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라고 한다. 그만큼 힘이 있는 자리여야 하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주목을 받아야 하는 자리다.

  대한민국에서 총리라는 존재의 의미  
▲ 정홍원 국무총리가 27일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사의를 표했다.

하지만 정홍원 총리의 사의표명과 그 뒤 '식물총리'로서 행보를 보면 대한민국 총리의 자리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은 고민을 하게 한다. 정 총리가 지난 27일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고 했을 때 심지어 “정홍원이 누구냐”는 반응도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 총리의 사의를 수용했지만 세월호 참사가 수습된 이후에 사표를 수리하겠다고 했다. 정 총리는 이에 따라 시한부 임기의 ‘식물총리’가 됐다. 정 총리는 세월호 참사 수습에 모든 여력을 다 쏟고 있다.

정 총리는 28일 밤 안산 합동분향소를 조문했고 29일 진도 참사 현장으로 내려갔다. 29일 국무회의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누가 봐도 '영'이 서지 않을 정 총리의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뉴욕타임스(NYT)는 27일(현지시각) “한국 총리 여객선 참사로 사퇴”라는 기사를 통해 정 총리의 사퇴 소식을 크게 보도했다. NYT는 “대통령에게 집중된 행정권한 때문에 한국의 총리는 매우 형식적인 자리”라며 “정부가 정치적 잘못이나 중대한 스캔들로 책임질 일이 있을 때 파면당하기도 한다”고 꼬집었다.

우리나라의 총리는 존재감이 거의 없다. 총리는 대통령에 이은 2인자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있다. 하지만 오히려 만인에 가까운 존재다.

총리라는 자리의 첫 출발부터 좋지 않았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 고문에게 보내는 한 편지에서 “한국 사람들은 국무총리를 원하지 않으며 의원들도 반대할 것”이라며 “그러나 대통령을 보좌하는 권한없는 총리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후 대한민국 총리는 대개 권한을 행사해 뜻대로 국정을 이끌기보다 대통령의 뜻을 받들고 보좌하는 자리에 그쳤다.

그 결과 2010년에 정운찬 총리가 퇴임하고 한 달이 넘게 총리 자리가 공석이었는데도 국정운영의 공백이 전혀 없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졌다. 총리 자리를 두고 대통령 부재 때 여러 행사에서 대통령의 전언을 대신 읽는 ‘대독총리'라는 말이 나온 이유다.

물론 되돌아 보면 대통령에 맞서 헌법에 보장된 권한을 행사하려 했던 총리도 있었다. 김영삼 정권에서 이회창 총리는 ‘법치’를 내세우며 김영삼 대통령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이회창 총리는 김영삼 대통령의 최측근인 최형우 내무부 장관을 거침없이 비판해 유명세를 탔다. 김영삼 대통령이 이회창 총리를 부담스러워 해 해임하려 한다는 말이 돌자 이 전 총리는 “허수아비 총리는 하지 않겠다”며 취임 127일만에 자진사퇴했다.

장관 등 국무위원 제청권은 총리의 권한이다. 이 내각 인사권은 강력한 권한이다. 그러나 실제로 제청권을 행사한 총리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이해찬 총리와 김대중 대통령 시절 이른바 'DJP 연합정부'를 구성한 김종필 총리 정도였다. 이해찬 총리는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유시민 장관을 임명하는 문제를 두고 노무현 대통령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 이회창 총리나 이해찬 총리조차도 대통령의 뜻을 거슬러 총리의 권한을 행사할 수는 없었다. 이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우리나라 총리의 숙명이기도 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소추됐을 때 업무권한이 정지돼 고건 총리가 권한대행을 한 일이 있다. 우스갯소리로 이런 경우에 총리가 필요하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이런 특수한 경우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총리는 마치 조선시대 영의정과 꼭 같다는 말을 많이 한다. 강력한 1인자가 임명하는 2인자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영의정은 군신들의 원로로 존경받는 자리였지만 정작 실권은 크지 않았다. 섭정을 행한 수양대군을 제외하면 조정의 얼굴마담 역할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선 최고의 명재상으로 불리는 황희 정승이 영의정으로 국정을 총괄한 때는 조선 최고의 성군인 세종대왕이 다스렸던 시기다. 결국 좋은 총리는 좋은 대통령이 만들어 낸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