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솔루스의 최종 종착지는 한화그룹일까?
3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
진대제펀드’로 알려진 사모펀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스카이레이크)가 두산그룹과 두산솔루스 인수 논의를 재개했다.
현재 막바지 조율 작업이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스카이레이크는 두산그룹 지주사 격인 두산과 그룹 오너 일가가 보유한 두산솔루스 지분 61.34%를 7천억 원에 사들이려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거래와 관련한 일련의 흐름을 살펴보면 몇가지 의문이 든다.
지난 4월 두산그룹이 처음 스카이레이크와 두산솔루스의 비공개 매각을 논의했을 때 스카이레이크가 제시했던 가격은 6천억 원이었고 두산그룹은 8천억 원을 고수해 거래가 무산됐다.
이후 두산그룹은 두산솔루스 매각방식을 공개매각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인수후보군으로 거론됐던 대기업들이 모두 예비입찰에 참여하지 않아 입찰이 흥행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스카이레이크가 최초 제시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에 두산솔루스를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시장은 이번 거래에 제3자의 의중이 반영됐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바로 한화그룹이다.
이에 앞서 6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셋째아들인 김동선 전 한화건설 차장이 스카이레이크에 입사했다.
김 전 차장은 스카이레이크에서 인수합병과 신기술 관련 투자업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솔루스 인수가 김 전 차장의 스카이레이크 데뷔무대인 셈이다.
시장이 주목하는 지점은 김 전 차장이 한화그룹의 두산솔루스 인수를 위해 스카이레이크에 입사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화그룹이 스카이레이크 산하 회사를 인수했던 전례도 있다. 2015년 한화에너지는 스카이레이크에서 공장 자동화솔루션 전문회사인 에스아이티를 인수했다.
두산솔루스도 최종 종착지가 한화그룹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한다면 거래에 얽힌 세 참여자 모두에게 긍정적이다.
한화그룹은 계열사 한화솔루션의 첨단소재부문에서 모빌리티소재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두산솔루스의 대표제품이 전지박(전기차배터리용 동박)인 만큼 두산솔루스를 인수하면 전기차시장의 성장세 속에서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두산솔루스의 기업가치에는 현재 가치보다 사업 성장성이 크게 반영돼 있다. 두산솔루스는 시가총액이 1조 원을 웃돌고 있지만 올해 실적 전망치(컨센서스)는 매출 3242억 원, 영업이익 425억 원에 불과하다.
한화솔루션 첨단소재부문이 모빌리티소재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는 해도 자동차소재와 배터리소재는 엄연히 기술영역이 다르다. 한화그룹이 두산솔루스를 곧바로 인수해 성장성을 현실화하는 데는 위험부담이 따른다.
한화그룹으로서는 두산솔루스가 성장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현실화한 뒤에 두산솔루스를 인수해도 늦지 않다. 다만 두산솔루스가 다른 대기업의 손에 들어간 뒤에는 돌이킬 수 없다.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은 과거 삼성전자에서 시스템LSI(고밀도집적회로)사업부장 대표이사를 지내며 64MB, 128MB, 1GB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삼성전자를 세계 최고의 반도체회사로 올려놓은 주역이다.
제9대 정보통신부 장관과 한국블록체인협회 초대 회장까지 역임하며 신기술과 관련한 통찰력을 충분히 입증한 만큼 두산솔루스의 성장성을 현실화할 적임자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김승연 회장과 진 회장은 경기고등학교 동창으로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김동선 전 차장이 스카이레이크에 입사할 수 있었던 것도 두 회장의 친분이 작용했다는 시선도 있다.
두산솔루스가 결국 한화그룹에 인수된다면 김 회장은 평소 친분이 있는 진 회장에 두산솔루스의 초기 육성을 맡기고 그 주춧돌을 아들인 김 전 차장이 놓도록 한 셈이다.
진 회장으로서도 두산솔루스의 인수 뒤 재매각이 나쁠 것은 없다. 김 회장과의 친분을 더욱 돈독히 하고 시세차익까지 남길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두산솔루스는 헝가리에 전지박 1만 톤을 생산하는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헝가리를 포함한 동유럽에 LG화학, SK이노베이션, 삼성SDI 등 한국 배터리3사의 생산공장이 모두 포진해 있어 고객사를 확보 부담이 적다.
실제 두산솔루스는 3월 헝가리 전지박공장을 완공하기도 전에 2020년 생산물량 가운데 80%의 공급처를 확보하기도 했다.
게다가 두산솔루스는 2025년까지 전지박 생산능력을 7만5천 톤으로 키운다는 증설 로드맵이 이미 수립돼 있다. 헝가리 정부도 10월 두산솔루스에 자금 지원과 법인세 면제혜택 등 340억 원의 현금 인센티브를 지원하기로 약조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두산솔루스는 성장성을 현실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매물이라는 뜻이다.
두산그룹에서 보자면 약간의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 두산솔루스 매각을 공개매각으로 전환할 당시만 해도 시장에서는 두산솔루스 지분 61.34%의 대가로 1조 원까지 받을 수 있다는 말까지 나왔기 때문이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두산솔루스는 유럽연합의 전기차 확대정책에 따른 수혜를 볼 수 있다”며 “통상적으로 인수합병(M&A)이 결정되면 기업가치가 떨어지지만 두산솔루스는 오히려 기업가치가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그러나 두산그룹이 두산타워나 클럽모우CC 골프장 등 부동산 자산의 매각에만 속도가 붙고 두산솔루스, 두산메카텍, 지주사격인 두산의 모트롤BG(유압기기 비즈니스그룹) 등 대형매물의 매각에는 고전하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두산솔루스 매각의 의미는 작지 않다.
두산그룹은 채권단과 자산 매각을 통해 3조 원을 마련하기로 약속했으며 이 가운데 1조 원은 올해 준비하기로 했다.
두산그룹이 두산타워와 클럽모우CC 매각으로 실제 확보할 수 있는 현금은 4천억 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1조 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대형매물의 매각에 성공해야 한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대형 매물의 매각이 지지부진하게 진행되자 그룹의 두 현금 창출원(캐시카우) 가운데 하나인 두산인프라코어도 매물로 내놨다.
만약 두산인프라코어 매각마저 쉽지 않다면 박 회장은 다른 현금 창출원인 두산밥캣까지 내놓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두산솔루스 매각에 성공한다면 박 회장은 한 숨 돌릴 수 있다.
매각가격 7천억 원이 낮다고만 볼 수도 없다.
SKC는 지난해 6월 두산솔루스와 마찬가지로 동박 생산회사인 KCFT(현 SK넥실리스)의 지분 100%를 인수하기 위해 1조2천억 원을 들였다. 당시 KCFT의 동박 생산능력은 연 2만 톤으로 현재 두산솔루스의 2배 수준이었다.
두산솔루스 가격 7천억 원에는 1년 사이 동박시장의 성장 전망이 더욱 밝아졌다는 점이 어느 정도 반영된 셈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