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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준혁은 넷마블 신화를 어떻게 만들었나

박은영 기자 dreamworker@businesspost.co.kr 2014-04-25 20:4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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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준혁은 넷마블 신화를 어떻게 만들었나  
▲ 방준혁 CJ E&M 총괄상임고문

방준혁 고문은 삶의 내력이나 일하는 방식에서 스티브 잡스와 비슷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방 고문은 게임분야 경쟁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방끈'이 짧다. 스스로 창업한 회사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다. 이런 점이 스티브 잡스와 비슷하다. 직원들을 혹독하게 다뤄 ‘고문관’이란 별명도 붙었다. 성격도 스티브 잡스와 유사한 면이 많다.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대표, 넥슨의 김정주 회장, 한게임의 김범수 회장은 방 고문과 성향이 다르다. 이들은 모두 서울대 공대 출신이지만 방 고문은 경희대 건축학과를 나왔다.

그는 어린 시절 서울 가리봉동에서 가난과 마주하고 자랐다. 그래서 성공에 대한 열망이 대단했다. 공부만이 출세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부모님한테 맞으면서 컸다. 그는 부모의 바람대로 판검사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오로지 사업가가 되겠다는 열망만 갖고 있었다.

그가 사업을 열망했던 이유는 두 가지다. 돈과 존경을 함께 쥘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가리봉동 공단에서 ‘사장님’이라는 존재가 마치 대통령같이 추앙받는 것처럼 보여 부러웠다.

초기사업은 순탄치 않았다. 두 번이나 실패를 경험했다. 방 고문은 1998년 인터넷 영화사업과 위성 인터넷사업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는 두 번의 실패를 통해 콘텐츠 확보 없이는 사업이 어렵다는 점과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는 사업은 벤처기업이 어렵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래서 게임으로 눈을 돌렸다. 지인이 “유명한 게임업체가 돈이 없어 문을 닫는다”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 업체는 아이팝소프트였다. 국내 최초의 게임엔진인 ‘천지창조’를 만든 회사다.


◆ '보잘 것 없는 학력들'이 만든 넷마블의 성공신화


방 고문의 게임사업은 2000년 10월 인천의 허름한 30평 공간에서 시작됐다. 그는 8명의 직원들과 함께 게임 포털 넷마블을 오픈했다. 당시 이미 수십개의 비슷한 사이트가 있었다. 선발업체인 한게임, 엠게임이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었다.


넷마블이 사업을 시작한 것은 IT 거품이 막 꺼지기 시작한 시기였다. 돈이 들어올 구석도, 남다른 기술도 없는 상황에서 믿을 것은 오로지 사람뿐이었다.

방 고문은 이력서를 보지 않고 자기소개서와 눈빛만 보고 직원을 뽑았다. 학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 그의 인재채용 원칙이었다. 그래서 외부로부터 “넷마블은 벤처기업 가운데 평균 학력이 가장 낮은 회사”라는 말도 들었다.

“그저 일에 미칠 수 있는 사람이면 된다. 안정된 연봉과 백그라운드를 원하면 대기업으로 가고, 사생활을 원하면 공무원을 해라. 나는 일에 젊음을 바칠 자세가 돼 있는 사람을 원한다.” 그의 채용철학이었다. 

  방준혁은 넷마블 신화를 어떻게 만들었나  
▲ 방준혁 CJ E&M 총괄상임고문

방 고문은 ‘학교 대항전’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다른 게임업체들과 달리 청소년을 타겟으로 삼았다. 다른 회사의 게임대회는 1등을 비롯한 상위 입상자에게 혜택을 주기 때문에 회원들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힘들었다. 방 고문은 이를 보고 개인이 아닌 학교라는 집단끼리 경쟁을 착안해 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학생들은 학교의 이름을 드높이고 이웃 학교보다 높은 등수에 오르기 위해 게임에 뛰어들었다. 제주도의 한 중학교는 전교생 중 1명을 제외하고 모두 넷마블에 가입하기도 했다. 넷마블은 문을 연지 1년 만에 2001년 한해동안 900만 회원을 모았다.

성과도 바로 나타났다. 넷마블은 2001년 6억65천만 원의 매출과 7억 원의 적자를 냈다. 그러나 2002년 270억 원의 매출과 180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그는 50억 원 이상의 순이익을 올릴 경우 받기로 했던 경영성과금 32억 원을 모두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방 고문은 2004년 CJ그룹에 넷마블 지분을 800억 원에 매각했다. 이어 2006년까지 CJ인터넷 사장을 하다가 회사를 떠났다.

◆ 홀연히 떠났다가 넷마블 위기에 구원등판


방 고문은 2006년 홀연히 회사를 떠났다. 건강이 공식적인 이유였다.

방 고문은 실제로 하루에 담배를 3갑 피는 골초였다. 2003년 플레너스엔터테인먼트와 넷마블을 합병할 당시 그는 심한 스트레스로 급성 위궤양 출혈을 겪기도 했다.

플레너스엔터테인먼트는 영화배급과 제작, 음악, 연예기획 등을 하는 종합 엔터테인먼트기업이었다. 이 합병을 통해 넷마블은 콘텐츠 기획 및 생산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플레너스와 합병으로 방 고문은 합병기업의 지분 25.7%를 보유한 최대주주가 됐다. 한때 넷마블 지분의 51%를 소유하던 모기업을 사실상 인수한 것이다.


2006년 CJ인터넷 사장을 그만둘 당시 방 고문은 넷마블과 서든어택을 각각 게임포털 게임순위 1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또 애니파크를 인수해 야구게임 ‘마구마구’를 출시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방 고문은 2006년 이후 한동안 게임과 상관없는 일을 했다. 포장지회사, 부품소재기업, 친환경화학약제회사, 친환경조명회사 등을 설립하고 투자하고 인수했다. 커피체인점 할리스 지분을 인수했다가 매각하기도 했다.


한때 복귀설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방 고문은 “게임에 복귀할 계획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그는 친정인 넷마블이 어려워지자 구원투수로 돌아왔다. 방 고문이 2011년 고문으로 돌아올 당시 넷마블은 실적부진으로 위기에 빠져 있었다. 당시 남궁현 CJ E&M 게임부문 대표는 실적부진 때문에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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