 들면 2019년 기준으로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의 합산 수주잔고 점유율은 58%다.
그러나 글로벌 선박 건조시장에서 LNG운반선을 건조할 수 있는 조선사는 한국 조선3사와 일부 중국 조선사들 정도의 소수 조선사들 뿐이라는 시장의 특수성도 있다.
심사 자체의 어려움에 코로나19의 영향까지 겹쳐 결론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이에 조선업계 일각에서는 가 사장이 조건부 승인을 받아내는 방향으로 전략을 선회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앞서 10월16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기업결합심사와 관련해) 조건 없는 승인이 나올 수 있지만 안 된다면 레메디(Remedy, 개선)를 하면서 시정해 나가면서 하는 방법도 있다고 보고받았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대우조선해양을 매각해야 하는 채권단의 대표 격이다. 그런 이 회장이 조건부 승인의 가능성을 언급한 만큼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노동자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시정해 나가면서 기업결합 승인을 받겠다는 것은 곧 조건부 승인을 뜻하는 것이며 조건부 승인은 구조조정을 예고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생산능력을 축소하는 작업이 있다면 현대중공업보다 대우조선해양에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불안감이 더 큰 쪽도 대우조선해양이다.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이 10월19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한국수출입은행 국정감사에서 이런 우려를 대변하기도 했다.
서 의원은 “(집행위원회가) 조건부 승인을 허용한다면 LNG운반선 점유율을 최대 40% 이하로 낮추라고 할 수도 있다”며 “그렇게 되면 대우조선해양이 1도크와 2도크 등 핵심 생산 도크(로열 도크)를 폐쇄해야 한다는 게 조선업계의 생각이다”고 말했다.
2개 도크는 대우조선해양의 대형선박 건조를 담당하는 주력 도크다. 이 도크를 운용하지 않는다면 대우조선해양이 노동자들을 많이 고용할 이유가 없다.
물론 형평성을 고려해 현대중공업에서도 생산능력 축소작업이 진행될 수 있다. 다만 현대중공업의 노사관계가 좋지 않다는 점은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데 부담요인이다.
현대중공업은 앞서 3일 2020년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교섭을 시작하는 상견례를 진행했다.
아직 2019년 임금협상조차 타결하지 않은 상황에서 올해를 두 달 남기고 교섭을 시작하는 만큼
한영석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사장은 잠재적으로 3년치 교섭의 부담감을 짊어진 셈이다.
가삼현 사장과
한영석 사장은 현대중공업 공동대표이사를 맡고 있었던 2019년 수차례 담화문을 내고 한국조선해양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로 인위적 구조조정을 진행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마저 깨지면 현대중공업의 노사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다.
가 사장이 유럽에서 조건없는 승인을 받아낼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한국조선해양은 한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 싱가포르, 카자흐스탄 등 6개 나라의 경쟁당국에 기업결합신고서를 냈다. 이 가운데 유럽연합의 심사결과가 다른 나라 경쟁당국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조선업계는 바라본다.
이에 앞서 8월 가 사장은 싱가포르에서 조건이 달리지 않는 승인결과를 받아내는 성과를 냈다. 카자흐스탄에 이어 두 번째다.
싱가포르도 유럽연합처럼 글로벌 주요 선주사들이 여럿 있는 나라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싱가포르의 결정을 참고할 수 있는 만큼 이 결과는 의미가 작지 않다.
한국조선해양도 조건부 승인의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2020년 3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각 나라 경쟁당국들과 조건부 승인을 전혀 논의하고 있지 않다”며 “조건부 승인과 관련한 이야기는 무시해도 좋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