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900억 원 상당의 채무상환이 코앞에 다가왔는데 자금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 김준기 백기만 들지 말고 무릎도 꿇어라  
▲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김 회장은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기 위해 동부제철 매각방식을 산업은행에 일임하며 백기를 들었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오너 일가의 금융계열사 지분 매각이 없으면 자금지원도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동부제철은 23일 1400억 원 규모의 긴급 자금지원을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요청했다.


동부제철이 산업은행에 자금지원을 요청한 까닭은 오는 25일 912억 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상환하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동부제철이 산업은행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지 못할 경우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24일 동부제철에 대한 신규 자금지원을 결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과 동부제철이 자금지원의 조건을 두고 의견차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은 김준기 회장의 장남 김남호 동부제철 부장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을 매물로 내놓지 않으면 신규 자금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부장은 동부화재 지분 13%를 소유하고 있다. 그의 보유 지분 대부분은 시중은행에 담보로 잡혀있다. 이 지분의 가치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4200억 원에 이른다. 김 부장은 동부증권 지분 6%도 보유하고 있다. 지분가치는 100억 원 가량이다.


김준기 회장 입장에서 동부화재가 알짜 계열사인 만큼 지분을 매각할 경우 지배력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김 회장 우호지분은 전체 지분 중 31%를 차지한다. 장남 김 부장 보유지분을 매각할 경우 우호지분은 18%로 크게 줄어든다. 우호지분이 줄어든 만큼 동부화재에 대한 김 회장의 영향력이 줄어들게 되고 경영권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에 따라 김 회장은 동부화재 지분을 매각하는 대신 동부제철 매각방식 결정권을 산업은행에 넘겨줌으로써 자금지원을 이끌어 내려고 했다. 동부그룹은 23일 산업은행에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 매각 방안을 산업은행 등 채권단에 일임한다는 내용의 문서를 산업은행에 제출했다.


그동안 동부그룹과 산업은행은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 매각방식을 두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동부그룹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값을 받으려면 개별매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신속매각을 위해 패키지 매각 입장을 고수했다.


동부그룹은 개별매각을 포기하면서 산업은행에 큰 폭으로 양보했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금융계열사 지분 매각 없이 자금지원도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세워 상환일이 닥친 동부그룹을 압박하고 있다. 산업은행의 요구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동부그룹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동부그룹이 구조조정 계획을 이행하지 않으면서 추가자금 지원만 요구하고 있다”며 “이런 식으로 돈을 빌려주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