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중공업에 혈세가 무려 3조6천억 원 지원된다. ‘그 돈이면 기업을 하나 세우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채권단이 자금을 투입하는 명분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갑작스러운 코로나19 사태로 자금시장이 경색됐고 국가기간산업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높다는 것이다.
▲ 두산중공업 로고.
두산그룹이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판단도 채권단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두산중공업이 지금의 상황에 놓인 이유로 정부의 탈원전정책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일종의 ‘부채의식’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두산그룹 오너 일가가 과연 3조6천억 원의 혈세를 지원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는 더 면밀히 검토돼야 한다.
두산그룹의 위기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번 대규모 자금지원은 현재의 위기를 오롯이 정부의 탈원전정책에 떠넘기려는 두산그룹 오너일가와 원성을 피하고 싶은 정부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라는 시선이 더욱 타당해 보인다.
특히 사태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지 못했던 두산그룹 오너일가의 책임이 크다.
두산그룹의 독특한 경영권 승계방식이 오히려 위기에서는 독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그룹 회장을 맡고 직간접적으로 경영에 참가하는 오너일가가 너무 많다보니 오히려 책임이 분산됐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두산그룹 오너일가에게서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채권단이 두산인프라코어나 두산밥캣 등 알짜 계열사의 매각을 두산그룹에 요구했지만 두산그룹이 난색을 보였다는 얘기도 들려오고 있다.
최근 프로야구단 두산베어스 매각설이 흘러나오자 두산그룹이 사실무근이라며 바로 부인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팔기 싫고 내주기 싫은 건 끝까지 들고 가겠다는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뼈를 깎는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특히 두산그룹은 계열사를 매각할 때 계열사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오너일가, 그리고 앞으로 경영권 승계를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 다른 4~5세들을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앞으로 두산그룹이 내놓을 자구안을 놓고 ‘보여주기식’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고 있는 이유다.
두산중공업이 제시한 두산중공업의 새로운 사업전략을 놓고도 의구심이 가시지 않는다.
두산중공업은 친환경에너지 전문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는데 당장 수익을 내기는 어렵다. 면밀한 검토 끝에 나온 치열한 생존전략이라기보다는 명분만 그럴듯하다는 지적조차 나온다.
두산그룹은 2016년 한국 대기업 최초로 4세경영을 시작했다. 박정원 회장이 회장에 오르면서다. 120년 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두산그룹은 한때 구조조정의 모범사례로 꼽혔다. 두산그룹은 창업 100주년을 맞은 1995년 소비재 중심의 사업구조를 중공업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선포한 뒤 20년 만에 목표를 이뤘다.
당시 두산그룹의 회장이었던 박용곤 명예회장은 “두산의 모태인 주류사업을 어떻게 다른 곳에 넘길 수가 있느냐”는 주변의 우려에 대해 “두산이 다음 세대로 넘어가지 못할 수 있는 상황에서 가업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는 말을 남겼다.
박태원 두산건설 부회장은 그의 논문에서 ‘두산은 사업을 이어가는 것보다 기업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고 분석했다.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기업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채권단의 자금지원은 확정됐고 공은 오롯이 두산그룹에게 넘어왔다.
한 번 경영에 실패한 사람에게 재기의 기회가 얼마나 주어지기 어려운지는 ‘대마(大馬)’가 되지 못한 수많은 기업들, 그리고 주변의 자영업자들만 봐도 알 수 있다.
두산그룹이 이번 지원을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될 이유다. 3조6천억 원 지원에 걸맞은 변화를 기대한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