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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은 2012년 9월3일 가천대학교에 200억 원을 기부했다. |
“내 삶을 의료인과 교육인으로 나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의 말이다.
이 회장은 의사로 시작했지만 병원 경영자와 교육인의 삶은 하나다. 이 회장이 1978년 의료법인 인천길병원을 설립한 것도 교육을 향한 열정과 깊은 관련이 있다. 도쿄여자의대를 설립한 요시오카 야요이의 삶이 오늘 대학총장을 겸임하는 이길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인천길병원을 만들 당시 이미 좋은 의사를 배출하는 전문교육기관을 세울 결심을 했다. 인천길병원은 간호사에게 조산사 교육을 시키는 ‘수련의병원’을 겸했다. 이 회장이 총장을 맡고 있는 가천대는 의학전문대학원과 간호학과, 한의과대, 약대를 모두 갖추고 있다. 의료부문에서 교육에 관한 한 ‘수직계열화’를 완성한 셈이다.
이 회장은 2011년 경원대와 가천의대를 합쳐 가천대를 만들면서 ‘G2’와 ‘N3’이라는 목표를 내세웠다. 세계적 학과 2개와 국내 최고 학과 3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는 "통합대학을 출범시켜 10대 사학을 넘어 5대 사학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한의과대는 이 회장에게 아킬레스건이다. 한의학과가 있는 경원대를 인수한 뒤 대학부속 한방병원 문제를 놓고 계속 학생과 충돌하고 있다. 이 분쟁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 대학 5개를 통합해 종합대학 가천대를 만들어
2012년 3월 출범한 가천대학교는 성공적 통합 사례로 꼽힌다. 모두 5개 대학이 여러번에 걸쳐 통합된 끝에 가천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통합 당시 우려가 많았으나 지금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 힘은 이 회장의 막대한 투자다.
이 회장은 1994년 경기간호전문대학교를 인수해 가천길전문대로 이름을 바꿔 대학설립의 발걸음을 시작했다. 1998년 가천의대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교육분야에 진출했다. 그해에 경원대와 경원전문대를 인수했다. 종합대학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이 회장은 대학들을 합치기 시작했다. 2006년 가천의대와 가천길전문대를 통합했다. 1년 후 경원대와 경원전문대를 하나로 만들었다. 2011년 가천의대 재단인 가천학원과 경원대 재단인 경원학원을 합쳐 가천경원학원을 설립했다. 이 회장이 두 대학을 하나로 합치려는 계획을 구체화한 것이다. 이 회장은 당시 “이미 (두 대학교의) 통합작업에 돌입했다”며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1년 안에 통합을 마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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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길여 경원대학교 총장 시절인 2010년 2월 직접 학생을 진료하고 있다. |
이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학교 이름을 정하는 과정에서 다툼이 일어났다. 3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던 경원대 인사들은 새 학교 이름에 ‘경원’이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직교수 32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투표에서 ‘가천’이 28표를 얻었지만 학생들이 “교명 논의는 무효”라고 주장해 갈등은 깊어졌다.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이 나서 경원대 명칭변경 반대성명을 낼 정도였다.
이 회장은 막대한 투자를 약속하며 이런 갈등을 잠재웠다. 이 회장은 당시 “통합대학인 가천대에 매년 200억 원씩 5년 동안 1천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또 100억 원 규모의 장학기금 조성과 미국 하와이 기숙사(가천글로벌센터)를 통해 300명 어학연수 혜택도 약속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가천대는 입학 정원 4500명이 넘는 사립 종합대학으로 탈바꿈했다. 성남에 위치한 경원대 캠퍼스는 글로벌캠퍼스로 이름을 바꿔 의료분야와 관련되지 않은 학과를 뒀고 인천의 가천의대 캠퍼스는 의학, 약학, 보건, 생명과학 등에 특화된 메디컬캠퍼스로 구축했다.
그 결과 가천대는 경희대에 이어 의대, 한의대, 약대, 간호대를 모두 갖춘 대학이 됐다. 이 회장은 스스로도 “가천대는 수도권 3위의 매머드급 대학이 됐으며 명실상부한 종합대학의 위상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이 회장은 상대적으로 위상이 약한 비의료 학과를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이 회장은 ‘글로벌경영학트랙’을 만들어 이 학과에 입학하는 학생들에게 해외 명문대 유학 때 최대 3년까지 매년 3만 달러를 장학금으로 지원하겠다는 혜택을 내걸었다.
가천대는 2012년 수시 1차에서 전체 1337명 모집에 3만878명이 지원해 23대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수시 2차는 경쟁률이 더 높아져 27대1까지 치솟았다.
◆ 미국식 대학시스템을 뿌리박으려는 이길여
가천대총장으로 이 회장의 교육철학은 G2와 N3으로 압축된다. 그는 “G2는 세계최고 수준의 연구역량을 갖는 2개 선도 분야를 집중 육성하는 전략이고 N3은 국내최고 수준을 지향하는 융합연구분야 육성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글로벌교육’을 강조한다. 그는 “내가 젊어서 미국에 갔을 때 가장 힘든 것이 언어였다”며 “미국에 가면 미국 말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와이에 가천대 교육원캠퍼스를 만든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 회장은 미국식 대학시스템을 가천대에 구축하려고 한다. 그는 “미국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졸업하는 것이 어렵다”며 “우리나라 시스템에서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히 의학교육에서 추천서를 중시하는 미국제도를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회장은 대학 구조조정과 반값 등록금에 부정적이다. 우선 대학 구조조정과 관련해서 대학의 자율적 노력이 사회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 경우 퇴출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똑같은 기준으로 모든 대학을 평가하는 것은 다양성을 막는 것이라고 본다.
또 반값 등록금과 관련해서도 등록금을 깎는 것보다는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이 오리혀 낫다고 주장한다. 그는 “가천대학교의 경우 자퇴하는 학생 중 등록금을 못 내는 것이 이유라면 장학금을 지급한다”며 “돈이 있는 재벌가 자녀들까지 반값 등록금을 내고 다니는 것을 불공평하지 않나”고 되묻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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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이 지난달 30일 성남 글로벌캠퍼스에서 사우디아라비아 킹사우드대학교 바드란 알 오마르 총장에게 명예 행정학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있다. |
◆ 이길여의 아픈 손가락, 한의과대 문제
한의과대는 이 회장에게 골치덩어리다. 가천대부속 한방병원 건립을 놓고 충돌이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가천대 한의과대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3월31일 비상총회의를 연 뒤 수업거부에 들어갔다. 재학생 180여명 중 120여명이 참여했다. 학교가 지난 2월28일까지 부속 한방병원 건립 이행계획을 제시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천대는 2015년 10월까지 100병상 규모의 부속 한방병원을 열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수업거부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에도 한의과대 학생들은 “가천대학교가 연말까지 부속 한방병원을 건립하겠다고 약속한 합의사항을 지키지 않았다”며 수업과 시험을 거부했다.
학교는 당장 부속 한방병원을 여는 게 힘들다고 말한다. 가천대 통합 후 학교부지 내 시설건립에 법적 문제점이 생겼기 때문이다. 학교 관계자는 “가천대 통합 당시 승인조건에 적정 규모의 교육시설 유지가 있었다”며 “국제어학원 건물에 부속 한방병원을 개원하면 문제가 될 수 있어 대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불씨는 이 회장이 만든 것이다. 이 회장은 경원대를 인수하면서 별도의 부속 한방병원 건립을 약속했다. 그러나 그뒤 길병원 별관 일부에 한방병원을 만드는 식으로 계획을 바꿨다. 학생들이 반발하자 학교는 성남 캠퍼스 인근에 100병상 규모의 건물을 빌려 부속병원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학생들은 이 회장에게 면담을 요청했으나 이 회장은 외국출장을 이유로 면담요구를 받아주지 않았다.
지난달 일어난 수업거부도 학교가 한의과대학 평가인증을 위해 진료과목과 실습환경을 지원하고 4년 동안 연간 3억 원씩 한의과대학 발전기금을 내겠다고 약속하면서 진정됐다, 학생들은 “학교의 약속이행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