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기부자가 되고 싶은 박현주  
▲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직원들과 함께 급여 1% 기부 실천을 선언하고 있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배려있는 자본주의’를 강조한다. 그리고 기부활동도 매우 적극적이다. 그 뿌리는 부모의 가르침이라고 한다.

“미래에셋의 사회공헌의 바탕에 돈을 벌었으니 기부한다는 의무감이 아니라 사회와 사람에 대한 사랑의 정신이 깔려 있다. 올해도 따뜻한 자본주의, 돈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자양분이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사회공헌 활동에 임직원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 박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도 어김없이 사회공헌을 강조했다.

박 회장은 사업 초창기부터 미래에셋박현주재단을 만들어 인재육성을 위해 노력했다. 2010년 이후 배당금 전액을 기부금으로 내고 있다. 올해 배당받은 15억 원도 전액 기부했다. 박 회장이 지난 4년 동안 기부한 액수는 152억 원에 이른다.


◆ “최고의 부자보다 최고의 기부자가 되고 싶다.”


박 회장이 기부를 시작한 것은 2000년부터다. 박 회장은 사재 75억 원을 털어 미래에셋박현주재단(박현주재단)을 만들었다. 박 회장은 창립 당시 이렇게 말했다.

“한국 최고의 부자가 되기보다 최고의 기부자가 되고 싶다. 박현주재단을 설립한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저도 사람인지라 (사재 75억원을 털어 재단을 설립한)그 일을 처리하고 꼬박 이틀간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이익의 사회환원은 자선이 아니라 일상적 기업활동이 돼야 한다는 소신에 변함이 없다”


14년 전 한 말이지만 박 회장의 사회공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가장 두드러지는 사회공헌 활동은 14년째 계속되는 장학금 지원 사업이다. 박현주재단에서 장학금 받은 학생이 어느덧 2400 명을 돌파했다. 또 9년째 운영하고 있는 해외교환 장학생사업도 수혜학생이 2700 명을 넘었다.


지난해부터 회사의 특성을 살려 글로벌 투자전문가 장학생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프로그램에 선발된 122명의 학생들은 하버드대, 스탠퍼드대, 매사추세츠공대 등 세계적 명문대에서 글로벌 투자전문가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는다.

소외계층 자녀를 위한 사회공헌 활동도 벌이고 있다. 2001년부터 8년 동안 벌이고 있는 소년소녀가정 생활비 지원사업을 비롯해 다문화가정 자녀 지원, 저소득층 교복 지원 및 결식아동 구제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이밖에도 백혈병 및 한센병 환자 지원, 연탄나르기, 공부방 도서 지원 등 크고 작은 사회공헌활동도 지속하고 있다.

박현주재단은 상당히 투명하게 운영된다. 박현주재단은 재단설립 당시부터 박 회장이나 미래에셋그룹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형태로 꾸려졌다. 변형윤 서울대교수가 이사장을, 김승유 하나은행장을 비롯한 금융계 인사들이 이사진을 거쳐 갔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박현주재단에서 감사를 맡기도 했다. 현재 이사장을 맡고 있는 사람은 이기수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이다.


  최고의 기부자가 되고 싶은 박현주  
▲ 미래에셋이 진행하고 있는 제1회 희망듬뿍 사업 기념사진
기부문화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2012년 상장기업의 평균기부금은 14억7천만 원이다. 박 회장이 2012년 배당금으로 기부한 금액은 42억 원으로 상장기업의 평균 기부금보다 3배 가량 많다.

부정적인 시선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박 회장이 배당금을 기부하기로 결정한 것은 미래에셋펀드가 무너지던 시기(2009년)였다. 당시 펀드에 투자했다 대량 손해를 본 투자자는 “아직 원금도 회수 못하고 있는데 기부가 무슨 말이냐”며 볼멘소리를 했다.

◆ “미래에셋 성공비결은 부모님”

박 회장은 미래에셋그룹의 성공비결에 대해 말할 때 항상 부모 얘기를 한다. 박 회장은 “아버지는 내가 계속 책을 찾게 만들었고, 어머니는 돈의 책임감에 대해 가르쳐주신 분”이라고 한다. 박 회장의 기부도 부모의 영향이 컸다.

박 회장은 유년시절을 광주에서 보냈다. 당시 박 회장은 부모님에게 인정받기 바라는 학생이었다. 그는 중학교 당시 항상 1,2등을 차지 할 만큼 좋은 성적을 받았다고 한다. 그 결과 박 회장은 호남지역 명문인 광주일고에 합격한다.


하지만 기쁨과 함께 슬픔이 찾아왔다. 합격통지서를 받던 날 아버지가 작고했다. 박 회장은 그때부터 방황하며 사춘기를 보낸다. 공부보다 삶의 근본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나날을 보냈다. 그래서 고교시절 석차는 꼴찌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그때 박 회장이 삶의 이유를 찾기 위해 붙잡은 것이 책이었다. 박 회장은 “3년 동안 닥치는 대로 읽은 책이 내 삶은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아버지를 잃고 재물에 대한 허무함을 느끼면서 더욱 가치있는 일을 생각하게 됐다고 말한다. 기부는 박 회장이 생각하던 가장 이상적 활동이었다. 박 회장은 특히 책 기부에 신경을 많이 쓴다. 최근 중고등학생을 상대로 도서기증 사업을 진행하는 것도 때문이다.

박 회장은 어머니에게 돈에 대한 따끔한 충고를 여러번 받았다고 한다. 박 회장의 신임 지점장 시절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박 회장이 당시 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몇몇 고객을 소개해줬다. 고객 중 한명이 친척이었는데, 시장상황이 좋지 않자 손실이 발생했다. 친척은 돈을 물어내라고 거칠게 항의했고, 박 회장은 마지 못해 원금을 되돌려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뒤늦게 알고 보니 친척 돈인 줄 알았던 돈이 어머니의 돈이었다. 어머니가 남의 돈을 관리하는 사람은 항상 책임감을 심어주기 위해 박 회장을 시험했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2009년 당시 미래에셋 펀드의 수익률이 저조하자 배당금을 받지 않았다. 박 회장 스스로 행동에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 박 회장은 배당금액을 모두 기부한다고 선언했고 지금까지 약속을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