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2020년 정기 사장단인사에서 학자 출신 인사들이 나란히 사장으로 승진했다.
삼성전자의 순혈주의 기조가 깨지면서 기술인재들이 우대받는 흐름이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 전경훈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장 사장(왼쪽)과 황성우 종합기술원장 사장. |
다만 한쪽에서는 미래전략실 출신 사장들이 최고재무책임자를 맡으면서 그룹 컨트롤타워를 경험한 재무라인이 중용되는 모습도 여전했다.
21일 삼성전자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2020년 사장단인사에서 전경훈 네트워크사업부 사장과 황성우 종합기술원장 사장이 나란히 승진한 것은 매우 이례적 일로 여겨진다.
두 사람 모두 학계에 몸담고 있다가 삼성전자로 자리를 옮긴지 채 10년도 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이미 삼성전자에서 순혈주의는 깨진지 오래다.
최치훈 삼성물산 이사회 의장이나
홍원표 삼성SDS 대표이사 사장처럼 외부출신으로서 삼성전자 사장에 오른 이들도 있다.
하지만 기업을 거치지 않고 오로지 교수 생활을 하다가 삼성전자로 영입된 인사가 사장에 오른 사례는 거의 없었다.
삼성전자의 네트워크장비사업을 이끌고 있는 전경훈 사장은 포항공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2012년 삼성전자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IM부문 네트워크개발팀장과 차세대사업팀장을 거쳐 네트워크사업부장에 올랐다.
전 사장은 교수출신으로서는 처음으로 삼성전자 주요 사업부장을 맡았다. 세계 최초로 5세대(5G) 이동통신 상용화를 이끌면서 사장 승진에 성공했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5G 통신장비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앞으로 전 사장의 입지는 더욱 굳어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선행기술 연구소인 종합기술원의 원장을 맡게 된 황성우 사장 역시 교수 출신이다. 그는 고려대 전기전자전파공학부 교수로 17년간 재직하다 2012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에 합류했다.
그동안은 권오현 회장과 김기남 부회장이 종합기술원 회장과 원장으로 함께 재직해 왔는데 이번에 4년 만에 단독 CEO체제가 돼 황 사장 승진은 더욱 주목을 받는다.
황 사장은 21세기 들어 삼성전자 외부출신으로 종합기술원장에 오른 첫 인사다. 황 사장 이전 사례를 찾으려면 1995년부터 1998년까지 원장으로 재직한 임관 전 성균관대 이사장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임 전 이사장은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교수 출신이었다.
삼성전자는 21일 임원인사에서도 퀄컴 출신의 최원준 부사장, 에어바나 출신 김우준 부사장 등 외부출신 인사가 승진하고 연령과 연차에 관계없는 발탁승진 규모를 확대하는 등 개방적 인사기조를 나타냈다.
최근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 인재영입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등 인재경영의 중요성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지속적으로 역량있는 외부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여전히 그룹 재무라인을 거친 ‘성골’들에게 맡겼다. 기술 전문가를 외부에서 적극적으로 영입해 혁신을 도모하는 것과 달리 회사의 살림은 믿을 수 있는 가신그룹에게 담당하도록 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번에 삼성전자 전체 경영지원실장을 맡게 된 최윤호 사장과 DS부문 경영지원실장을 맡게 된 박학규 사장 모두 지금은 없어진 삼성 미래전략실 출신이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주요계열사 CFO 가운데도 미래전략실 출신이 적지 않다. 권영노 삼성SDI 부사장, 이병준 삼성전기 전무 등이 있다. 이번에 에스원 대표이사로 발령받은 노희찬 전 삼성전자 사장,
이영호 삼성물산 대표이사 사장 등은 미래전략실 출신 CFO였다.
미래전략실 출신은 아니지만 삼성전자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도 있다. 신재호 삼성디스플레이 부사장, 안정태 삼성SDS 부사장, 김강준 삼성엔지니어링 부사장, 박찬형 제일기획 부사장 등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