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HDC현대산업개발의 유상증자에 성공하며 한숨을 돌렸다.
다만 증자규모가 애초 계획보다는 줄어 인수자금과 관련한 부채가 늘어나게 된 만큼 시장 신뢰 강화를 위해서는 인수주체인 HDC현대산업개발의 부채 관리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9일 증권업계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HDC현대산업개발은 3207억 원 규모의 대규모 유상증자에 성공하면서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바라보는 시장의 우려를 일정 부분 잠재우는 효과를 봤다.
이번 유상증자는 정 회장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한 첫 시험대로 평가됐다.
애초 시장은 코로나19 확산으로 항공업계가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 HDC현대산업개발이 유상증자 흥행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HDC현대산업개발은 일반공모 없이도 기존 주주만을 대상으로 예정된 3207억 원의 투자자금을 모두 끌어오는 데 성공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이 5일과 6일 기존 주주를 대상으로 진행한 유상증자 청약에는 전체 주주의 92.6%가 참여했다. 기존 주주들이 신주인수권의 20%까지 가능한 추가 청약마저 활발히 신청하면서 HDC현대산업개발은 결국 일반공모 없이 유상증자 청약을 마무리했다.
기존 주주 참여율이 90%가 넘은 만큼 HDC현대산업개발 2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도 유상증자에 참여한 것으로 파악된다. 국민연금은 1월17일 기준 HDC현대산업개발 지분 10.2%를 보유했다.
국민연금을 포함한 기존 주주 대부분이 이번 유상증자를 통해 HDC현대산업개발의 장기 성장성에 베팅하며 정 회장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결정에 힘을 실어줬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다만 증자규모가 애초 계획보다 줄면서 차입금이 늘어난 점은 정 회장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애초 유상증자를 통해 4075억 원을 마련할 계획을 세웠으나 주가 하락에 따라 주식 발행가격을 낮추면서 유상증자로 애초 계획보다 870억 원 줄어든 3207억 원을 모으는 데 그쳤다.
정 회장은 애초 계획보다 줄어든 870억 원을 차입금을 통해 마련하기로 했는데 유상증자를 통한 자본확충 규모가 줄면서 차입금이 늘면 부채비율에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부채비율은 부채를 자본으로 나눠 구한다.
정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인수자금 2조101억 원을 유상증자 외에 은행차입금 및 기타차입금(8894억 원), 공모회사채 3천억 원, 자체 보유현금 5천억 원 등을 통해 마련할 계획을 세워 뒀다.
이미 인수자금의 절반 이상을 부채로 충당할 계획을 세운 상황에서 추가 차입금이 발생하는 일은 부담이 클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 부채가 빠르게 늘고 있는 점도 정 회장의 추가 차입금 발생 부담을 키운다.
아시아나항공은 2월에만 KB증권, 신한금융투자, 한국투자증권에서 각각 1천억 원씩을 빌려 단기차입금이 기존 1조7058억 원에서 2조807억 원으로 3천억 원 가량 늘었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이후에도 경영 정상화 과정에서 아시아나항공은 물론 모회사인 HDC현대산업개발에서 추가 차입금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기업평가, 나이스신용평가, 한국신용평가 등 국내 3대 신용평가사는 이미 지난해 11월 HDC현대산업개발을 신용등급 하향 검토대상에 올려놓으며 하나 같이 차입금 증가에 따른 재무구조 악화, 아시아나항공 인수 이후 추가 자금 투입 가능성을 이유로 꼽았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신용등급이 낮아지면 항공업뿐 아니라 본업인 건설업에서도 자체개발 사업의 자금조달, 주요 수주전 등에서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HDC그룹 관계자는 “HDC현대산업개발은 현재 유상증자와 사모채권 발행 등을 통해 인수자금 2조101억 원을 차근 차근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며 “차질 없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작업을 진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